계절이 깊은 겨울로 치닫는다. 그럴수록 나는 순리(順理)에 따를 생각이다. 우리는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 때문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며 조바심 내고, 빨리 좌절하기도 한다. 자연은 봄 다음 바로 겨울 맞게 하지 않았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우지 않게 하였기에 오늘 땅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했고, 가을에는 어김없이 열매를 거두게 했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사라진다. 자연은 이렇게 말해 준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이라고 말이다.
아직 한 해의 프로젝트들의 결과 보고서가 마쳐지지 않아 마음의 짐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걸 짐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 될 것이고, 마무리가 되면, 기다렸다가 또 다시 시작하는 거다. 자연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 보다"라고 했던 것 같다.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데도 계절의 변화와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세상만사 모든 일에 순리(順理)'를 따르면 삶의 가치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는 변치 않는 게 없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없고, 지금 가진 것을 영원히 누릴 수도 없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꽃은 다시 핀다. 우리의 모남이 다소 둥글게 변하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이를 위해 틈나는 대로 글을 쓴다. 쓰기는 삶을 살리는 행위이다. 이를 '양생(養生) 술(術)'이라 한다. <<장자>> 제3편 '양생주' 편이 생각 난다. 제3편 '양생'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상 생활을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하게 살아가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세 가지이다.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한 삶의 모습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거기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지식욕, 자존심, 자기중심주의 같은 일체의 인위적, 외형적인 것을 넘어서서 자연의 운행과 그 리듬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할 때, 우리 속에 있는 생명력이 활성화하고 극대화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이른바 '기대지 않는 삶(無待)'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을 북돋는 일(양생養生)',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양생(養生)의 주, 즉 생명을 북돋우는 요체인가 생주(生主)를 양(養)함, 곧 생명의 주인 혹은 생명의 요체를 북돋움인가? 생명을 북돋우면 생명의 주인도 북돋게 되는 것이니 둘 다 맞다.
글쓰기는 수렴과 집중을 하는 일이다. 이건 카오스에서 차서(次序)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난 처서라는 말을 좋아한다. 실제로 우주는 우아한 코스모스(cosmos, 질서)가 아니라, 좌충우돌, 천방지축의 카오스(chaos, 혼돈, 무질서)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끊임 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방향도, 목적도 없다. 변화 자체만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태양계의 중심 별인 태양은 지금도 계속 폭발 중이라고 한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으로 현재 50 억 살쯤 된다. 50억 년쯤 뒤에는 완전히 폭발해 은하계로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당연히 태양계에 속한 지구 역시 그럴 것이다. 거기다 23,5도 기울어져 갸우뚱한 상태로 자전과 공전을 하느라 바쁘다. 계절은 끊임없이 돌아오지만 단 하루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한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흐름에 차서(次序)와 리듬을 부여한 것이 역법이다. 차서와 리듬, 새롭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그 역법은 1년, 4계절, 360일, 황도, 24절기, 72 절후 등등이다. 이런 척도가 없다면 어떻게 매일, 매년, 일생이라는 주기가 탄생하겠는가? 시간과 공간의 원리이다. 차서의 다른 말이 목차인데, 좀 엄밀하게 말하면, 차례(次例)와 질서(秩序)가 합쳐진 말이다. 순서 있게 벌여 나가는 관계 또는 그 구분에 따라 각각에서 돌아오는 기회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개념이다. 이 연말에 나는 사는 일에 차서를 붙이는 시간으로 정하고, 조용하게 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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