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로만 보면,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는 약 2%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그러나 원숭이는 동물원 안에 갇히고 인간은 유유자적 구경한다. 미미한 유전자적 차이를 거대한 신분의 차이로 바꿔버리는 요인을 우리는 '문화'라고 한다. 동물이나 식물은 자신의 진보를 전적으로 진화에 의존하지만, 우리 인간은 문화에 더 의존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문화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문화(文化)'를 글자 그대로 보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혹은 그려서(文) 변화를 야기(化)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변화를 더 잘 야기하는 인간일수록 더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야기하려고 시도하는 인간에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이라고 말해준다. 반대로 누군가가 야기해 놓은 변화를 수용하거나 답습하기만 하면 종속적이 된다.
과거 아프리카의 타조 사냥이야기를 소환한다. 타조를 잡으려면, 타조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쫓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타조와 쫓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일정한 간격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존재하게 되는데, 쫓고 쫓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쫓기는 쪽의 긴장감은 커지기만 한다. 타조가 쫓기고 쫓기다가 간장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 도망가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머리를 뜨거운 모래땅에 처박는다. 사람들은 그냥 가서 꼼짝 않고 대가리를 박고 있는 타조를 잡아오면 된다. 타조들은 다 그래왔고, 또 다른 타조들도 그렇게 잡혀 죽을 것이다. 그런데 한 타조가 다른 타조들을 따라서 머리를 처박지 않고 무리에서 이탈하여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쫓아오는 사람들을 노려보는 일을 저질렀다. DNA에 박혀 있는 일정한 방향을 지키다가 돌발적으로 선회(旋回)하여 습관적이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던 방향을 혼자서 바꾼 것이다. 여기서 문화가 새로 나온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서, 인간은 타조처럼 쫓기고, 세계는 인간을 쫓아간다. 그러니까 세계는 인간에게 항상 무엇인가 반응을 강요한다. 우리 삶은 모두 그 강요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응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회'는 도전이고, 여기서 필요한 것이 용기이고, 그 결과로 변화가 일어나면 새로운 문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화적 삶의 시작은 과거의 답습(踏襲)이 아니라, 탈주하는 것이다. 내내 쫓기기만 해왔던 무리에서 이탈한 어떤 한 타조가 뒤를 돌아보고, 갑자기 이전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전혀 다른 반응을 시도했다면, 이것이 바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도전이다. 일단 되돌아보면(선회하면), 그 이전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시도될 것이고, 그것은 세계에다가 이전에 있어본 적이 없는 어떤 무늬를 그리게 될 것이다. 문화적 활동의 결과를 수용하던 타조가 주도적으로 문화적 활동을 하는 타조로 변했다. 창의적인 타조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변해야 한다. 문화란 예술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의하는 모든 것이다. 문화는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이다. 이 문화에 대한 정의는 노르웨이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말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잘 말하였다. "20세기가 이기적 경쟁과 확산으로 성공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이타적 협업과 공감으로만이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시대일 것이다." 그 길은 '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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