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몇일 전부터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말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고 상대가 듣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상대가 들었다고 상대가 이해한 것도 아니고, 상대가 이해했다고 해서 상대가 수용한 것은 물론 아니다. 상대가 수용했다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상담을 위한 의사소통 4단계'를 패러디 한 거다. 말을 할 때는 상대방에 따라 알아 들을 수 있게 말을 하여야 한다.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며 질문을 활용하고, 상대방이 이해했다고 느끼면 마음으로 수용했는지,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서 변화점을 듣고 피드백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나 배 속으로 갔다가 뒷간으로 나간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히느냐고"고 덧붙이셨다. 나는 카톡에 배달되는 배연국님의 글을 좋아한다. 거기서 읽은 거다. "요즈음 몸 속에서 나오는 온갖 것들이 세상을 더럽힌다. 그런 유형의 쓰레기보다 더 유해한 오염물이 말이라는 무형의 배설물이다." 그래 나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고 적어도 적게 말할 생각이다. 이런 말도 있다. "고운 못소리는 좋은 성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친절과 배려가 깃든 착한 마음이 좋은 목소리의 발원지이다." 우선 마음이 착해야 한다.
그러니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기도 하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이 바뀌려면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북을 두드리면 북소리가 나고, 징을 치면 징 소리가 난다. 아무리 잘 두드려도 북에서 징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상하게도 그 사람의 행적이나 전력이 공적으로 평가 받기보다 학벌이나 지위가 곧 그 사람의 인품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하루 종일 말에 대해 고민했더니, 말에 관한 글들이 여기 저기에서 눈에 들어온다. 우선 말로 누구를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에게 자격을 묻기 때문이다. 말이 나왔으니 사람은 자기 인생으로 말하여야 한다.
<<장자>> 외편 "서무귀"에 "잘 짓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고, 말 잘한다고 현명한 사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조그만 개는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사납게 짓는다. 그건 사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큰 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온 세상이 자기 것인 양 천연스럽게 바라보기만 한다. 자신감의 표현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똑똑해 보인다. 청산유수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면 아는 것도 많은 것 같고, 확신에 찬 말을 내뱉는 사람을 보면 그 확신마저 전염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다. 거침 없는 비판, 가슴 따뜻한 공감, 고상한 기품, 정의로운 다짐 따위는 다 소용 없다. 한 번의 행동, 반복되는 행동, 평소의 행동, 일생의 행동이 그 사람의 말뜻을 결정한다. 한평생 거짓말을 일삼은 사람에게 돌아갈 신뢰는 어차피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의 수사학을 정리하면서 말의 힘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에서 나온다고 했다. 첫번째 요소가 품성이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 이다. 말하는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느냐 의 문제이다. 두번째 요소는 감성이다. 복잡하고 딱딱하게 따지고 들어갈 것 없이 감성에 불을 확 질러 버리는 쪽이 사람을 쉽게 움직인다. 세 번째 요소가 논리이다. 합리적인 설득이 가장 힘이 약하다.
이를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그리고 로고스(logos)라고 말한다.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일상 습관에서 나오는 언행이며, 로고스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이성적인 판단과 대화다. 파토스는 그 사람에 대한 평판에서 나오는 아우라다. 파토스는 흔히 '감동'이라고 번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 중 '에토스'를 가장 중요한 수사 능력일 뿐만 아니라, 온전한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에토스는 로고스와 파토스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이다. 에토스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과 같아서 로고스와 파토스가 자라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흔히 '에토스'를 인격(人格)이나 품격(品格)으로 번역한다. 에토스는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만일 누가 인격이 훌륭하다고 말할 때, 그 인격은 무형이다. 만일 누가 품격을 지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의 품격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어로 ‘에토스(ēthos)'의 기본적인 의미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얻어진 습관과 관습', '좋은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도덕과 윤리’라는 뜻이다. ‘에토스’는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어로 ‘등장인물', '등장인물이 뿜어내는 개성(個性)’이란 의미도 있다. 그는 자신이 일생동안 추구해온 인격의 최종목표를 흔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권력, 부 혹은 명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에토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등장한 가장 중요한 철학자인 헤라클리투스의 명언에서 그 의미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에토스 안쓰로포 다이몬(ēthos antropō daimōn)'이라는 말로 자신의 철학을 요약하였다. 이 문장을 번역하자면 ‘인간에게 습관/개성은 운명/천재성이다’다. 범인은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각성한 자는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생각 습관, 말 습관, 그리고 행동 습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 우리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사는 것이다. 오늘을 인생의 마지막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목표를 명사, 동사, 혹은 형용사로 말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문장으로 말하는 거다. '매일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고, 그것에 합당한 생각, 말, 그리고 행동으로 사는 것이다.’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좀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말이면 말이 다 아니다.
속상한 일이다. 논리를 내세우기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선동가들이 득세하고 있다. 높은 품성을 가진 사람들이 선동가들에 밀려 설 자리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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