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의 푸른 잎도 멋지지만, 늦은 가을의 단풍도 멋지다.
한국의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은퇴 이후 자신이 쓸모없어졌다는 허탈감과 무기력감에 깊이 갇힌 노인들은 탈출구로 자살을 생각한다. 65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통계조사도 있다.
하지만 자식으로부터 ‘효도’를 받지 못하는 부모상을 실패로 여기는 유교사회의 영향인지 이들은 선뜻 주위에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려면 생의 패배를 스스로 선언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것이다.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에 선뜻 공감하지 못한다. 무언가에 화가 나는 것조차 자신의 지식범위 안이라는 말처럼, 경험해보지 않으니 모르는 걸까. 공공 공간에서마저 노인은 ‘침해의 당사자’로 소외된다. 마치 백인 전용 공간에서 흑인이라도 만난 듯한 차별이다.
정치지형에 있어서도 노인들은 ‘수구세력의 콘크리트 지지층’쯤으로 치부된다. ‘독재자 박정희’를 영웅시하는 노인들이 사실은 땀 흘려 가난을 벗어난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은밀히 애도하고 있다는 점을 진보성향 젊은이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한 노인들이 단순히 ‘알바 일당’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는 점 역시 가늠하지 못한다.
간단치가 않다.
문제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작불이 잦아들어 잉걸불이 되었을 때, 조용히, 침착하게, 은근히 사위어가는 불도 아름답다. 가을의 단풍처럼.
그런 단풍들도 속절없이 지나간다. 추운 겨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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