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2021년 2월 12일 (구정)
"코로나-19로 힘들었 쥐! 2020년 잘 가요. Aideu(아듀) 2020! 코로나-19 이겨내소! 어서 와 2021년! Bienvenue(Welcome, 환영) 2021!" 지난 1월에 드린 인사이지만, 오늘 아침 다시 또 한 번 모든 분들께 소리 높여 인사 드린다.
지난해 12월 31일에 2021년은 이렇게 살기로 다짐했는데, 또 잊고 살았다. 오늘 아침 다시 소환하여 다시 건너간다. 오늘은 음력으로 정월 초 하루이기 때문이다. 구정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전통적으로 섬겼던 설 명절로 다시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방역이 우선이다 보니, 여느 설 명절과는 다르다. 전염병이 여기 저기서 창궐하는 것보다, 거리 두기를 통해 안전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지금은 최선의 길이다. 빨리 오늘 아침 사진처럼 밝은 저 곳으로 건너갔으면 한다.
2021년은 이렇게 살기로 다짐한다.
- '99의 노예'라는 말을 기억하자. 그것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한 1을 채워 100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1의 욕심 때문에 가지고 있는 99의 기쁨과 행복을 잊고 산다. 너무 욕심 내지 말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하며, 좀 단순하게 살자.
- 좀 더 침묵하자. 눈을 가리면 귀가 열리는데, 침묵을 하면 눈이 열리는 데 말이다. 침묵하면, 밖의 작은 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침묵하고, 상대방을 보니 안보이는 표정도 보인다. 말 많은 남을 탓하기 전에, 나부터 더 말을 아끼자. Too much talk를 조심한다. 즉 말을 좀 아낀다.
- 너무 생존에 힘들어 하면서, 시간을 쏟지 말자. 그러면 우리는 자기 취향을 모르고 살기에 급급하다. 그래봐야, 사는 형편이 나아지는 게 아니다. 삶이 힘들어 일상에 지치더라도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취향이 생긴다. '나는 무슨 색깔의 옷을 좋아하는가?" 그 색깔의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표현하여야 한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런 질문을 하며 생각을 해야 여유가 생기고, 자신의 일상을 지배할 수 있다. 좀 여유를 갖고, 감각이 살아있도록 하고, 생의 에너지를 키운다.
- 세상의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투덜거리지 않는다. 그러려면,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 피해의식은 차별 받는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다름이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다름이 다양성으로 존재하여 그 조직을 더 생기 있게 한다고 믿어야 한다. 다양성은 서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만들어 더 경쟁력 있게 만든다.
-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하소연하거나 투덜거리지 말자. 하소연이란 나의 억울한 일이나 잘못된 일, 딱한 사정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한테 하소연 하는 것은 만나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투덜대는 말도 하지 말자. 차리리 침묵하자. 일보다 투덜대거나 하소연을 들어주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면 그만큼 일하는 데 에너지를 덜 쓰게 된다. 사람 사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잘 배분하는 일이다. 쓸데 없는 곳에 자기 에너지를 쓰는 것이 괜찮지만, 내 하소연이나 투덜거림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빼앗는 것은 잘못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상 만사는 다 양면성이 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그러니 그걸로 인해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 또 무언가를 얻었을 때는 '이걸로 인해 잃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질문해 보는 것도 좋다. 그럼 시선이 높아지고, 거기서 시선이 높아지고, 시야를 다양하게 바꾸어 볼 수 있다. 잊지 말자. 세상의 다양성과 양면성을.
2021년에는 세상을 밝은 눈으로 보며, 마음 비우고, 웃으며 살기로 다짐하는 반성문이다. 딱딱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길이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몸과 마음이 유연(柔然)하게 갖는다. 세상 일에 다 원인과 이유가 있음을 알아서 그저 남의 탓만 하지말고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2021 신축년을 살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 자를 좋아한다. 특히 난 '5유'를 자주 생각한다. '여유(餘裕)', "자유(自由)', '사유(思惟)' 그리고 YOU(당신). 2020년을 마치면서 한 가지 '유'가 더 생겼다. 향유(享有).
이런 내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 노자 <도덕경> 제45장의 5가지 도(道)의 모습이다. 2021년에 '건너 가야' 할 5 가지의 '고졸(古拙)의 멋'의 세계, 즉 결(缺), 충(沖), 굴(屈), 졸(拙), 눌(訥)의 세계를 늘 기억할 생각이다.
1. 대성(大成)의 세계에서 결(缺)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성약결(大成若缺) - 'Big ME'에서 'Little ME'로
2. 대영(大盈)의 세계에서 충(沖)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영약충(大盈若沖) = 가득함에서 비움으로
3. 대직(大直)의 세계에서 굴(窟)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직약굴(大直若窟) - 직진, 바른 길에서 곡선, 구부러진 길로
4. 대교(大巧)의 세계에서 졸(拙)의 세게로 건너가기: 대교약졸(大巧若拙) - 화려와 정교함에서 질박과 서투름으로
5. 대변(大辯)의 세계에서 눌(訥)의 세계로 건너가기: 대변약눌(大辯若訥) - 웅변에서 눌변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독거려 본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지만, 지구의 자전과 공전일 뿐이지만, 우리가 만든 새해는 또 우리의 마음을 ‘활발발’하게 하는 날이다. 또 힘내 굴러가고 싶다. 많이 고민하지 않을 생각이다. 산다는 것은 늘 어떤 약속을 지키는 것의 연속이다.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새 아침을 맞이하며 살다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약속들인 그 일들을 하다가 죽는 거다. 그러니 특별한 삶, 특이한 죽음 같은 건 없다. 그래 오늘 아침은 이 시를 공유한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알프레드 디 수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오늘 아침도 공지영 작가의 최근 산문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내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되 돌아 보다가 만난 책인데, 많은 통찰을 얻었다. 오늘 아침은 "살다 보면, 하나의 오래된 단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것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우리는 계속 건너 가야 한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이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 사랑은 붙어 있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성숙해지려, 시선을 끌어 올리려는 우리는 떨어져서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성장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려는 의지"라는 정의를 공지영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릴케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도 소개했다. 조금 공유한다.
"[젊은 초보자는] 온 존재를 걸고, 그들의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를 향하여 맥박치는 심장의 주위에 집중된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 사랑한다는 것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성숙하려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이 되려는, 세계가 되려는 숭고한 동기입니다. 개개인에 대한 크고 엄청난 요구입니다. 한 개인을 선택하여 광대한 것으로 초빙해 가는 그 무엇입니다."
사랑은 '멋진' 건너 가기가 될 수 있다. 공지영 작가는 어떤 신부님이 내리신 사랑의 정의도 소개했다. "사랑이란 홀로 있기를 가장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부를 다른 이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다. 함께 성장하기 위하여." 여기서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고통이 목격된다. 사랑을 하는 이유가, 외로워서, 욕정을 풀기 위해, 돈이 없으니까, 먹고 살기 어려워서, 남이 얕보니까, 집안일을 위해, 허전하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필요하니까 등등 무수히 많다. 위에서 말했던 그 신부님이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한다. 그 대답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이용한다'"라 하셨다 한다. 이 걸 읽고 고개를 크게 나는 끄덕였다. 흔히 사랑한다며 보여주는 우리들의 관심은 자신의 성장, 서로의 성장이 아니다. 우리들의 관심은 스스로의 이기적인 감각일 때가 많다. 설사 내가 아프더라도, 설사 내가 이렇게 손해를 보더라도, 네가 성장하는 길이라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실한 사랑에 도달한 것이라는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다음 지적에 난 또 커다란 지혜를 얻었다. "사랑은 강한 사람이 한다. 사랑과 희생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몸으로 사랑을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가 잊거나 모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약한 자가 희생한다는 것은 그저 희생물이 되는 것뿐"(공지영)이다. 사랑의 희생은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전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랑의 정점에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혼잣말 하면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은 아픔을 허락하는 것이다."(공지영)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나의 주된 일은 세 가지이다. 인문운동가로 인문 에세이를 쓴다. 쓰려면, 호기심을 지니도록 부지런해야 하고, 그 호기심으로 많이 관찰하고, 책이나 글도 많이 읽어야 한다. 특히 고전을 읽어야 한다. 그 다음은 마을 활동가로 공동체 회복과 사회 기여를 위해 맡은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저녁에는 와인을 팔아야 한다. 이땐 감정 노동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일을 왕성하게 하기 위해 운동하고, 자연을 만나기 위해 산책하고 주말 농장에 나가 흙을 만난다. 그래 전혀 심심하지 않다. 이 모든 일을 내 자발성으로 하니 즐겁고 자유롭다. 올해는 주말 농장에서 꽃을 좀 심어 볼 생각이다. 작년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을 심었다.
내 삶의 원칙은 일주일을 3:2:2로 나눈다. 먹고 살며, 내 전공인 인문운동가 활동에 3일을 쓰고, 마을활동가를 위해 억지로 2일, 그리고 내 자신만을 위한 유식과 운동에 2일을 사용한다. 그 중 2일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마을 일을 위해 억지로 시간을 낸다. 그런데, 공지영 작가처럼, 억지로 한 일이 내 영혼에 큰 열매를 가져다 준다. 작은 골목 안에서, 작은 동네에서 함께 웃고 만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들보다 내가 더 강하기에 나는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글이 신변잡기로 흘렀다. 그러나 내 일상이 정리된 기분이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더 읽어가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건반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며 건반으로 시를 쓰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억지로 단조로운 건반만을 울리는 수많은 밤이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몸의 아름다움으로 춤을 추기위해 자로 잰 듯한 동작을 억지로 익히는 무용수들도 있다. 연습하지 않으면 자유가 없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 진정으로 억매일 필요가 있다." 진짜 자유롭고 싶다면, 일상의 습관에 얽매여야 한다. 일상을 지배하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잡다한 일들을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그래 잘 하고 있다. 다른 이의 수고로 살지 않으니 더 자유롭다.
글이 너무 길어 2월 14일에 다시 공유한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와인 읽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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