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3.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4월 20일)
계속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가해진 몇 일동안 여러 가지 책들을 읽으며, 좀 다소 '엉성한' 공식 한 가지를 다음과 같이 얻었다.
I'm everything = Everybody = 오만, 자만 = 대단한 자
I'm something = Somebody = 허영 = 특별한 자
I'm nothing = nobody = 겸손 = 아무 것도 아닌 자
원래 월요일에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날인데, 어제 환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지나쳤다. 그래 오늘 다시 이야기를 통해 얻는 삶의 통찰을 해본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흥미진진한 여행 이야기이다. 그는 험난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결말이 이르러 그는 원래 찾으려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을 얻는다. 대체로 그것은 깨달음이다. 그는 집으로 귀환한다는 애초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 긴 여정을 통해 그가 진짜로 얻게 된 것은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에는 무심하다는 것, 제아무리 영웅이라 하더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으로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 등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처음 길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고향인 이타카에 도착한다.
그런데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는 새로운 통찰을 한 가지 얻었다. 그걸 오늘 아침과 내일 아침 두 번에 나누어 공유한다.
우선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의 초반에, 우리는 그가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와 얽힌 이야기를 만난다. 김영하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운이 나빠서 키클롭스에게 봉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 여기서 삶의 지혜를 만났다. 우선 길지만 그 이야기를 해 본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한 무인도에 상륙하게 된다. 이 섬에는 "키클롭스들의 나라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야생 염소들이 수없이 많이 살고 있다. 키클롭스들은 배가 없어서 바다를 건너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배를 댈 안전한 포구도 있고, 샘물도 솟아나며, 포도나무도 있었다. 철 따라 나지 않는 것이 없는 섬, 그들은 거기서 그저 순풍이 불기만 기다리면 되는 터였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그날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그곳에 앉아 말할 수 없이 많은 고기와 달콤한 술로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하룻밤을 잘 자고 일어난 오디세우스는 갑자기 키클롭스들이 살고 있는 섬으로 가보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야 할 이유는 현실적으로 하나도 없었다. 그는 키클롭스들이 어떤 자들인지,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무도한 자들인지, 아니면 손님을 환대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인지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배 한 척만 끌고 키클롭스의 섬으로 건너간다. 호기심이 작동한 것이다. 우리를 안주하지 않고 저 너머로 건너가게 하는 힘이 호기심이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주인이 없는 동굴에 들어가 키클롭스가 키우고 있는 양과 염소, 치즈 등을 발견한다. 부하들은 새끼 염소와 영, 치즈만 가지고 어서 배로 돌아가자고 간곡히 애원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거절한다. 그는 키클롭스가 "내게 선물을 주는지 보고 싶었"다 말하고는 남의 집이라 할 수 있는 동굴을 '습격'해서 그의 음식과 재산을 약탈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키클롭스가 자신에게 줄 선물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동굴로 돌아와 불을 피우던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발견하자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인가? (…) 무역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해적들처럼 목숨을 걸고 파도를 타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자들인가?"
그러자 키클롭스에게 해적이냐는 힐난을 받은 트로이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발끈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며 제우스 신과 아가멤논을 들먹인다. 자신은 트로이 전쟁의 승자인 아가멤논의 백성이고, 또한 제우스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어서 자신을 알아보고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키클롭스는 코웃음을 치고 그들 중 두 명을 "마치 강아지처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내려 친" 다음 먹어 치우는 것으로 답을 했다.
오디세우스가 위험을 자초하게 된 것은, 호메로스의 서술에 따르면, 오디세우스의 자만심과 허영이었다. 그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키클롭스의 동굴을 제 발로 찾아간 것이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키클롭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배가 채워지자 그의 마음 속에 인정 욕구가 생겼던 것이다. 낯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somebody였다. 고향 이타케에서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바다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의 자아는 쪼그라들었다.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의 동굴을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는 시를 공유한 다음으로 이어간다. 오늘 아침 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와 오늘 아침 시를 소환하면서, 나는 <장자>의 '덕충부' 4절에 나오는 "화이불창(和而不唱)"라는 말을 기억했다. '남에게 동조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라이프 스타일은 '나'라는 자의식에서 완전히 풀려난 상태로, 마치 물 같은 상태를 말한다.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글어지고 길쭉한 그릇에 들어가면 길쭉해 지고, 추우면 얼고, 더우면 증발한다. 이것은 완전히 빈 배가 된 상태,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처럼, 우리는 자의식을 버리고 nobody가 되어야, 자만과 허영에 대한 경계와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허영을 떨며 자신을 somebody로 생각하다가, 오디세우스와 열 두명의 부하는 차례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거대한 바위로 입구를 막아 놓았기 때문에 출구는 없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자신들이 가져온 귀한 와인을 키클롭스에게 선물했다. 와인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로 "우티스(outis)"라고 답했다. 이 말은 영어로는 노바디(nobody), 우리 말로는 '아무도 아닌"이다. 기분이 좋아진 키클롭스는 와인 선물에 대한 답례로 가장 마지막에 "아무도 아닌(우티스)"를 잡아 먹겠다고 약속했다. 생명을 연장한 오디세우스는 살아 남은 부하들과 술에 취해 잠든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의 눈을 찔렀다. 비명을 듣고 동굴 밖으로 몰려온 다른 키클롭스들은 누가 그를 괴롭히느냐고 물었다. 그러지 키클롭스는 "나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 아닌"이야. 영어로 하면, "Nobody is killing me"이다. 우리 말로는 잘 만들기 어렵지만, 자기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된다. 다른 키클롭스들은, 아무도 죽이려는 이가 없는데,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걸 보니 미쳤나 보다 생각하고 돌아가 버렸다.
오디세우스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그의 허영심이었다. 그리고 그가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스스로를 노바디로 낮춘 덕분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감추고 '아무도 아닌'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숫양의 배 아래에 몸을 숨겨 키클롭스의 동굴, 자신의 허영심이 초래한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된다. 김영하의 표현에 따르면, "가장 약한 존재인 양의, 그것도 배 아래에 바짝 달아 붙어서야 겨우" 탈출했다. 그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정박해둔 배로 돌아 와 서둘러 섬을 떠났다.
오디세우스는 성공적인 탈출에 흥분한 그의 내면에서 다시 자만과 허영이 고개를 쳐든다. 그는 "사람의 고함 소리가 들릴 만큼 섬에서 멀어지자 키클롭스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러지 화가 난 키클롭스는 큰 산의 봉우리 하나를 뜯어내 그들 쪽으로 던진다. 그 때문에 배는 다시 섬 쪽으로 말려가고 그의 부하들은 그를 만류했다. 제발 키클롭스를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더욱 신이 나 소리를 질렀다. 누가 눈을 그렇게 멀게 했느냐고 묻거든, "이타카에 있는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라고 말하"라고 했다. 이름에 주소까지 공개한 것이다. 그는 노바디에서 다시 섬바디로 돌아왔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기까지 했다. 이후로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겪는 고난은 모두 이로 인해 비롯된 것이다.
눈이 멀게 된 키클롭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를 했다. "내가 진실로 그대의 아들이고, 그대가 내 아버지이심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면, 이타케에 있는 집에서 사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도시의 파괴자 오디세우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해주소서, 그러나 그자가 가족들을 만나고 잘 지은 짐과 제 고향 땅에 닿을 운명이라면 전우들을 다 잃고 나중에 아주 비참하게 남의 배를 타고 돌아가게 해주시고, 집에 가서도 고통받게 해주소서."
포세이돈은 눈을 잃은 아들의 청을 들어주고, 제우스도 설득해 오만한 오디세우스에게는 십 년에 걸친 끝없는 고난을 부과하게 되었다.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로서는 포세이돈과의 불화는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김영하 소설가의 지적처럼, 나도 여기서 삶의 지혜를 엿보았다. 자만과 허영은 우리 삶의 행복의 적이다. 달라진 정체성에 적응하며, 자기를 낮추고 노바디가 될 때 위험을 피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게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지혜를 얻었다. 신중해진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내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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