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세상에 봄 꽃과 새 순들이 가득하다. 꽃과 순은 그저 온도의 변화를 정직하게 따를 뿐이다. 쭉쭉 오르는 기온에 시간을 다퉈 숨 가쁘게 피어오른다. 계절은 참으로 좋은데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다. 소망과 현실이 어긋나 지칠 때가 많다. 미세먼지, 황사 그리고 목감기, 사는 것에, 살아지는 것에 흠씬 지치는 이 봄 날에 꽃침 맞고 새순을 영접하고 싶다. 순(旬)이란 나무의 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새로 돋아 나온 연한 싹이다. 그러니까 '싹'이다.
그래 오늘은 천안에 간다. 어린 시절 친구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같이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함께 한다. 오늘은 천안 친구가 옻순을 대접한다. 작년에도 직접 자기 산에서 따온 옻순을 삶아서, 생으로, 닭에 넣어 실컷 먹었던 기억이 난다. 몸에 옻이 오를까 약을 한 알 씩 먹고 시작했다. 난 고집스럽게 제철 음식을 먹으려 한다. 봄은 '보다'에서 왔다고 하지만, 영어로는 스프링(spring)이라고 한다. 그래 봄의 새순을 먹으면, 겨울 내내 눌려 있던 내 심장의 '스프링'이 다시 높이 튀어 올라 내 심장도 따뜻한 사랑이 장착된다.
두릅, 이걸 한문으로 하면 '목두채'라 한다. '나무의 머리 채소'라는 뜻이다. 그리고 가시가 있는 엄나무순, 향이 진한 가죽나무순, 오가피순 그리고 옻순을 어른들은 봄의 5대순이라 말한다. 이 어린 순들을 먹을 때 미안한 마음은 든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삶을 보면, 다 내 것이 아닌 것 '덕분"에 산다. 어제 밤 새통사 2차 토론에서 한 분이 말씀하셨다. 어쩌면 95%가 남의 덕분으로 우리는 삶을 유지한다고. 그러면서 그 분은 건배사를 "덕분입니다" 라 했고, 우리는 "감사합니다"로 응답했다. '~덕분에'를 프랑스어로 하면 '그라스 아(grace a ~)라 한다. 좀 대립되는 말이 '~때문에'일 것 같다. 어쨌든 우리들의 생각의 대부분을 '~때문'보다 긍정적으로 '~덕분'이라고 하면 많은 일들이 감사할 것들이다.
순을 따주는 것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걸 방지 하기 위해 필요하다. 두릅이나 오가피 순은 향이 있지만, 옻순은 식감이 좋고 고급지다. 그래 사람들은 옻순을 봄나물의 제왕이라 한다. '동사적 삶'을 살기 위해 오늘은 새순 먹고, 꽃침 맞는 날이다. 삶은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내 안의 불순물을 태워 버린다. 동사적 삶이란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매달려 살기보다 직접 불확실성을 껴안고 덤비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삶의 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와 같다. 삶의 문제는 삶으로 풀어야 한다. 어제 읽은 글이다.
봄꽃/함민복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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