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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현대적 가난"

2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입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젠 대전문화연대에서 <2019 대전문화학교>를 열었다. 우리 고문이시고 문화운동의 베테랑이신 김선건 교수님을 모시고, 우리는 "대전문화의 정체성과 문화운동"이라는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하였다. 우린 거기서 문화에 접근하는 거의 모든 시각을 균형 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하위 문화가 지배문화에 틈을 벌려 새로운 문화가 나오게 하여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지난 주 어느 한 저녁에 정태춘과 박은옥의 옛 노래들을 들으며, '주님'을 모신 적이 있다. 대학 시절에 많이 들었던 노래들인데, 왜 나에게 잊혀졌을까?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이젠 유튜브로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다. 세상은 이젠 돈이 별로 없어도 듣고 싶은 노래를 듣는다.

지난 3월 27일 데뷔 40돌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가수 정태춘은 이런 말을 했다. "이젠 시장이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 시장에서 이윤이 발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깁니다." 정말이다. 우린 자본의 노예가 된 문화에 몸담고 산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오늘 우리가 말하는 스타들은 썩은 자본주의 문화를 보급하는 첨병일 뿐이다. 그들은 스타라는 이름을 달고 돈만 벌면 되고, 세상의 고통은 내 알바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더 기분 나쁜 것은 타고난 능력으로 내가 땀 흘려 얻은 인기로 돈을 버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

이젠 우린 초연결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장 밖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왔다. 이젠 자본의 노예가 되려 하지 말고, 자본의 입맛에 맞는 길을 피해야 한다. 그 길이 자본에 병든 문화를 치유하는 길이다. 예컨대, 성을 상품화해 돈벌이를 하겠다는 자본의 음모가 만든 결과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타락으로 몰아가는 자본의 또 다른 음모를 막는 것이다.

그래 우린 1년의 숙고 끝에 오늘 아침 사회적 협동조합 <대전 혁신 2050>을 창립한다. 그런 오늘 아침, 나는 다시 생각해 본다. 나도 나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욕망에 눈이 멀어 자본의 야망에 따라 살지는 않았는가? 시장 밖의 삶을 살아보려고 했는가? 인문운동가의 인문정신은 자본과 손잡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현대의 자본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부'가 아니라 인간을 '가난하게 만드는 부'를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 내지만 그 새로운 필요를 선택하고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상화된 궁핍에 시달려야 한다. 이를 "현대적 가난"이라고 한다.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 없게 만드는가?』(허택 옮김)에서 얻은 생각이다.

현대사회의 자본은 인간을 불구로 만든다. 어떻게? 발달된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된 대신에 튼튼한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었고, 교육의 기회는 늘었지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독학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도 119를 찾는 현대인들은 '위험에 스스로 대처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든지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도 '전문가의 손'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돈만 있으면 다 되고, 행복할 거라라고 믿지만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언제나 주치의를 부를 수 있는 경제력 대신에 부지런히 일상 속에서 즐겁게 살아가며 좀처럼 병원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는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얼마든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는 대신 골치 아픈 문제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람은 기업과 전문가가 만든 상품에 어느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있던 잠재력이 파괴된다." (이반 일리치) 그래 오늘 아침 나는 문정희 시인의 <뼈의 노래>를 공유한다. 오늘 사진은 내 주말농장이다.

뼈의 노래/문정희

짧은 것도 빠른 것도 아니었어
저 산과 저 강이
여전히 저기 놓여 있잖아
그 무엇에도
진실로 운명을 걸어보지 못한 것이 슬플 뿐
나 아무것도 아니어도 좋아

냇물에 손이나 좀 담가보다
멈춰 섰던 일
맨발 벗고 풍덩 빠지지 못하고
불같은 소멸을 동경이나 했던 일
그것이 슬프고 부끄러울 뿐

독버섯처럼 늘 언어만 화려했어
달빛에 기도만 무르익었어
절벽을 난타하는
폭포처럼 울기만 했어
인생을 알건 모르건
외로움의 죄를 대신 져준다면
이제 그가 나의 종교가 될 거야

뼛속까지 살 속까지 들어갈 걸 그랬어
내가 찾는 신이 거기 있는지
천둥이 있는지, 번개가 있는지
알고 싶어, 보고 싶어, 만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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