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구 교수님의 담벼락을 보고, 아침 내내 굵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특히 다음 내용이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낼 때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우제를 지켜보던 인디언 꼬마는 어른들의 게으름에 항의하기 위해 우비를 입고 기우제에 나타났다. 이유는 기도를 통해 비가 올 것이라는 인디언들의 공동으로 구성한 정신모형의 지도를 믿고 있다면 반드시 비가 올 것이므로 우비를 입고 나타나내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어른들이 항상 같은 복장으로 기우제에 나타나는 것은 자신들이 열심히 기도는 하지만 자신들의 기도에 믿음의 뿌리가 없었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어린 인디언이 보기에도 믿음이 없는 기도는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오랫동안 만났던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나부터 그러해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래 나는 거기서 빠져 나와, 다시 그런 공동체를 찾을 생각이다.
윤정구 교수님에 의하면, 기도가 세상을 바꾸는 원리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물꼬가 되어 이 기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일 머리가 있다. 그냥 기도만으로는 안 된다. 윤교수는 "기도를 통해 세상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말그대로 제심합력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제심합력", 잘 모르는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한문으로 다음과 쓴다. 齊心合力.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노력(努力)한다"는 뜻이다. '제심(齊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제가 '가지런할 제'자이다. "만물제동(만물제동)"을 말하는 <장자>의 "제물론"도 이 한자와 같다. '제'는 고르게 한다는 말이다. '제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로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 하면, either, or(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both, and(양 쪽을 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쪽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을 다 보아야 한다.
무슨 일을 하려면, 우선 '제심'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생각을 고르게 하여야 한다. 이는 온라인으로만 소통헤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휴먼 터치(human touche)'가 필요하다.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따뜻한 감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트렌드를 일컬어 '휴먼 터치'라고 명명한다. 휴먼터치는 기술이 인간을 흉내 내거나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술이 무한대로 발전해 나가더라도 그 안에 "인간의 손길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점이 오히려 핵심이다.
이런 휴먼 터치 속에서 '제심합력'을 동원하려면, 공동의 정신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정신모형의 중심에는 선한 세상에 대한 염원인 목적과 사명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이 목적과 사명에 대한 믿음 필요하다. 그 믿음이 우리의 일상의 삶과 만나 우리에게 희망이 전달되면, 그것이 소명이 된다. 이러한 소명을 받아 미래를 향한 삶의 동력을 받는 동안 우리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게 나이와 상관 없이 사는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란 미래를 염두에 둔 상상체험으로 죽음이 현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운명을 연기시키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미래의 상실에서 온다. 젊은이들이 공정성에 모든 것을 올인한다는 것은 이미 미래를 상실한 증거이다. 공정성 문제는 공정성이나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파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믿음과 이 믿음을 현실화하는 실험인 혁신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윤정구 교수의 멋진 통찰이다. 다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젊은이들이 공정성과 집과 주식에 '영끌한다'는 것은 이미 젊은이들의 정신모형 속에 미래가 지워졌다는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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