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온라인 시대가 지속된다면 그리고 여전히 교육의 중심이 ‘지식의 전달’에 한정된다면, 디지털 에듀테인먼트에 최적화된 소위 ‘강의의 신’ 한두 사람으로 교육은 충분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교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와주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아이들은 학교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더라는 거죠. 기껏해야 애들이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는 친구와 놀이고, 학부모들도 세끼 식사와 돌봄이 가장 현실적인 이유더라는 겁니다. 과연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학생들에게 학교는 꼭 와야 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신 없습니다."
국가가 개입하는 전 국민 대상의 교육기관으로서 학교의 기원을 들여다보면 이미 그 시발점에는 (학대나 아동노동으로부터의) 아동 보호와 (교육)기본권 보장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온라인 시대일수록 공공적 고민은 ‘관계'에 있어야 한다.
오늘 아침은 우리 교육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고발했다. 교육부도 이젠 착각을 하지 말고, 교육 혁명을 사회 담론으로 내 놓고 고민을 시작하여야 한다. 전교조의 논평이 시의적절 하다. "9월 학기 제 검토는 물론 원격수업의 안정적 운영 방식, 수업일수와 수업시수 대폭 감축, 학습 격차 보완책 등 다양한 관점에서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는 확장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젠 온라인 수업 뿐만 아니라 학습 방법을 다양화하고, 각 지역과 학교가 교육과정을 결정할 수 있게 유연성을 부여해야 한다. 지역과 학교의 연계로 학습공간을 확대하는 것도 고민할 때이다. 그래 나는 마을대학(마이크로 칼리지 Micro college)을 고민하는 것이다. 교육이 평가를 위한 준비가 아니다.
우리 학부모들도 이젠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육이란 지식을 암기해 일등에서 수만 등까지 한 줄로 세워 SKY 대학에 보내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믿었다면 깨어나야 한다. 내 아이가 공부만 열심히 하면 SKY에 진학해 의사나 변호사, 판,검사를 할 수 있다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교육은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재 다능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안내해 주는 일이 교육이다. 그 외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정의를 나열해 본다.
교육이란 상대방 입장에 서 보는 연습이다. 교육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며 스스로 깨닫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다. 교육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다양한 답이 있으니, 자신에게 알맞은 답을 찾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교육은 회초리로 학생들을 다그쳐 빨리 많이 외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핸드폰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교육(敎育)하다"라는 영어는 'educate'이다. 이 말은 학생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함을 자극하여, 그것을 '밖으로(e-) 끄집어내는(-ducate)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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