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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머뭇거림

어제 나는 우리가 사랑 가운데 서로를 대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머뭇거림이라는 시몬느 베이유의 말을 인용했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머뭇거림은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머뭇거림 속에는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거나, 응대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다. 지나칠 정도로 단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확신은 고단한 생을 지탱해주는 든든한 기둥이지만, 그 확신이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폐쇄성에 갇힐 때는 아집에 불과할 수 있다.

오늘 아침 다시 노자의 <도덕경> 제45장을 불러낸다. 노자는 다음  5 가지 '고졸(古拙)의 멋' 세계, 즉 결(缺), 충(沖), 굴(屈), 졸(拙), 눌(訥)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자는  그게 5가지 도(道)의 세계라고 했다. 나는 이게 '머뭇거림'의 세계라 본다.
• 대성(大成)의 세계가 아닌 결(缺)의 세계: 대성약결(大成若缺) - 'Big ME'대신 'Little ME'의 세계,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다'는 것을 알고, 조금 모자란 듯 세계를 말한다.
• 대영(大盈)의 세계가 아닌 충(沖)의 세계: 대영약충(大盈若沖) - 가득함대신 비움으로, '완전히 가득 찬 것은 빈 듯하다'는 것을 알고, 뭔가 조금 빈 듯한 세계를 말한다. 다 채우려 하지 않는 세계 말이다.
• 대직(大直)의 세계가 아닌 굴(窟)의 세계: 대직약굴(大直若窟) - 직진, 바른 길에서 곡선, 구부러진 길의 로, '완전히 곧은 것은 굽은 듯하다'는 것을 알고, 뭔가 반듯하지 못한 것 세계를 말한다.
• 대교(大巧)의 세계가 아닌 졸(拙)의 세계: 대교약졸(大巧若拙) - 화려와 정교함에서 질박과 서투름으로, '완전한 솜씨는 서툴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뭔가 어설프고 서툴게 보이는 세계를 말한다.
• 대변(大辯)의 세계가 아닌 눌(訥)의 세계: 대변약눌(大辯若訥) - 웅변에서 눌변으로, 완전한 웅변은 눌변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뭔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것 같이 보이는 세계를 말한다.

<도덕경> 제45장을 내 나름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다 완성된 것도 빈틈이 있어야 그걸 쓰는 데 불편함이 없고, 가득 채웠더라도 빈 곳이 있어야 언제라도 쓸 수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바른 길이며, 질박하고 서툴러 보인 것이 화려하고 정교한 것이며, 어눌한 눌변이 곤 완벽한 말 솜씨인 것이다."

몇일 전부터 나는 "'서슴없이' VS '머뭇거림'"에 대해 묵상하고 있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머뭇거림'이라 했다. "'머뭇거림'은 겸허함의 자세로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태도"라 강조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 시처럼, 사람을 외모로 그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사람의 마음은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다.

김기석 목사는 2017년 노벨 문학상을 탄 가즈오 이시구로(일본에서 태어난 영국 소설가)의 최근 작, <클라라와 태양>을 소개하였다. 나는 그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잘 읽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작품을 오늘 주문할 생각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최근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서 클라라는 인공지능이다. 가즈오가 이 작품을 통해 묻는 것은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 한다. 곧 읽고 여러 가지를 공유해볼 생각이다.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 마음 둘 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AI 로봇 클라라를 친구로 산 조시의 아버지가 AF(아티피셜 프렌드의 약자) 클라라에게 묻는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란 걸 믿니?" 그러자 클라라는 다소 혼돈을 느꼈다고 한다. 조시의 아버지 폴은 인간의 마음이란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 정의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습관이나 특징, 말투나 행동거지를 아는 것만으로 그를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김기석 목사님은 "마음은 방이 많은 집과 같아서 방들을 하나하나 열고 들어가 각 방의 정보를 조합하면 알 수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방 속에 또 다른 방이 있고,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눈 앞에 드러나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미로와 같다"고 말하였다. 내 마음도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겠는가?

우리는 흙에서 흙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에 왔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떠나야 한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걸린 외줄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미국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는 고갱의 그림 제목이지만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 흙에 불안을 더하면 인생이고, 인생에서 불안을 빼면 흙이다. 불안은 떨쳐버릴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숙명을 안고 살면서 지향을 잃지 않을 때 삶은 의젓해 진다. 지향이 중요하다. 이 지향이 내가 마음 둘 곳이다. 오늘 아침 글은 김기석 목사님의 글을 읽고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참 오랜만에 글을 따뜻하게 그리고 잘  쓰시는 목사님을 만났다. 존경한다. 그리고 사유의 방향이 훌륭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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