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걸은 임도 길은 숲을 걷는 것이었다. 숲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져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짙고 옅은 녹색의 숲이 차려놓은 잔치를 즐길 수 있었다 아래쪽은 진녹색, 중간은 초록, 위쪽은 아직 연두이었다. 봄이 꼭대기로 쫓아가며 농담의 붓질을 해댄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일 만큼 신록이 눈부시다. 잠깐 잠깐 만난 대청호수의 물빛까지 청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숲은 흰 꽃으로 일렁이었다. 그 흐름의 결은 야구장 관중석 사람들이 응원하는 움직임 같았다. 바람에 뒤집힌 굴참나무, 떡갈나무, 사시나무 잎들이 자기 속옷을 들추듯이 회백색 잎 뒷면이 드러나 하얗게 빛났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숲을 이루는 꽃과 나무가 형형색색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임도 입구부터 들꽃에 눈이 가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보기 드문 하얀 꽃 민들레가 인사를 했다. 그리고 지천에 깔린 애기똥 풀의 노란 꽃들이 저마다 자신을 뽐내며 한 뉘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여러 들꽃들을 만났다. 나는 가능한 많이 사진에 담았다.
길을 계속가다 보니 점점 계곡이 깊어졌고, 계곡물이 참 맑았고 많았다. 어떤 이가 계곡에 어항을 담가두었는지 차를 몰고 계곡 물에 들어갔다. 그리고 숲도 강원도처럼 우거졌다. 숲은 함께 잘 어울린다. 큰 나무는 작은 나무를 내쫓지 않고, 화려한 꽃은 소박한 야생화를 깔보지 않는다. 함께 하지 않으면 그저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더불어 살아가니 큰 숲을 이루고 푸른 산이 되는 것이다. 올 초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책 <더불어 숲>이 생각났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내’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오늘의 현실에 숲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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