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이야기를 좀 더 한다. "장석 이야기"에 이어 "거목(巨木)과 신인(神人) 이야기가 이어진다. "남백자기가 상구에 놀러 갔다가 엄청나게 큰 나무를 보았는데,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천 대를 매어 두어도 나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남백자기가 말했다. '이 어찌된 나무인가? 반드시 특별한 재목이겠군.' 그러나 위로 가지를 올려다보니 모두 꾸불꾸불하여 마룻대나 들보감도 아니었고, 아래로 큰 둥치를 보니 속이 뚫리고 갈라져 널 감도 아니었다. 잎을 핥으면 입이 부르터 상처가 나고, 그 냄새를 맡으면 사흘 동안 취해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과연 재목이 못 될 나무로구나, 그러니 이렇게 크게 자랐지. 아, 신인(신인)도 이처럼 재목감이 못되는 것을."
이 문장은 '쓸모 없음'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쓸모가 결국 '신인(神人)'의 경지임을 함의(含意)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인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반적 유용성의 기준으로 따져 보면 가장 쓸모 없는 존재이다. 그렇지만 깨달은 이의 눈으로 볼 때, 더할 수 없이 큰 쓸모를 지닌 사람이다.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런 '함이 없는 함'을 통해 안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위(無爲)의 사람들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쓸모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장자>의 제1편 "소요유"에 나온 [막]고야산의 신인들처럼 가만히 있으면서도 요임금을 움직였던 사람들(1:9-11)이다. 이런 사람이 망치질을 못 한다거나 이해 타산에 서툴다거나 약삭빠르지 못하다고 해서 한심한 사람들이 아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십시오"했던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 처럼, 자질구레한 일에 쓰이기보다 도에 의해 쓰일 때 사람에게 더욱 참된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장자는 세속에의 집착이나 얽매임에서 벗어나야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유가를 배척하고, 초 위왕의 재상 초빙을 사절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또한 그는 사회참여에 열을 올리던 인재들이 그 재주 때문에 제거되는 사례를 많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 산목(散木: 쓸모 없는 나무)의 우화를 통해 쓸모 없는 것의 유리함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장자는 세상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 않는 무용(無用)에서 도리어 유용함을 얻게 된다고 말하였다. 이는 난세에서 터득한 그 다운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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