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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만우절

1219.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결정했다. (만우절)

모든 학생들도 1년간은 공부하지 않고, 학년을 오르지 않고 쉴 수 있다. 내년에 2020년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뭐, 다 동의하면 가능한 일 아닌가? 선거는 이미 날짜가 잡혀 있으니 국회의원을 뽑아 놓고, 내년 4월 15일부터 임기를 시작하게 하면 된다. 국회의 입법 활동도 1년간 없다. 세상 일이, 우리가 모두 합의하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바이러스도 변종으로 덤비니, 우리도 변종이 되어 보는 거다. 모든 사람들의 나이도 한 살 더 먹지 않는다. 간단하다. 그냥 2021을 2020으로 다시 사용하면 된다. 이젠 앞 날을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안식년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일곱 째 날, 안식일(sabbath)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일주일에 한 번씩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처음'의 순간으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이 행위를 하는 날을 '안식일'이라고 한다. 이것이 영어로 '사바스(sabbath)'라고 한다. 안식일은 '편히 쉬다'가 아니라, '강제로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강제로 멈추다'란 의미이다. '처음'으로 '리셋(reset)'하는 것이 방법이다. 개인 PC를 초기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바쓰’의 의미는 ‘강제로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라'하는 의미다. 안식일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날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자신과 친밀해 진다. 우리는 이 친밀함을 집중 혹은 몰입이라고 말한다. 창의성이나 천재성은 이 친밀함의 표현일 뿐이다. 안식일은 고독을 실천하는 날이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사람들과 만나, 우리의 배역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절제를 수련한다. 이처럼, 올 2020년은 안식년을 전국민이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내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유대 지식인들은 양적인 시간이 아닌 특별한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 일상에서 벗어나 그 일상을 새롭게 관조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안식일의 본래 의미가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다'이다. 소주 "처음처럼"이 생각난다. '처음'으로 되돌아가려는 관조(觀照) 행위가 '안식일'이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을 멈추고 '처음'으로 되돌아 가는 날이 '안식일'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어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저 습관적으로 해오던 일이라면 과감히 잘라내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를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진입하게 해줄 것이다. 그런 측면서, 2020년을 전국민을 위한 안식년으로 정한 것을 나는 대환영한다.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다. 그래 아무 이야기나 해 본 것이다. 언젠가부터 삶이 더 팍팍 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우리의 만우절은 그냥 지나가는 듯 하다. 프랑스는 매년 4월 1일에 어른이나 아이들이 농담과 장난을 하거나, 물고기 모양의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영어로는 April Fool's day(4월 바보의 날)이라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Le poisson d'avril(4월의 물고기)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프랑스에서는 이날 종이로 물고기를 만들어 친구나 선생님 등에 몰래 붙여 놓는 장난을 친다.

프랑스에서는 1564년까지 한 해의 시작이 4월 1일이었다. 율리우스력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바꾼 샤를 9세 때 새로운 달력이 생겨나고 이 때부터 1월 1일이 새해 초가 되었다, 1565년의 1월 1일, 프랑스 인들은 희망찬 한해를 기원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정작 4월 1일이 되자 사람들은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그냥 조용히 지내기에는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하되 정말 값진 선물이 아닌 웃음을 자아내는 가짜 선물을 주고받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새학기에 갓 적응하고 있는 학생들이 서로 장난치고 깔깔대면서 서로 부쩍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날이기도 한다. 프랑스 거리의 초콜릿 가게에서는 가지각색의 물고기 모양 초콜릿과 디저트가 오고 가는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원래는 어제에 이어, 코로나 19 이후의 우리들의 삶에 대한 대안으로 에피쿠로스 철학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나, 내일로 미룬다. 왜냐하면 벌써 4월이다. 역병이 창궐하는 틈으로 시간이 확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거리는 완연한 봄이다. ‘4월’을 뜻하는 영어 'April'은,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그래서 4월은 ‘아프로디테의 달’이다. 4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온갖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고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4월이 아름다움의 여신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리고 4월하면, 시를 좋아하는 나는, 영국 시인 엘리엇의 <황무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쓰고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

왜 "잔인한"가? 4월이 잔인한 것은 마치 겨울잠을 자듯 자기 존재를 자각하지 않으려는 인간들을 뒤흔들어 깨우는 봄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리엇은 봄비가 잠든 식물 뿌리를 뒤흔드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며, 망각의 눈(雪)으로 덮인 겨울이 차라리 따뜻하다고 했다. 얼어붙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약동과 변화를 일깨우는 봄의 정신이 숭고하면서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유혹과 그 유혹을 견디어 내야 하는 시련의 아픔 때문에 잔인하다고 했을 수도 있다. 봄이 오면 처녀와 총각들의 마음이 괜스레 싱숭생숭해지는 것도 사랑의 여신의 손짓 탓일 게다.

올해의 4월은 더 잔인하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를 강요 받으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슬프다. ‘코로나’와 ‘우울한 마음’을 뜻하는 ‘블루(Blue)’가 합쳐진 말이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에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답답함, 두려움, 우울, 외로움, 무기력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다’는 표현이 딱 맞지 않을까? 이럴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손 놓고 가만히 있어야 할까?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많다.

미안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코로나 블루를 느낄 틈도 없게 평소보다 더욱 체계적인 일상을 보내며, 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 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대신, 통제할 수 있고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네 가지 치료법'을 고민하고 있다. 불행의 원인인 두려움과 허영이란 병을 고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사치료(四治療, 네 가지 치료)말이다. 이 치료법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욕망을 치료하는 것이기도 하다.
1. 신을 두려워 하지 마라.
2. 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3. 선한 것은 쉬운 것이다.
4. 최악의 상황은 견딜 만하다.
내일 하나씩 살펴 볼 계획이다. 이미 작년 9월 27일과 11월 6일에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찾아보시려면, https://pakhanpyo.blogspot.com 으로 가시면 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기적"이 있다. 만우절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들의 생명 속에는 "불씨를 살리듯 후후 불어볼 노을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사진은 점심 먹고 만난 왕벚꽃이다. 우리도 때를 기다려, 그냥 최선을 다해, '때 맞추어' 활짝 피면 되는 것이다. 자! '잔인하다' 하지 말고, 겨울 잠에서 깨어나자!

기적/심재휘

병실 창밖의 먼 노을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저녁이 되니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네

그후로 노을이 몇 번 더 졌을 뿐인데
나는 그의 이른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하루가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것 같아도
눈물로 기운 상복의 늘어진 주머니 속에는
불씨를 살리듯 후후 불어볼 노을이 있어서

나는 그와 함께 소주를 마시던 술집을 지나
닭갈비 타는 냄새를 지나
그의 사라진 말들을 지나 집으로 간다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고
점자를 읽듯
아직 불빛을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
한집으로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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