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 전 일이네요.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태인, 도정공장(쌀 창고)을 바꾼 신태인생활문화센터, 동진강, 만석보, 화호리, 소이암석탑, 어제 만난 단어들이다. 난 거기서 오늘 공유하는 시 <소금>을 보았다. 신태인은 역사의 "상처라는 걸/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신태인이 역사의 "아픔이란" 것 또한.
기차여행으로 <해남 땅끝마을까지 걷기> 프로젝트의 이번 달 목적지는 신태인이었다. 신태인은 역사적인 마을 태인현의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역전 마을로 급격하게 성장한 '신(새로운)태인'이었다. 원조 호남대로는 지금의 1번 국도와 거의 비슷한 경로였다. 천안-차령-공주-노성-은진-익산-삼례-금구-태인-정읍-노령-장성-나주를 지나는 경로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이를 따라가지 않고 최대한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조금이라도 평탄한 경로를 찾아 기차길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호남선은 은진-익산, 전주-금구 사이의 고갯길을 피해 호남평야 한복판을 질러가게 되었고, 김제에서 정읍으로 선로를 놓음에 따라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태인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그나마 가까운 마을에 역을 놓은 것이다. 여기가 바로 신태인이고, 이곳이 태인보다 더 큰 마을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마침 금요일 <새통사>의 주제가 동북아 철도 네트워크였다. 강의해 주신 정제정교수님은 철도는 단순히 기차가 달리는 길 이외의 다양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함의와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는 역사 교과서라고 하셨다.
자본과 기득권의 새로운 세력은 우리 자신을 몰래 조금씩 파괴시킨다. 제일 먼저 장소를 파괴하면서, 공동체를 부순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우리의 몸을 파괴하면서 상품을 팔고, 그 다음은 우리의 꿈을 파괴시키면서, 지금을 불행하게 만든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본과 기득권이 유리하도록 변명까지 하면서 우리들을 세 가지 방향으로 파괴한다. 내 고향 공주는 마을 어른들이 기차역을 싫어하고 반대한다고 해서, 자본과 일본은 기차 길을 대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마도 넓은 밭, 대전(大田)을 그들이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제 이런 눈을 떴고, 생각을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에 김제-신태인-정읍으로 선로를 바꾼 것은 농지 수탈의 욕심과 공사비 절약이라는 두 가지 목적에다 전통적인 공동체 마을을 파괴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었음을 역사의 주체인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아프다. 그런 신태인이 지금은 호남고속도로가 태인을 경유하게 되면서 현재는 두 마을 다 몰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멋진 <신태인 역사보존 연구회> 김승규 회장님과 수탈의 아픈 흔적이 남아 있는 옛 도정 창고(쌀 창고)를 생활문화센터로 바꾼 그 곳에서 일하시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채, 막 뛰어 다니며 신태인을 소개해 주었던 황서영 마을문화 운동가를 만났다. 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로서 매우 부러워 하면서, 그 두 분의 친절과 애향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내고 왔다. 속이 먹먹하다.
동진강, 만석보(萬石洑, 관개형 저수지)로 이어지는 동학 이야기와 구마모토라는 일본인의 농민 착취 현장이었던 화호리(禾湖里) 마을 이야기는 너무 길어져 다음에 또 하기로 한다.
소금/류시화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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