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봄은 어떻게 오는가?

1582.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한 해를 이끌어갈 여러 가지 일들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마무리되어 가는 것이다. 모처럼 오늘 아침은 <인문 일기> 쓰기 전에 긴 산책을 나갔다. 비가 오고, 황사 핑계로 주춤하던 운동을 한 거다. 어제는 동네 가정의학과에 가 피를 뽑고 혈압과 당뇨 체크를 했다. 결과는 오늘 오후에 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몸이 불편한 것은 없다. 다만 예방하자는 것이다. 사실 주변의 어른들은 말한다. 운동하고 시간 나면 책 보고 공부하는 거라고. 아프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늘 다니던 탄동천을 걸었다. 벚꽃이 온통 절정이었다. 오늘 아침 화두는 '봄은 어떻게 오는가'이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중력을 거스르고 저 어린 초록은 무슨 힘으로 솟아 오르는 것일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웃으니 햇볕이 따뜻한 봄이 온다 한다. 모든 것들이 지구의 중력에 지배를 받지만, 사랑이 동반된 봄의 새싹이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솟아 오른다. 신비스럽다. 그것은 다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자 친정 어머니의 사랑이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뜨거운 여름이 폭죽처럼 터지다, 가을로 무르익어 가면, 온 땅을 초토화 시키는 겨울이 온다. 앙상한 가지만이 해골처럼 남았던 겨울, 푸름이 허물어져 잿빛으로 나 뒹구는 땅, 모진 바람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계절. 누가 이토록 절망하였기에 겨울이 왔던 것일까? 그러다가 갑옷같이 단단한 나뭇가지의 살갗을 터뜨리며 어린 새 순이 솟아나는 봄이 온다. 누가 절망에서 깨어나 새로운 희망을 키워내는 것일까? 죽은 듯이 황폐했던 땅을 뚫고 풋풋한 새싹이 싱싱한 발톱처럼 돋아난다. 이 신비스러운 계절의 변화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것을 키워내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페르세포네를 얻는다. 데메테르는 땅에 자라는 식물을 주관하는 일을 하는 여신이다. 그녀가 활기차게 움직일 때, 땅은 아름다운 꽃과 풍요로운 곡식과 과일을 만들어 준다. 그런 그녀에겐 '우윳빛 팔을 가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페르세포네라는 외동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저승 세계의 왕 하데스가 그 예쁜 딸을 납치해간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가길 두려워하는 지하의 세계로 데려간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 데메테르는 정신없이 딸을 찾아 헤매다가, 자신의 딸을 남편인 제우스의 묵인 속에 하데스가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자신의 딸을 납치해 지하 세계로 데려간 사실을 알아챈다. "남편이 자신의 딸을 오빠에게 넘기다니!" 배신감에 치를 떨던 데메테르는 앙심을 품고 자신이 맡은 일을 거부하고 요즈음 식으로 파업을 한다. 딸을 잃은 그녀가 땅에서 손을 떼자, 땅은 점점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렸고, 앙상하게 뼈를 드러냈다. 꽃이 색과 향을 잃고 시들어갔다. 곡식과 과일이 더는 열리지 않아, 먹을 것이 없어진 인간 세계는 흉흉하게 메말라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굶주려 죽어갔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우스는 '비서실장' 역할을 하던 헤르메스를 통해 하데스와 협상한다. 협상은 페르세포네가 일 년의 3/1은 하데스와 함께 있되, 나머지 3/2는 자신과 함께 밝은 세상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봄이 찾아 오는 계절은 이렇게 해서 변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스인들은 이해했다.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나와 자신의 친정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보내게 될 때, 데메테르는 행복해 웃으며 기뻐하니 새싹은 돋아나고 곡식이 익어간다는 것이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하지만 가을이 깊어 가면 페르세포네는 다시 땅을 떠나 죽은 자들이 머무는 지하의 세계, 남편인 하데스의 곁으로 가야만 한다. 홀로 남은 데메테르는 곧 외로움의 고통에 시름 시름 앓으며, 일을 하지 않는다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계절이 변하여 찬바람이 부는 것은 페르세포네와 데메테르의 이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데메테르의 우울에서 겨울의 혹독함은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오늘의 시를 공유하고 계속한다. 몇 일 전은 박노해 시인의 페이스 담벼락에 빠져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다. 거기서 읽은 시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수첩에 적어 보았다. "저 꽃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지고 떠오르는 태양 말고는 내 속에 있는 진짜는 남이 꺼내주지 못한다. 인연의 신비를 따라 스스로 피워낼 뿐." 산책 길의 양지 바른 곳에는 제비꽃, 민들레, 냉이 꽃들이 만발해 있다. 작년부터 올해는 제비꽃들이 많다. 코로나-19로 카바레가 닫혀 제비들이 다 길가로 나온 덕이라 한다.

 

길/박노해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 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 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을 걸어가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잃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아침에 최진석 교수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사람은 건너가는 존재여야 한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일상에서 생각하는 일상으로, 대답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건너가는 길에 든 사람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삶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내 길을 걸으리라.

 

로마 시대(오비디우스)로 오면,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가 케레스와 프로세르피나로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딸 프로세르피나가 일 년 열 두 달 가운데 반은 어머니와 보내고, 반은 남편과 보내는 식으로 이야기 바뀝니다. 겨울이 더 길어지는 것이다. 그리스의 계절 변화와 로마의 계절 변화가 차이가 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페르세포네가 죽음의 세상을 나와 밝은 땅 위에서 데메테르를 만나는 까닭에 대지의 여신이 행복해 하며, 사랑의 힘으로 싹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며 새들이 노래하고 세상이 깨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가 웃으니 햇볕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혹시 죽음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대지 위로 홀로 보내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 나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전 일본에서 있었던 원전 사고를 보며 상상해 보았다. 그 해의 봄은 쓰나미와 함께 행복하지 못했던 해의 봄이었다. 페르세포네가 혼자 오지 않고 자신의 남편 하데스를 데리고 친정에 온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왜냐하면, 하데스의 로마식 이름은 플루투스, 영어식으로는 플루톤이기 때문이다. 원자번호 94번. 1940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에드윈 맥밀런은 죽음을 부르는 이 치명적인 물질을 처음 합성한 후, 죽음의 세계를 지배하는 플루톤의 이름을 따서 플루토늄이라 불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