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봄에는 참 여러 가지 꽃들이 핀다. 제일 먼저 봄을 기다리는 꽃은 동백꽃, 성급해서 눈 속에서 핀다. 그 다음은 버들강아지-갯버들 꽃, 다음은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목련이 이어진다. 병아리가 생각나는 개나리가 거리를 장식하는 동안, 명자나무 꽃, 산당화 그리고 진달래가 봄 산을 장식한다. 바닷가에서는 해당화가 명함을 돌린다. 다음은 벚꽃이 깊어 가는 봄을 알린다. 그 사이에 마을마다 살구꽃, 배꽃, 복숭아꽃이 이어진다. 그 끝자락에 철쭉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꽃이 피는 순서가 있는데, 지금은 동시 다발적으로 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병들어 꽃이 피는 순서가 무너졌다. 선(善)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악(惡)이 이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엉터리-학교'이다. 선을 행했는데, 칭찬을 받지 못하고, 악을 행해야 대접을 받는 사회-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꽃이 ‘폭죽처럼’ 한 번에 만발하며, 한 번에 진다.
꽃들이 순서를 까먹듯이, 세상이 역사를 잊거나 알지 못하고 있다. 한 정당의 대표가, 그것도 무려 16년이나 국회의원을 한 4선 의원이 하는 말을 보자.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반민특위 국론분열', '김원봉 뼛속까지 공산주의자' 등. 비열한 말을 일삼고, 빈약한 역사인식으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공의 이익 보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을 퇴출시키는 개혁이 시대정신이다.
사람들은 알제강점기에 날리던 의열단장 김원봉을 잘 모른다. 지난 2월 24일에 그의 막내동생 김학봉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의 가족사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김원봉은 영화를 통해 알았다. 영화 <암살>(2015)에서 배우 조승우가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특히 화제를 모았었다. 그리고 <밀정>(2016)에서는 배우 이병헌이 김원봉을 연기했다.
나는 아침마다 SBS CNBC의 김형민 PD 글을 접한다. 언젠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1919년에 의열단을 결성한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김원봉은 단 한 번도 일제 경찰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1946년 봄 고향 밀양으로 돌아왔을 때, 환영받지 못했다. 1947년 3월, 그는 좌익 혐의를 받고 한국 경찰에 체포된다. 수십 년 동안 그토록 악랄하고 집요했던 일본 경찰도 손대지 못했던 그를 체포한 이는 그 이름도 유명한 친일 경찰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체포 당시 화장실에 있었는데, 노덕술은 옷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개 끌 듯 끌고 갔다고 한다. “어허 옷이나 좀 입고……"를 부르짖었을 김원봉, 수십 년 동안 객지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독립 투쟁을 했던 중년 전사(戰士)의 속내가 어떠했을까? 의열단 동지 유석헌에 따르면, 김원봉은 이후 사흘 동안을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에 오늘 아침 글은 길어졌다. 이런 시도 있다. 어떤 순서가 있는데, 그게 무너지고 있다.
순서/안도현
맨 처음 마당 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 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 밭 울타리
탱자 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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