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1.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3월 29일)
매주 월요일은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했다. 오늘 이야기는 '완벽(完璧)'이다. 물론 완벽은 없다. 단지 완벽에 대한 추구만 있을 뿐이다. 완벽은 가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다. 완벽은 완전할 완(完)자에 구슬 벽(璧)자가 합쳐진 말이다. '벽'은 원래 동그랗게 갈고 닦은 옥(玉)을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그러니까 '완벽'이란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이다. 흔히 완전무결(完全無缺),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일컫는 말로, 원래는 고리 모양의 옥을 끝까지 무사히 지킨다는 뜻이었다. 여기에 이야기가 숨어 있다.
중국의 조나라에 ‘화씨의 벽(和氏之璧)’이라는 유명한 보물 구슬이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의 왕이 그 구슬이 탐이 나 진나라 땅의 일부와 구슬을 바꾸자고 제의했다. 조나라는 주고 싶지 않았지만 진나라의 왕이 쳐들어올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구슬을 주기로 했다. 그는 그 구슬을 재주 있고 용감한 인상여라는 사람에게 맡겨 진나라에 보냈다.
인상여가 진나라에 가서 왕을 만나보니 왕은 구슬만 넘겨 받고 땅은 도무지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인상여는 꾀를 내어 구슬에 흠집이 있다고 하여 구슬을 다시 자기 손에 받아 들고 나더니 별안간 큰소리로 “약속대로 땅을 주지 않으면 구슬을 내던져 산산조각을 내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나라의 왕은 약속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또다시 인상여는 진나라의 왕이 구슬을 받으려면 일주일 동안 목욕 재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이 그러겠 노라 하자 인상여는 부리나케 숙소로 돌아가 하인을 시켜 구슬을 조나라로 몰래 가져가도록 했다. 그리하여 구슬은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완벽'이라 함은 한 점의 흠집도 없이 훌륭한 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며, 위의 고사 에서처럼 훌륭한 것을 그대로 무사히 보존한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말로 '완벽'이라 하면, 어떤 사물이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거나, 또는 일 처리를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우리 말은 한자어 권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알면 어휘가 좀 더 풍부 해진다. '완벽'이라는 이야기에서 또 '화씨지벽(和氏之璧)"이니. "문경지우(刎頸之友)"라는 말이 이어진다. 시를 공유한 후로 넘긴다. 당분간 박노해 시인의 시를 연속해서 읽어 볼 생각이다.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 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실제 삶에서 완벽은 우리가 다가가는 만큼 도망가는 신기루(蜃氣樓)이기 때문에, 완벽이라는 단어에는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배철현 교수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을 완벽을 시도해 깨달음을 얻은 새 한마디로 소개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을 완벽한 하루로 만드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행(飛行)이 아니라 음식(飮食)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조나단은 달랐다. 조나단 갈매기에게는 먹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비행이 중요했다. 조나단의 아버지도 비행의 목적은 먹이를 찾는 것이지, 비행 자체가 아니라고 그를 나무랐다. 그러나 조나단은 하루 종일 '완벽한 비행' 그 자체를 위해 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조나단은, 반복된 비행 연마를 통해, 비행 기술의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 갔다. 그건 단지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가능의 한계를 알고 싶었다. 물론 그는 언제나 경계를 확장하기 때문에 실패했다. 실패는 완벽을 갈고 닦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실패가 없는 성공이나 완벽은 존재할 수 없다.
어느 날 조나단은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급강하하던 중, 정확한 순간에 멈추지 못해 벽과 같은 수면에 부딪쳐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을 수용하고, 다른 갈매기처럼 그저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연명하는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완벽한 비행을 꿈꿔왔지만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한 자신에게 실망한 그는 고민하다가, 다시 갈매기로서는 한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비행 기술을 연마하기로 다짐했다. 조나단은 매처럼 날개를 최대한 접은 뒤, 몸과 바람의 흐름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고속으로 날면서도 방향을 자유자재로 전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조나단은 '매가 된 갈매기'가 되었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의 동료 갈매기들에게 새로운 비행을 선보였다. 그러나 조나단의 새로운 비행 기술은 동료 갈매가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조나단은 공동체에서 추방된다. 조나단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을 나온 죄수 꼴이 되었다. 그는 동료 갈매기들에게 배를 따라다니며, 어부들이 버린 물고기 머리를 먹으며 연명할 필요가 없다는 '복음(福音)'을 전하였지만, 그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처럼, 조나단은 배척을 당한 것이다. 조나단이 슬픈 것은 자신이 소외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동료들이 완벽한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잠재성을 찾지도 않고 훈련시키지도 않아 발휘할 길이 없었다.
'완벽'은 나의 최선을 요구하는 희망이다. 완벽 추구는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나에게 절실한 한 가지에 몰입하도록 독려한다. 이러한 몰입을 통해,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보람이 있으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한 가지를 찾아 건너 가고,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올리려는 매일매일의 수련 속에 있어야 한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자신의 식구만 먹고 살리던 시몬에게 예수가 말했다. "깊은 곳으로 가라!" 이 말을 풀어 쓰면, "당신은 최선이 발휘되는 가장 깊은 심연으로 자신을 몰아 넣은 적이 있습니까?" 시몬이 깊은 곳으로 가자, 그는 베드로가 되었다.
갈매기가 완벽한 비행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천 번을 다시 태어나야 했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날 때마다 일생에 거쳐 완벽한 비행을 연마하기 위한 훈련을 천 번 반복해야만 했다. 더 잘 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저 하늘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것을 시도하는 갈매기를 기다릴 뿐이기 때문이다. "찬란하게 비행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짧은 인생 동안 시도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고 조나단은 말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이란 완벽 그 자체가 아니라, 완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일 뿐이다. 우리에겐 균형이 딱 맞는 완벽한 행복이나 건강은 없는 것 같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권력을 가지게 되면 친했던 인연들과 멀어지고, 유명해지면 생각지도 못했던 안티들이 나타난다. 아버지가 너무 잘 나가면 아들이 심리적 문제가 생기고, 아들이 또 잘 나가면 아버지가 위축되어 버린다. 이처럼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꼭 잃게 되어있다. 우주가 그렇게 돌아가니 너무 큰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위에서 이야기 했던 인상여의 우정을 그린 표현, 문경지교(刎頸之交)에 대해 알아본다. 인상여가 화씨의 구슬을 고스란히 가지고 되돌아오자 임금은 그를 상경(上卿)에 임명하였다. 그 무렵 염파는 조나라의 유명한 장수였는데, 이 사실을 알고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평생 전쟁터를 누비며 나라의 국토를 넓혀 왔다. 그런데 세 치 혀를 놀린 것 밖에 없는 자가 상경이라니! 어찌 그런 자에게 내가 고개를 숙일 수 있는가?” 이 말을 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러자 인상여의 부하가 말했다. “공께서는 염파의 윗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를 피하는 것은 비겁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는 공의 곁을 떠나겠습니다.” 이에 인상여는 “그대는 진(秦)나라 왕이 무서운가, 아니면 염파가 무서운가?” “당연히 진왕이 무섭지요.” 인상여가 다시 말했다. “나는 진나라 왕에게도 큰소리를 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염파 같은 자를 두려워하겠는가?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경계하는 것은 염파와 나,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두 호랑이가 싸운다면 진나라만이 좋아할 것이니, 내가 염파를 피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염파는 즉시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생사를 함께 하며, 목에 칼을 찔러도 마음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친하게 사귀었다 한다. 이후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을 가리켜 세상 사람들은 '문경지교'라고 부른다. 또는 '문경지우(刎頸之友)'라고도 한다. 문경지우의 문(刎)은 '목벨 문'자이고, 경(頸)은 '목 경'자이다.
이야기를 하는 김에 '화씨지벽(和氏之璧)" 이야기도 공유한다. '화씨의 구슬'이란 뜻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보물'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비자>에 나온다. 초나라의 화씨가 가공되지 않은 옥돌을 구하여 여(勵)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왕은 자신을 속였다 하여 그의 왼쪽 발을 잘랐다. 화씨는 여왕에 이어 즉위한 무(武)왕에게 다시 옥을 바쳤다. 무왕도 마찬가지로 옥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이번에는 그의 오른쪽 발을 잘랐다. 뒤를 이어 즉위한 문(文)왕은 그 옥을 다듬어 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보물을 손에 넣었고, 이를 '화씨지벽', 즉 '화씨의 구슬'이라 부르게 하였다.
'화씨지벽'이라는 말은 천하에 둘도 없는 귀한 보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재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한다. 그리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킴을 비유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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