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산까지 따라갔다 왔다. 모처럼 시골 친구들과 '화광동진'의 정신으로 한 나절을 보냈다 왔다. 마지막일 것 같은 우리나라의 장묘문화를 체험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갑자기 내가 꿈꾸는 '인문운동가'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인문학에서 학을 빼고 '인문'하면 이해가 쉽다. 인문이란 말 그대로 하면 인간의 무늬와 인간이 그리는 무늬, 둘로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인문과 함께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천문-하늘이 그리는 무늬'이란 말이 있다. 그리고 '천지인'을 생각한다면 '지문-땅이 그리는 무늬'이라는 말도 사용할 수 있다.
천문과 지문은 '이'가 지배한다면, '이'란 옥돌에 새겨진 무늬란다. 인간과 별 상관 없이 자연이 그리는 무늬인 것이다. 이에 비해 인문은 인간에게 새겨져 있고, 인간이 관여하는 무늬라면, 인문은 '이'보다는 '문'에 방점이 찍힌다. 인간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무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도 하나의 큰 무늬, 커다란 결 위에서 살고, 우리 인간 각자는 하나의 커다란 결속에서 움직이는 '다름' 가진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인문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근본적인 철학적 요소들과 인간 중심의 근원적인 사상을 다룬다. 그 이유는 좀 더 나은 삶, 지헤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인간끼리 잘 살자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힘든 처지에 놓인 그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고, 이런 것을 '인문정신'이라고 한다.
요즈음 관심받는 것도 관심을 주는 것도 꺼리는 각박한 요즈음,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이 인간들이 그리는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지식, 즉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따뜻해서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의 틀을 만드는 것이다. 이 생각의 틀이란 세계관이다. 세계관이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인간이 갖고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인문정신'이다. 이것은 문학, 역사, 철학에서 다루는 영역이다.
이런 인문정신이 부족하면, 우리는 쉽게 정치적 판단을 한다. 예컨대, 좋다, 나쁘다, 마음에 든다, 안든다고 하고는 이분법적인 방식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들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념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를 보고 싶은대로 봐서도 안 되고,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봐서도 안된다. 인간적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다시 한 번, 인간적으로, 매우 인간적으로. 이런 인문정신은 매너리즘에 빠진 일상, 부정적 사고, 열정 없는 꿈들을 막아주는 방패이다. 이런 방패는 사유하는 힘에서 나온다. 이 생각, 아니 사유하는 힘이 인문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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