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 오후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이 비를 은근히 기다렸다. 왜냐하면 채소류의 모종을 잔뜩 '철 이르게' 이식했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에 밭에 나가니, 고라니가 다녀갔다. 얌전하게 어린 입들을 먹었다. 미성년자들을 착취했다. 짐승이다. 문제는 아직 완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어린 채소들을 뿌리 채 뽑아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 난 요란하게, 마치 설치미술가처럼, 야채 주변을 오늘 아침 사진처럼, 정신 없게 만들었다. 짐승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건 받아준다. 그런데 뿌리를 뽑아 놓는다 점이 싫다. 어제 늦은 밤부터 좀 굵게 내린 비는 야채에게는 단비이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여름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가을비에 나뭇잎 보내고, 발가벗은 줄기에 겨울 비 내린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나무를 심었다. 옆 밭의 매화나무 꽃이 너무 예뻐, 나무를 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마트에서 모과 나무 두 그루와 왕자두 나무 하나를 사다가, 비가 많이 내리기 전의 어제 늦은 오후에 이식했다. 이 비에 잘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 만나는 일들이 줄었다. 그 바람에 밭에 나가 햇빛을 쬐고, 맑은 바람을 쐬며, 혼자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직도 창문을 두드리는 비 소리가 난다. 계속 더 내렸으면 한다.
어제는 코로나-19보다 충격적이었던 일이 있었다. 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 영상을 찍게 하고 유통시킨 ‘텔레그램 n번방’ 핵심인 ‘박사방’을 운영한 20대 남성이 체포, 구속되며, 얼굴이 공개되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성착취는 바이러스를 닮았다. 숙주 없이 자가 증식할 수 없고, ‘변이’가 되면 매우 위협적이다. 몇 만, 몇 십 만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숙주 노릇을 해왔다. 은밀한 비밀방에서 10대 소녀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반인권적 행위를 사주해왔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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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이다. 요즈음 요일이 중요하지 않다. 일상이 멈추었기 때문에. 그럴수록 시간 가는 것을 봐야 한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된다. 봄이 깊숙하게 왔다. 그리고 해 지면, 한 잔 하는 거다. 정철 카피라이터라는 분의 멋진 문장을 최근에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안다. 외로움을 술로 달래면 다음 날 아침 괴로움이 찾아온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어둠이 깔리면 다시 술을 찾는다. 한 병. 두 병. 세 병. 알면서 왜 그럴까. 하나를 더 알기 때문이다. 외로움 견디는 것보다 괴로움 견디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외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받는 정직한 거래가 술이라는 것을. (…) 술맛의 10%는 술을 빚은 사람입니다. 나머지 90%는 마주 앉은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해줬다. 그래, 우린 알코올에 취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취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에 과장된 반응을 보여주는 내 앞에 앉은 사람에 취한다."
권주가 / 양광모
아침에 핀 꽃은 저녁 바람에 지고
밤에 내린 눈은 아침 햇살에 녹네
그대여 잔을 비우라
살아가는 일은 그보다 더 짧으니
낮과 밤은 가려 무엇하랴
노을과 단풍을 얼굴에 물들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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