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여러 기분 좋은 일들이 많았다. 주말 농장 <예훈>의 흙은 비로 적당히 물러있었다. 흙을 갈아 업고 밭을 만들었더니, 옆 밭에서 씨감사를 주었다. 또 다른 옆 밭은 심고 남은 씨감자와 강낭콩을 맞교환 하여 강낭콩도 얻었다. 지지난 주에 심은 보리는 한 알도 거짓없이 다 싹이 올라왔다. 딸은 왜 보리를 삼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난 자연의 솔직함과 그 푸른 빛이 보고 싶었다. 어제 심은 감자와 강낭콩도 몇 일 지나면 반응할 것이다. 자연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동네 초등학교를 들렸다. 목련이 얼마나 피었는지, 동백꽃은 피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어처럼,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몸을 보여주고 싶은/마음에서/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봄꽃들 피어난다" 양지 바른 곳부터 꽃들이 피었다.
저녁에는 초연결시대를 보여주는 만남이 있었다. SNS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 5명이 찾아왔다. 와인과 인문학 아카데미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 난 동의를 하면서, 문화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인문운동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인문운동은 '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내는 일이다. 내가 정한 내 직업인 인문운동가의 지향점은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이름이 붙은 분명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 아직 이름 붙지 않는 모호한 곳으로 부단히 나아가는 자이다. 이게 인문운동가의 인문정신이다.
인문운동가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인문정신을 생산하여 이 사회를 인문적 높이로 올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당장 쓸모 없이 보이는 일을 지금 꾸준히 하는 것이 결국엔 우리의 미래를 열어준다고 믿는다. 당장 쉬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좀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는 것이다. 할 수 있으되 하지 않을 수 있는 절도가 멋이고 격이기 때문이다. 쉬운 길이 있으되, 참고 더 멋진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격이요, 슬기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인문정신이고, 봄의 정신이다.
이른 봄/김광규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
다리 가느다란 여중생이
유진상가 의복 수선 코너에서
엉덩이에 짝 달라붙게
청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리고 무릎이 나올 듯 말 듯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달란다
그렇다
몸이다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꽃들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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