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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문화적 인간인가? 아니면 야만인인가?

188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25일)

 

원래 오늘 아침도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빛나는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읽기를 이어가려 했다. 특히 그리스 비극인 소포클레스의 <<필록테테스>> 이야기를 하려 했다. 왜 문학작품이 필요한가? 그리스 비극이 출발한 이유를 좀 길게 이야기 하려고, 배철현 교수의 지난 <묵상>을 읽다가 이야기의 서론이 길어졌고, 주제가 방향이 바뀌었다. 그 이야기는 내일 아침에 한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문화’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컬쳐(culture)'는 ‘땅을 개간하다, 돌보다’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콜레레’colere의 과거분사형인 ‘쿨투라’cultura에서 파생되었다 한다. 그 의미는 ‘관리된 것, 개간된 것’이란 의미다. ‘문화적인 인간’이란 자신을 관리한 사람, '농장처럼, 자신의 마음(心田)을 갈아엎은 자다. ‘문화적인 인간’은 그곳에 새로운 종자의 씨를 심고, 그 씨가 발아하고 자라나고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사람들이 그 나무가 자비롭게 주는 그늘에서 쉬도록 배려한다.

그 반대가 야만인이다. 나는 문화적 인간인가? 아니면 야만인인가? 최근에 야당 대통령 후보의 7시간 통화 내역을 들어 보니, 그녀는 정말 야만인이었다. 문화는 1도 없다. 야만인은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고, 자신의 심전을 갈아엎은 적이 없는 괴팍한 사람은 야만인野蠻人이다. 야만인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의 노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응시한 적이 없고, 제어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을 제어함으로 획득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에겐 무질서와 폭력이 법이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충동적으로 떠나 들판(野)에서 헤매며, 마치 뱀(虫)처럼 웅크려 자신보다 약한 자를 공격하며 알 수 없는 말(䜌)을 끝없이 지껄인다. 야만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바바리언’barbarian은 그리스어 ‘바르바로스’barbaros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페르시아인들을 ‘바르바로스’라고 불렀다. 그들의 말을 흉내를 내어 ‘바르바르’, 즉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다는 자’란 의미다. 자신들 돌본 적이 없는 야만인들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 (배철현)

배철현 교수가 소개하는 문화의 정의를 들어본다.
• 로마시대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는 ‘쿨투라’cultura를 ‘학문과 지식을 갖춘 자’ 더 나아가 ‘그런 사람들이 관습과 업적’을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는 문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수의 소유인 문화나 거룩이 없다면, 인간에게 풍요나 물질이 소용없습니다. 그런 인간은 증오, 부러움, 시기, 복수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문화는 깨어 있는 자들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그럼 문명은 무엇인가? 문명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문화의 내용이라면, 문명은 외형이다. 그 외형은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게 마을이고, 도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쪼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 번역하자면 ‘마을 공동체 안에서 거주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마을 공동체’라는 물질적이며 추상적인 원칙이 없다면, 자신의 욕망대로 활동하는 야생동물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동물이 아니라 승화된 인간, 동물과 신 사이의 경계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마을 또는 도시’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마을 공동체는 직계가족이나 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니다. 혈연관계를 넘어선 공동의 문화를 공유하는 이념적인 공동체다. 그 공동체는 한 개인이 속한 집단과 대적하는 집단, 혹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종교와 다른 종교를 숭배하는 집단, 혹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이 포함될 수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마을 공동체란 언제나 분쟁소지가 있는 다양성의 활동공간이다. A라는 주민과 B라는 주민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혹은 도시 전체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 중재자가 지도자, 즉 리더이며, 그런 문제를 판결하는 장치가 법이고, 그 법을 만드는 곳이 입법부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사업부이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이고, 교육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래 온ㄹ 아침 시처럼, "지금" 말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시스템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삶이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큰 위기 앞에 있다. '정권교체론'에 편승한 '자본 기득권 세력', '분단 기득권 세력', '가짜 보수의 귀환'이 이루어지려 한다. 그 역사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침에 <한겨레신문>의 성한용 칼럼을 읽고 정리된 생각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는 정부 수립 이후 49년이 지난 1997년에야 처음으로 이뤄졌다.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다. 왜 그렇게 늦었을까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정권교체를 가로막은 세력이 있었다. 1961년과 1980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이들에게 영합해 세를 불린 자본 기득권 세력, 분단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의 이데올로기는 반공주의, 보수주의였다. 지역적으로는 영남 중심주의, 경제적으로는 성장 제일주의, 시장 만능주의였다. 보수 정당과 보수 신문은 이들의 전진 기지였다. 자신을 ‘주류’(메인 스트림)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기득권 세력이었다.

왜 보수 신문이 전진 기지일까? 많은 주변 사람들이 그 언론에 속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우리 역사에 1997년 정권교체는 기적이었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를 했다.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언론사주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치욕을 겪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권언유착을 끊어내려고 언론사 세무조사를 결단했다. 그러나 보수 신문 사주들은 정치 보복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 보수 신문들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이념 공세와 정치 공세를 줄기차게 퍼부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이 잘못하면 심판을 받는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따른 정권교체론은 정당할 수 있다. 현 정권의 잘못은 무엇일까? 검찰주의자 윤석열을 검찰총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인제 와서 부질없지만 따질 건 따져야 한다. 검찰이 어떤 집단인가? 권력기관이다. 기득권 세력이다. 그리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통령 당선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첫째, 검찰공화국의 완성이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보수를 표방한 자본 기득권 세력, 분단 기득권 세력의 화려한 귀환이다. 자본 기득권과 분단 기득권의 이해에 충실한 윤석열 후보의 수많은 발언이 그 증거다.

내가 보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보수의 가짜 못을 입은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보수는 수십년 영욕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거다. 개혁 보수, 합리적 보수로 진화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대선 주자 한 사람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거다. 그 결과가 윤석열 후보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나는 정권교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권교체론에 편승한 자본 기득권 세력, 분단 기득권 세력, 가짜 보수의 귀환을 반대한다.
 
오늘은 서울 강의를 가는 날이다. 그래 여기서 글을 멈춘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지금 말해야 한다. 그래 오늘 시는 김언 시인의 <지금>이다. 아침 사진은 지인 김지유가 아침에 보내준 거다.


지금 / 김언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변하면서 말하고 변한 다음에도 말하라.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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