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오늘 아침에 공유했던 시입니다.
요즘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집에서 멀지 않은 대전 현충원의 보훈길로 걷기 모임에 나간다. 대전 문화연대와 환경연합이 함께 하는 모임이다. 지난 해 말, 배우 하정우는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냈다. 난 그가 그렇게 많이 걷는 사람인 줄 몰랐다. 그에게 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나를 일으켜 계속 해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흥미로운 것을 배웠다. 티벳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우리는 "소요학파"라 부른다. 그는 걸어 다니면서 제자를 가르쳤다. 이 학파의 공부 방법은 느리게 걷기였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마음은 풍경이고, 걷기는 마음의 풍경을 지나는 방법"이라 했다.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두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은 마음의 여행이라 불러볼 만하다. 그래 천천하 걸어야 한다.
걷기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흥미롭다. 나무들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은 나무가 잘 보이는 계절이다. 특히, 겨울나무가 어떻게 희망을 품고 있는지 볼 수 있다. 2019년 나의 문장은, '살아 있으면,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이다. 겨울나무를 만나러 간다.
겨울나무/차창룡
단순해지면 강해지는구나
꽃도 버리고 이파리도 버리고 열매도 버리고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벌거숭이로
꽃눈과 잎눈을 꼭 다물면
바람이 날씬한 가지 사이를
그냥 지나가는구나
눈이 이불이어서
남은 바람도 막아 주는구나
머리는 땅에 처박고
다리는 하늘로 치켜들고
동상에 걸린 채로
햇살을 고드름으로 만드는
저 확고부동하고 단순한 명상의 자세 앞에
겨울도 마침내 주눅이 들어
겨울도 마침내 희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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