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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에 따른다.

187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19일)

사진 김지유

어제는 천지가 개벽한 판교라는 신도시에 다녀왔다. 꿈 많던 시절, 프랑스 아미엥이라는 소도시에서 만났던 친구를 보러 갔던 거다. 5시에 만났지만, 할 말이 얼마나 많았던지, 8시 반에 토로나-19로 영업을 중단하여야 한다고 해 나올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2년 만에 센트럴시티 호남선 터미널에 갔는데, 거기도 딴 세상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좋다. 여기서는 내가 좋아하는 "생장수장(生長收藏)"를 경험하며 살기 때문이다. 만물의 일년 생성(生成)은 생겨나고, 자라고, 거두어, 깊이 들어가는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에 따른다. 이를 예쁘게 표현하면, "쥐리락, 펴리락"이다. 봄에 만물이 새싹을 잘 틔우고, 건강하게 생겨나려면, 그 전년 가을부터 열매를 잘 거두어 깊이 수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장(收藏)이 잘 되어야 생장(生長)이 좋고, 생장이 좋으면 수장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먼저 쥐고 펴야 한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호흡을 잘 쥐고 장악해야, 소리가 잘 펼쳐진다. 판소리 명창 배일동 선생의 페북에서 만난 이야기이다. 지금은 쥘 시간이다. 왜냐하면 겨울이니까. 오늘도 일정을 최소화하고, '습정양졸'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습정양졸'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

다시 '생장수장'이란 말로 되돌아 온다. 그 말에 따르면, 올해 지금의 열매가 내 년 봄의 씨앗이 된다. 그래 만물은 저리도 서둘러 양분을 알뜰살뜰 쥐고서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있다. 지금은 '수'를 지나, '장'을 준비할 시간이다. 장을 준비 한다는 말은 '쥘 때'와 '펼 때'를 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사로잡는 기막힌 기법을 알고있다. 나무 밑 둥에다 손이 간신이 들어갈 정도로 작은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땅콩이나 밤 등을 넣어 두는 것이 원숭이 생포 작전의 전부라고 한다.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슬그머니 다가가 구멍 속에 손을 집어 넣고는 그 속에 든 먹이를 한웅 큼 쥐지만, 손을 움켜진 상태에서는 구멍에서 손을 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손을 펴서 먹을 음식을 포기하기만 하면 쉽게 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있어 잡히지 않을 것이지만, 원숭이는 그걸 포기하지 않고 쩔쩔 매다가 그만 자신의 몸전체를 인간에게 헌납하고 마는 것이다. '쥘 줄'만 알고 '펼 줄'을 몰라 자기 욕심의 회생양이 되는 것이 어디 원숭이 뿐일까? 세상사의 모든 비극이 '쥘 때'와 '펼 때'를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들을 수록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손에 쥐고 놓지 않고 있나? 돈, 명예, 권력. 손을 펴면 우리가 욕심 때문에 쥐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도 자신을 뒤돌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털없는 원숭이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방심하는 사이에, 글이 길어진다. 여기서 멈춘다.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김지유라는 친구 보내준 거다. 그래 시도 <저녁달>을 택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야기는 토요일날 다시 한다. 내일은 다른 이야기를 할 게 있다. 


저녁달/박철

길고 추운 시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요.

자연의 다른 생명들도 모두 분주합니다.
소리가 없어도 
보이지 않아도
저마다 무언가를 다지고 있어요.
그런 모두가 안녕하기를.

생장수장과 같은 말로,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보면,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주역』의 '건괘'에서 나온 것이라 했다. '원(元)'은 으뜸 원으로, 시작함을 나타내고, 형(亨)은 형통할 형으로 번창함을 나타나며, 이(利)는 이로울 이로 유익함을 나타내고, 정(貞)은 곧을 정으로 바르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천명도설』에 보면, 나무(木)는 동쪽에 있고, 거기 원(元)이라 적혀 있고, 불(火)은 남쪽에 형(亨), 서쪽에 이(利), 북쪽에 정(貞)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는 생명이 시작하는 봄의 원기(元)을 상징하고, 여름은 뜨겁게(火) 곡식과 열매가 성장(亨)한다. 가을은 서늘(金)해지면서 수확(利)하는 계절이고, 겨울은 검은 불(水)의 긴 잠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계절이다. 지금은 겨울이고, 코로나-19로 비대면을 요구하고 있는 시기기지만, 계절적으로도 꿋꿋하게 버티는 시기이다. 

"원형이정"은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라고도 말한다. "원은 착함이 자라는 것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고,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사랑(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절(禮)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正義)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선비를 꿈꾸는 나는 이 네가지 덕(德)을 행하며, '원형이정"의 순환을 마음농사의 도구로 삼고 있다.

<<주역>> 이야기가 나왔으니, <<주역>>의 대가로 올해 95세인 대산(大山) 김석진 옹은 “주역(周易)은 점치는 책이 아니다. 지혜를 얻고, 삶의 방법을 얻는 책이다. 주역은 ‘결정론적 운명론’을 말하지 않는다. 주역(周易)의 ‘역’은 ‘바꿀 역(易)’자다. 매 순간 끊임없이 변해서 돌아가는 세상과 우주를 담는다. 주역은 그 속에서 건강한 균형을 찾기 위한 삶의 값진 조언이다. 아무리 나쁜 운도 운용하기에 따라 변한다. 그뿐만 아니다. 주역에는 노력할 때 하늘이 도와주는 ‘자천우지(自天祐之)’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올해는 ‘천화동인(天火同人)’에서 ‘택화혁(澤火革)’으로 변하는 괘가 나왔다"고 하셨다. 

이건 점을 쳐서 나온 게 아니다라는 거다.  임인년은 60년마다 돌아온다. 60간지에 의해 60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괘를 지금 말하는 거다. 다만 그걸 풀어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읽어내는 깊이가 달라진다. "임인년은 천화동인 괘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주역에 이미 나와 있는 괘다.” 주역의 괘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다고 한다. 체가 몸뚱이라면 용은 팔다리다. 체가 찰흙이라면 용은 찰흙으로 만든 형상이다. 체가 바탕이라면 용은 변화에 해당한다. 대산 선생은 올해의 체는 천화동인이고, 용은 택화혁이라고 했다. '천화동인'이란 말은 "어떤 일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함을 하나로 합쳐 뜻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주역에서는 마음 먹은 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운으로 푼다. 천화는 불이 하늘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 마음 먹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화동인’은 천하의 인재들이 한마음이 되었다는 뜻이다. 작년 말에 많이 듣던 말이다. '화천대유'와 함께.

대산 선생은 "천화동인, 무슨 뜻인가. 천 화동인은 “하늘 천, 불 화다. 하늘 괘와 불 괘가 만난다. 여기서 핵심은 ‘동인(同人)’이다. 동인이 뭔가. ‘사람이 같이한다’는 걸 뜻한다. 그럼 무엇을 같이 하겠나.” 무엇을 같이 하는 건가?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에서 이합집산으로 동인하고, 모두 유유상종으로 동인한다. 또 코로나 정국에서도 동인한다. 코로나에 막혀서 같이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동인하게 된다. 유세장에서도 서로 만나게 된다.”

대산 선생은 작년 1월에 코로나 사태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지극정성으로 임하라고 했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신하와 백성이 한마음 한뜻으로 임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일터로 돌아가지만 광주리가 비어 있었다.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로 못 만났던 사람들이 만나게 된다. 동인을 한다.” 단순히 사람들끼리 만나고 모이는 게 동인이 아니다라는 거다. 주역의 동인은 뜻이 더 깊다. 제대로 된 동인을 하려면 뒤에서 몰래 쑥덕쑥덕해선 안 된다. 바깥의 들로 나가서, 탁 트인 공간에서, 공개된 자리에서 함께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동인이다. 그런 동인을 하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어떤 강을 건너야 하나? “동인(同人)은 통합(統合)이란 뜻이 숨어 있다. 앞이 강으로 막혀 있다. 그럼 건널 수가 없다. 만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강 건너 사람을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내가 건너가고, 저쪽에서 건너와야 한다. 그게 탁 트인 들에서 만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소소하고 자잘하게 만나는 게 아니라 큰 틀에서 만나야 한다. 그게 동인의 진정한 의미다.” 그리고 대산 선생은 “진정한 동인에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이 있다. 큰 내를 건너가야 이롭다는 뜻이다. 여기서 ‘섭(涉)’자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한 도강(渡江), 도해(渡海)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건널 섭자에는 섭외하다, 교섭한다는 뜻이 있다. 그냥 건너는 게 아니라 교섭해서 마음을 터놓고 만나야 한다. 그래야 동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대산의 말씀을 더 들어 본다. 백성호 기자가 올해의 최대 이슈인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지 믈었다. 그러지 그는 다음과 같이 답을 주셨다. 주역의 괘에는 체(體)와 용(用)이 있는데, 대산 선생은 올해의 체가 천화동인이고, 용은 택화혁(澤火革)이라고 했다. ‘택화혁’의 혁괘가 나온 것은 임의로 고른 게 아니라 주역에 따른 것이라고하시며, 그는 “여기서 핵심은 ‘혁(革)’자다. 바꾸다, 개혁하다, 혁명하다는 뜻이다. 올해는 선거로 대통령이 바뀐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 택화혁 괘에는 그런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떤 갈림길인가? 

선생은 “택화혁 괘에는 ‘군자(君子)는 표변(豹變)이요, 소인(小人)은 혁면(革面)이다’는 대목이 나온다. 군자는 표범처럼 바꾸는데, 소인은 겉모습만 바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군자를 뽑을 건가, 소인을 뽑을 건가의 문제"라는 거다. “표범이 털갈이를 할 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갈아버린다. 겨울이 오면 춥다. 그래서 표범은 털갈이를 한다. 자신의 묵은 털을 다 뽑아내는 거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걸 통해 스스로 진정한 변화를 이룬다. 그래서 진정한 군자는 표변(豹變)을 한다. 진실로 속마음까지 다 바꾸는 거다. 그게 군자다.” 반면 소인은 “속은 바꾸지 않고 화장만 바꾼다. 낯빛만 고친다. 그래 놓고서 다 바꾸었다고 말한다. 딴마음을 먹기 쉽다. 그게 혁면(革面)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겉모습만 잘하는 척, 남한테 잘 보이려고만 한다. 혁(革)괘의 진정한 바꿈은 그런 바꿈이 아니다. 때마침 올해 대선이 있으니 우리가 그런 국운을 맞고 있다. 그러니 국민이 선택을 잘해야 한다.” 

선생은 "표변과 혁면 중에 주역이 요구하는 건 표변이 아니겠나. 하늘이 요구하는 건 표변이 아니겠나. 혁괘는 진정한 바꿈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게 간단한 말이지만 여기에 이치가 다 들어 있다”고 덧붙이셨다. “대통령 선거를 하는데 누구를 뽑을 건가. 조금이라도 군자에 가까운 사람을 뽑아야 한다. 거짓말하는 사람, 얼굴만 바꾸는 사람, 속이는 사람, 좋게만 보이려 하는 사람, 바꾼다고 해놓고 안 바꾸는 사람. 그런 혁면(革面)만 하는 대통령이 나오느냐, 아니면 표변(豹變)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오느냐. 우리가 그런 기로에 서 있다.” 그렇다면 혁면과 표변, 누가 어느 쪽인지 어떻게 구분하나? “공개적인 사람, 진정성 있는 사람, 본인이 모범을 보이는 사람. 이 정도 덕목은 있어야 국민이 선택할 때, 저 사람이 군자다 소인이다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지 않겠나. 좋은 사람 뽑아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 뽑으면 되겠나.”

이어서 선생은은 표변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강조하셨다. “주역은 휘겸(撝謙)과 노겸(勞謙)을 강조한다. 휘겸은 엄지손가락 휘자에 겸손할 겸자다. 엄지손가락은 최고다. 나머지 네 손가락을 어루만지고 다스릴 수 있다. 그런데 네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싸보라. 그럼 엄지가 네 손가락 밑으로 들어간다. 표변의 지도자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하늘로 삼아야 한다. 그게 휘겸의 지도자다.” 그리고 노겸은 “수고로워도 겸손한 거다. 자기가 공을 세웠어도 국민에게 돌리는 겸손함이다. 휘겸의 정치와 노겸의 정치. 이 두 가지를 갖추면 된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를 다음과 꼽으셨 다. “유가의 정치철학을 담은 홍범(洪範)에는 여덟 가지 정치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맨 첫 번째가 일왈식(一曰食)이다. 식(食)이 뭔가. 민생이고 경제다. 무엇보다 사람이 먹고 살도록 해야 정치를 잘하는 거다. 다시 말해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여기에서 주역이 경고하는 바도 있다. 재물을 분명히 다스리고, 말을 거짓 없이 바르게 하고, 백성(국민)이 재물에 대한 비행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야만 정의롭게 된다고 했다. 차기 지도자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미래를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혁괘의 시대 정신이다. 대통령이 됐는데 때가 바뀌는 걸 모르고 시대 정신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나.” 선생으로부터 좋은 통찰을 얻었다.

경제를 살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도록 하되, 재물을 분명히 다스리고, 재물에 대한 비행에 빠지 말도록  하게하고, 시대의 흐름을 , 시대 정신을 잘 읽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훅 다가왔다. 노자의 철학이 흐른다. 노자는 <<도덕경>> 제3장에서 잘 말하고 있다.
 
굳히 제목을 붙이자면 "안만(安民)의 길, 마음은 비우고 배는 든든하게"이다. 우선 원문을 
不尙賢(부상현) 使民不爭(사민부쟁) 
不貴難得之貨(부귀난득지화) 使民不爲盜(사민부위도) 
不見可欲(부견가욕) 使民心不亂(사민심부란)
是以聖人之治(시이성인지치)
虛其心 實其腹(허기심 실기복)
弱其志 强其骨(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상사민무지무욕)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부감위야)
爲無爲 則無不治(위무위 칙무부치)

현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경쟁 의식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손에 넣기 어려운 재물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도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부추길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백성의 마음은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백성들의 마음을 비게 만들고 그들의 배는 부르게 만들며,
그들의 의지력은 약화시키며 그들의 신체는 강건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백성들을 무지 무욕의 상태에 두게 한다.
비록 지혜와 수완을 갖춘 자가 있을지라도 감히 제주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
작위 함이 없는 다스림에는 결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처음 부상현이 어려운 말이다. 이건 훌륭한 사람들을 떠받들거나 그들에게 상을 주면 그것 때문에 서로 다투고 질시할 것이기 때문이니, 현자를 존중하지 마라는 말이다. 그리고 성인의 다스림은 무엇보다 백성들로 '간교한 마음'이나 그 마음에서 나오는 '허망한 야심'을 없애도록 도와 주고, 그들로 '배와 뼈'로 대표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도록 해주는 일을 우선으로 삼으라는 거다. 성인은 나아가 사람들로 '무지(無知)', '무욕(無欲)', '무위(無爲)'의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무위의 다스림이 최고의 다스림으로, 이렇게만 되면 만사가 저절로 풀려갈 것이라고 한다. 계속 버려서 결국 우리의 제한된 안목에서 얻어졌던 일상적 지식이 완전히 없어지는 완전한 '무지'의 경지에 이르면 그때 새로운 의미의 완전한 앎, 궁극 지식의 경지가 트이는 셈이다. 이를 '박학한 무지(docta ignorantia)'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 지식을 넘어서는 참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 그런 통찰을 얻기 이해서는 일상적 지식이 주는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깨닫는 것이다. 하상공의 말처럼 우민(愚民)이 아니라 안민(安民)의 장이다. '무지無知 ', '무욕無欲 ', '무위無爲 '의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의 전제가 '배와 뼈'로 대표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도록 해주는 일을 우선으로 삼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결국 기본적인 필요와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성인의 다스림도 불가능한 거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