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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1575.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은 우리 동네 어른 시인을 만난다. 이 시를 소개한 문태준 시인에 의하면, "나태주 시인은 자신이 쓴 글에서 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선량함을 꼽는다"고 했다. 나태주 시인은 “시인들은 겸손해야 하고 늘 자기만의 문제나 느낌, 생각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그것에 대해 겸허히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 하시며, 또한 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여야 한다고도 하셨다. 이러한 성정은 우리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개울이 흘러가는 걸 보고 따라가면서, 자전거를 끌고 홀로 가면서 누군가를 떠올려 전화를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한참을 잊고 살았던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그이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의 일을 묻고, 오늘의 안부를 전하고, 내일의 안녕을 기원한다. 따뜻하고 밝고 경쾌한 음색으로. 착하고 어진 성품에서 생겨난 전화 음색으로.

 

나의 단점은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핑계 거리는 있다. 나는 불쑥 전화를 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어제는 시내에서 돌아 오는 길에 한 공원에 차를 세우고,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봄비가 내리고 흐리더니, 어제는 구름이 높고 하늘이 맑았다. 그러면 오늘 공유하는 시가 생각난다.

 

 

전화를 걸고 있는 중/나태주

 

바람 부는 날이면

전화를 걸고 싶다

하늘 맑고 구름 높이 뜬 날이면

더욱 전화를 걸고 싶다

 

전화 가운데서도 핸드폰으로

멀리, 멀리 있는 사람에게

오래, 오래 잊고 살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을 찾아내어

 

잘 있느냐고

잘 있었다고

잘 있으라고

잘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나는 오늘

바람이 되고 싶고

구름이 되고 싶은가보다

가볍고 가벼운 전화 음성이 되고 싶은가보다

 

나는 지금 자전거를 끌고

개울 길을 따라가면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중이다.

 

 

정철의 <사람 사전>에서 "돈"을 이렇게 정의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건. 그러나 다음 두 문장을 잊지 않으면 말도 탈도 없다. 땀이 난다. 꿈에 쓴다." 그럼 '돈이 많다'라는 문장에서 '많다'는 것은 "내 것을 다 갖고 추가로 남의 것을 조금 더 갖다. 더 가져서 좋은데 무겁다. 더 가진 걸 놓아 버리면 되는데 그건 또 싫다. 그래서 계속 무겁다. 앞으로 가지 못한다. 낑낑 그 자리. 맴맴 그자리." 재미있다. 세상의 모든 단어에는 사람이 산다. 나는, 늘 류근 시인처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교육,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자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가치 따위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할 뿐이다. 거짓과 음모와 야비와 몰상식과 기회주의에 치욕을 느낄 뿐이다."

 

매주 화요일은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하는 날이다. 그래 오늘도 지난 주처럼, 조현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에 나오는 공동체 한 곳을 만나 볼 생각이다. 그 이유는 출세하고 부자가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이다. 더 이상 미래만을 걱정하며 평생 준비만 하는 인생을 살 필요가 없는, 아이들에게도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닦달 하지 않는 세상을 가능한가 알아보고 싶어서 이다. 저자 조현 기자는 가진 게 좀 있다 해도 교육비를 대고 노후 준비만 하다 인생을 마칠 생각이 없다면 함께하는 삶을 살아 보라고 권한다. 아니면 가진 게 없을수록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며, 코하우징 하나를 소개하였다.

 

서울 도봉동 은혜공동체 50명이 사는 코하우징이다. 이곳은 2017년 8월에 입주한 5층 주택으로 도서관과 술을 마실 수 있는 바, 카페, 게스트르룸까지 갖추었다. 이 주택을 짓는데 든 돈이 약 45억 원라니, 주택 입주비는 1인당 약 1억원이 든 셈이다. 시작할 때 공동체가 가진 돈이 약 3억원이었는대, 서울시가 낮은 금리로 융자해주는 한국사회투자기금 10억권을 대출 받아 부지를 샀고, 그 부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유 주택에 입주하기로 한 이들이 입주 비를 내서 대출금을 상환했다 한다.

 

주택 소유권은 은혜공동체가 갖고, 입주자는 전세금을 내고 입주하는 형식이다. 공동체 주택은 지분을 가진 사람이 자기 지분을 팔아 버린 뒤 엉뚜한 사람이 지분을 사서 들어올 경우 공동체가 와해될 수도 있고 분쟁이 생길 여지가 있어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가구 당 전세금은 1억 500만 원이고, 소득이 적은 가구는 7천만 원만 내도록 깍아줬다. 모아놓은 돈이 없는 사람은 시중 금리 정도의 월세를 내고 산다. 월세도 바깥의 절반 정도이다. 이 정도 비용으로 온갖 부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다 늘 다정하고 도움을 주는 친구와 언니, 오빠, 형, 동생들이 곁에 있고, 아이들에겐 이모, 삼촌이 덤으로 생긴다.

 

코하우징, 공유주택에 사는 은혜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어 삶의 여유를 즐긴다.

(1) 내부 안전망을 위해 기금을 조성해 의료비와 출산비, 교육비를 지원하고, 실직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일종의 안전망이다. 큰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더라도 개인적인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2) 여행을 갈 때도 여럿이 함께 계획성 있게 준비하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된다. 가령 이 공동체는 매년 한 차례 모든 구성원이 해외여행을 간다.

(3)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게 공동 밥상이다. 1인당 내는 저녁 식비가 한 달에 10만원 정도이다. 저녁마다 부엌에 매여 살지 않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공동체원 중 한 명을 전담 요리사로 지정해 월급을 주고 당번제로 서너 명씩 돕는다. 식사는 경제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 간 대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공동 밥상을 하면, 그 때 밥상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생존 수단을 넘어서 행복을 증진하는 최고의 소통장이 된다. 뿐만 아니라, 모처럼 값비싼 음식을 준비해도 혼자서는 밥 맛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려 먹는 것은 배고픔을 해결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