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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박수소리 시대정신

4년 전 글이다 이때부터 인문 운동을 했다.

폐북을 보다가, 박찬운 한양대로스쿨 교수의 인문정신에 대해 쓴 글이 오늘 아침 내 눈을 잡아 끌었다. 인문운동가의 입장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인간과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세계와는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런 것들이 인문운동가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에도, 어떤 상황에도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법학, 과학 등은 단지 기술일뿐이다. 심하게 말하면.

법학의 경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채워진 규범은 분명 어떤 인간을 전제로 할 때에만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을 위해 과학을 하는가도 어떤 인간을 전제로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요즈음 인문학, 인문학하며 떠든다. 말을 바꾸어야 한다. 인문정신을 배워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문정신을 인문학을 통해 배우자는 것이다.

1. 인문정신의 첫 째는은 자유정신과 그것에서 비롯된 비판과 저항정신이다. 중세를 이기고 다시 태어난 시대인 르네상스를 우리는 인간의 시대 회복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시대는 인간의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노예가 아니라는 깨달음의 선언이다. 우선 자유는 권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어떤 종교도, 어떤 제도도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의 표출은 관습을 비판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대전시청 건물을 보고, 서울 시청 건물도 보았다. 일부 과학자들은 서울시청 건물을 흉본다. 에너지 효율이 없다고, 여름에 덥다고 흉본다. 난 잘 모르지만, 건물에 인문정신이 들어 있어 좋아한다. 우선 서울시청 건물은 권위적이지 않다. 시청이 시민을 압도하면 안 된다. 이제부터 건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아야 한다. 그것이 비판적 인문정신이다. 건물 하나에서 자유와 권위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비판적 인문정신이다.

이젠 관존민비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젠 '위대한 개인'으로 태어나 시민이 주인이라는 시민의식을 키워 관과의 힘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관존민비는 일제 식민통치와 해방 이후 기나긴 독재의 유산이다. 일제 시대 관리들은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하면서 엄혹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자유와 부를 누렸다. 그리고 그들은 독재자의 폭정을 도우면서, 특히 그들의 하는 일들을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며 권력과 부를 누렸다.

2. 인문정신의 두 번째는 과학적 합리주의 정신이다. 이것은 어떤 지식도 그대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을 말한다. 만일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 특정의 이념을 강요해도 우리는 저항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 인문정신의 세번 째는 통합적 사고, 곧 통섭統攝이다. 이 사고는 우리의 눈에 들어 온 하나의 장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객관적 진리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의미한다. 하나의 장면과 그 이면에 숨은 것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진리가 서로 연결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인문적 사고는 한 장면 속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는 자세, 그 장면이 주는 메시지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장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수많은 스토리를 읽어 내는 것이 인문적 사고이다.

왜 인문학인가?

기술 차별성이 기업의 가치를 제공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기술 격차가 점차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변별력 없는 기계문명 기술들을 어떤 가치로 재탄생시킬 것인가가 곧 미래 기업의 가치가 될 것이다. 이젠 기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집약된 정보의 검색이나 분석을 뛰어 넘는, 파괴력 강한 상상력과 직관력을 발휘하는 영성 능력이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인간을 능가하는 스마트한 기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화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간의 사고력이 진화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길 두려워하고, 두려움 앞에 패기와 열정을 잃어 가고, 그래서 더 이상 치열하게 사고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아무리 인문학 책을 쌓아놓고 읽어 내려간다 해도 즐비한 지식의 쇼윈도 앞에 자신만의 독창 사고력으로 이 모든 지식을 융합시키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문학 열풍은 또 하나의 껍데기가 될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서 주도할 무언가를 상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수백년을 관통한 지혜의 인사이트를, 공유를 통하여 우리 DNA에 내재화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판 자체를 바꾸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젠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기득권 세력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과를 뛰어넘는 '융합'을 위해 인문학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어디서 얻은 사진인줄 모른다. 내가 찍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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