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6.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매주 일요일은 묵상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오늘 아침 사진은 내가 나를 수련하는 공간이다. 지난 유성 재래 시장 장날에 산 프리지아 꽃이 활짝 피었다. 오늘의 화두는 수련의 공간이다. 여기서 수련(修練)은 습관에 젖은 일상의 나를 버리고, 스스로 감동할 만한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다. 수련은 일상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양적인 시간으로부터 나를 탈출시키는 연습이다. 수련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과 같은 시간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행위이다. 수련은 시간의 소중함을 포착해 질적으로 다른 순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이다.
수련을 하려면 장소가 중요하다. 수련하는 장소는 새로운 나를 탄생시킬 거룩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장소는 예수의 겟세마네 동산, 붓다의 보리수 아래, 무함마드의 메카 외곽 히라 동굴 등이 대표적인 공간들이다. 우리는 수련하는 장소를 '도장(道場)'이라 한다. 왜냐하면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에 있던 보리수를 우리는 '도장수(道場樹)라 부른다. 후에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면서 생긴 단어이다.
'도장수'는 원래 산스크리트어의 '보디 만다라'를 한자로 번역한 표현이다. 보디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나 알지 못했던 진리를 수련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 깨달음의 대상이 만다라(Mandara)이다. 만다라는 우주의 중심이며 세상의 축이다. 만다라는 사방으로 펼쳐진 정사각형 안에 존재하는 한 점으로, 흔히 원형으로 표시한다. 그 점은 수련하는 사람이 지향해야 할 마땅하고 유일한 처음이다.
무슬림들은 일생에 한 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로 향한다. 이 여정을 아랍어로 핫즈(hajj)라고 부른다. 이 말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것과 구별된 거룩한 경내로 진입하는 용기이다. 무슬림들은 메카로 들어가 라마단(Ramadan)이라는 종교 의례를 행한다. 라마단은 원래 이슬람 월력으로 1년 중 가장 뜨거운 아홉 번째 달에 해당한다. 섭씨 45도를 웃도는 가장 더운 말에 메카를 찾는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꺼이 불로 태워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글쓰기를 하는 것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위대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글쓰기로 수련을 하는 것이다. 워렌 버핏은 "누군가 오늘 그늘에 앉아 있습니다. 그가 오래 전에 나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나중을 위해 오늘 준비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멈춤이 중요하다. 수련을 위한 좌정(坐定)이 바로 멈춤이다.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면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그래 멈추는 일이 더 어렵다. 좌정, 멈춤은 두 발로 걷는 특권을 포기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항상 움직이며 늘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않기가 훨씬 더 어렵다. 노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무위(無爲)'라 했다.
나의 고민은 글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할 말이 더 많아진다. 요즈음 사람들은 긴 글은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스타일을 유지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댓글에 종종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가 올라온다. 우린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한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우리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를 달자.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윤재철
바퀴는 몰라
지금 산수유가 피었는지
북쪽 산기슭 진달래가 피었는지
뒤울안 회나무 가지
휘파람새가 울다 가는지
바퀴는 몰라 저 들판
노란 꾀꼬리가 왜 급히 날아가는지
바퀴는 모른다네
내가 우는지 마는지
누구를 어떻게
그리워하는지 마는지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고독한지
바퀴는 모른다네
바퀴는 몰라
하루 일 마치고 해질녘
막걸리 한 잔에 붉게 취해
돌아오는 원둑길 풀밭
다 먹은 점심 도시락 가방 베개 하여
시인도 눕고 선생도 눕고 추장도 누워
노을 지는 하늘에 검붉게 물든 새털구름
먼 허공에 눈길 던지며
입에는 삘기 하나 뽑아 물었을까
빙글빙글 토끼풀 하나 돌리고 있을까
하루해가 지는 저수지 길을
바퀴는 몰라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나
노자는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라고 했다. 그 뜻은 성인은 무위를 행함으로써 말없이 가르친다. 성인이란 인위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수련과 그 안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려는 수련이 곧 무위이다. 서양에서는 이 무위를 위해 사바스(sabbath)를 한다.그러니까 사바스와 무위는 같은 의미이다.
사바스, 무위, 멈춤은 거룩한 행위이다. 거룩은 '구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거룩한 삶이란 기성 종교와 전통이 정해 놓은 종교 시설이나 명소에 가서 신들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구별해 놓은 시간을 엄수하며 사는 것이 거룩이다. 그리고 구별된 장소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 좌정(坐定)이 거룩이다. 여기서 좌라는 말이 흥미롭다. 좌(坐)는 앉을 '좌'자라 한다. 나 자신이 마땅히 존재해야 할 그 땅(土)에서, 나 자신을 제3자의 인간(人)으로 대면하는 일이다. 이 좌정이 수련의 첫 단계이다. 즉 일상적인 시공간을 나만의 구별 된 것으로 구축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정(定)은 앉아서 해야 하는 임무를 알려준다.
앉는 행위는 나 자신을 가장 취약한 상태로 몰아넣고 원래의 자신을 찾으려는 준비이다. 두 발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이며 특권이 되었다. 그러므로 좌정은 인간만의 특권을 포기하라는 명령이다. 죄정이라는 행위는 그러니까 자유로운 두 다리를 묶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수련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멈춤을 위해 유대인들은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를 구별해 특별한 일을 한다. 인생의 7분의 1일 이것을 위해 온전히 바치는 것이다. 그것을 '사바스'라 한다. 이를 우리는 '안식일'이라 번역한다. 원래 이 말은 '자신이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강제로 그만두다'라는 뜻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만들어야 할 조각품이다.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부단히 수련할 때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레 다할 때 자연스레 다가오는 신의 선물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좌정하는 수련을 산스크리트어로 요가(yoga)라 했다. 요가라는 말이 원래는 여느 말을 훈련시켜 준마로 만드는 훈련이었다. 요가는 많은 사람들이 신체 건강을 위한 운동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습관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려는 자신을 절제함으로써 자신의 최선을 발견하고 연마하는 훈련이다.
나에게 아침 글쓰기는 일종의 요가이다. 그걸 통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고, 나 자신을 깊이 들여 다 봄으로써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제거한다. 신은 우리에게 매일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한다. 난 신화학자 조지프 캠밸이 했다는 이 말을 늘 새기며 산다. "기쁨이 있는 마음속 깊은 장소를 찾으십시오. 그 기쁨이 모든 고통을 불태울 것입니다."
밤은 아침의 어머니이며, 아침은 밤이 선물해준 소중한 시간이다. 밤이 없다면 아침은 없다. 어머니인 밤이 있어, 아침이 있는 것이다. <창세기>는 "저녁이 됐다. 그리고 아침이 됐다. 첫째 날"같은 정형화된 문구로 이루어져 있다. 신은 7일 동안 매일 다른 것을 창조했다. 그에게 하루는 어제와 구별된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저녁은 신이 나에게 선물한 하루의 마지막이다. 그 저녁이 있어 내일 아침이 다시 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침이 먼저 등장하고 그 다음 저녁이 나오는데, 창세기의 배치는 다르다. 순서를 바꾸었다. 저녁은 다음 날 아침을 탄생시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저녁은 잠을 통해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겠다는 쉼과 다짐의 시간이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뒷면이 먼저 결정되어야 앞면이 결정된다. 배철현 교수의 <수련>이라는 책을 꼼꼼하게 읽고 얻은 생각들이다.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한다. 그들은 어디에 있든 정해진 시간에 메카를 향해 무릎 꿇고 앉아 이마를 땅에 댄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상기한다. 그게 나에게는 아침 글쓰기이다. 나는 글을 쓰며 내가 가고자 하는 위대한 여정 위에 있는지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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