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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주는 것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180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7일)

오늘은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이며 주일이다. 입동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 열 아홉 번째 절기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각 마을에서는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놓으며, 이웃은 물론 농사에 힘쓴 소에게도 나누어 주면서 1년을 마무리하는 제사를 올리는 날이다. 또한 각 가정에서 이 무렵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며, 동면하는 동물들은 땅 속에서 굴을 파고 숨는다고 한다. 입동 즈음에는 감을 수확해 곶감으로 말리는데 옛 조상들은 나무에 있는 감을 전부 따지 않고, 몇 개 남겨두었다. 이를 '입동 까치밥'이라고 부른다. 겨우내 먹을 것이 부족한 새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겨울을 시작한다는 입동인데, 30년 만에 가장 포근한 날이라 일기예보는 알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일찍 경기도 광주(廣州)의 초월읍 도곡초등학교와 경기도 하남시의 하남 유치원을 방문하여, 안전한 통학 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살펴 보는 견학을 떠난다. 우리 동네를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선진지를 견학하자는 취지이다. 동시에 가을의 절정을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아침 8시에 떠난다.

그 전에 <인문 일기>를 마칠 생각이다. 오늘 아침은 맹자가 말한 '득도다조(得道多助)'를 소환한다.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고, 또한 엄청난 부를 소유하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助) 사람이 많은(多) 사람이다. 오늘 선진지 견학을 떠나는 데 도와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고, 그 사람이 쓰러지지 않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맹자는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 되기 위해서는 인심(人心)을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득도다조(得道多助)’라고 한다.  즉, ‘도를 얻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라는 뜻이다. 평소에 남에게 베풀고 인간 답게 살았기에 그가 잘되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道)’란 사람의 마음이다. 득도(得道)란 산에 가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지도자가 ‘도’를 얻었다는 것은 민심을 얻었다는 뜻이 된다.
기업가가 도를 얻었다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평소에 주위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해 주었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득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 달에 멈추었던 '도가구계(道家九階)', 즉 도에 이르는 9 계단이 생각났다. 그 9 단계는 다음과 같다. 글을 눈으로 읽음-구송함-글의 문맥을 잘 살펴봄-글에 숨은 내용을 잘 알아들음-일을 잘 실천함-즐겁게 노래를 잘함-그윽함-빔-시원'이다. 위에서 말하는 도에 이르는 아홉 단계는 글을 읽되(①부묵, 副墨)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읽어라. 그것을 오래오래 구송하고(②낙송, 洛誦),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 핀 다음(③첨명, 瞻明), 그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 마저도 알아들을 수 있게 바로 깨닫고(④섭허, 攝許), 그 깨달은 바를 그대로 실천하고(⑤수역, 需役), 거기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감격을 노래하라(⑥오구, 於謳). 그리하면 그윽한 경지(⑦현명, 玄冥), 조용하고 텅 빈 경지(⑧삼료, 參廖)를 체험한 다음 시원(始原)의 도(⑨의시, 疑始)와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리라는 이야기였다.

지난 10월 25일 <인문일기>에서 맑은 눈으로 그 뜻을 잘 살핀다는 '첨명'의 단계 이야기를 했다. 특히 우리는 명(明)의 세계에 주목했다. 명(明)은 밝을 ‘명’ 자이다. ‘밝다’의 반대는 ‘어둡다’이다. 명 자를 풀이하면, 달과 해가 공존하는 것이다.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을 우리는 흔히 ‘안다’고 하며, 그 때 사용하는 한자어가 지(知)이다. 안다고 하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평생을 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외치다 죽은 이유를 난 알겠다. '명'자는 그런 기준을 세우고, 구획되고 구분된 ‘앎(知 지)’를 뛰어 넘어, 두 개의 대립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명확하지 않은 경계에 서거나 머무는 일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으면, 사물의 한 단면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옹고집과 다툼을 버려야 한다. 사물을 통째로 보는 것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 즉 '조지어천(照之於天)'이고, 도의 '지도리'(도추道樞, pivot, still point)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재를 있는 그대로 그렇다 함(인시,因是)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마음(명, 明)이다.

오늘은 그 4 단계인 '섭허(攝虛)'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서두가 너무 길었다. 오늘의 시를 공유하고, 사유를 이어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도 칼릴 지브란의 네 번째 시를 함께 읽는다.

주는 것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그대가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은
언젠가는 다 내줘야만 하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 주라.

주는 때가 그대 뒷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것이 되게 하라.

그대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주리라.
그러나 오직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만 주리라.’

과수원의 나무들, 목장의 가축들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준다.
주지 않고 움켜쥐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기에......

분명한 것은,
밤과 낮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대로부터 무엇이나 받을 자격이 있다.

생명의 큰 바다에서 마실 만한 사람이라면
그대의 작은 시냇물로
충분히 그의 잔을 채울 만하리라.

'도가구계(道家九階)'의 4 계단인 '섭허(攝許)'에서 허(許)는 여기서는 '듣는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서 '섭(攝)' 자에 눈길이 간다. 사전에서는 '몰아 잡을 섭' 자라 한다. 섭 자를 파지하면, 손으로 귀를 세 개나 잡고 듣는 거다.

인문적 사고에 필요한 것이 통섭(統攝)이다. 여기에 섭 자가 들어간다. 요즈음 "인문학, 인문학"하면서 말이 많다. 말을 바꾸어야 한다. 인문정신을 배워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문정신을 인문학을 통해 배우자는 것이다.  인문정신의 첫째는 자유정신과 그것에서 비롯된 비판과 저항정신이다. 인문정신의 두 번째는 과학적 합리주의 정신이다. 인문정신의 세번 째는 통합적 사고, 곧 통섭(統攝)이다.

인문정신의 첫째는 자유정신과 그것에서 비롯된 비판과 저항정신이다. 중세를 이기고 다시 태어난 시대인 르네상스를 우리는 인간의 시대 회복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시대는 인간의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노예가 아니라는 깨달음의 선언이다. 우선 자유는 권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어떤 종교도, 어떤 제도도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의 표출은 관습을 비판하고 권위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킨다.

인문정신의 두 번째는 과학적 합리주의 정신이다. 이것은 어떤 지식도 그대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을 말한다. 만일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어떤 독재자가 나타나 특정의 이념을 강요해도 우리는 저항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정신의 세번 째는 통합적 사고, 곧 통섭(統攝)이다. 이 사고는 우리의 눈에 들어 온 하나의 장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객관적 진리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의미한다. 하나의 장면과 그 이면에 숨은 것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진리가 서로 연결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인문적 사고는 한 장면 속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는 자세, 그 장면이 주는 메시지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장면의 이면에 숨어 있는 수많은 스토리를 읽어 내는 것이 인문적 사고이다.

그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말이 '섭생'이다. '섭생(攝生)'에서 중요한 것이 "편안함을 추구 하면 몸이 나빠진다"이다. 이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전적 의미로 '섭생‘이라는 말은 ’병에 걸리지 아니하도록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다. 여기서 한문으로 섭(攝)자는 ’다스릴 섭'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섭생의 섭(攝)을 억제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나도 '섭생'하면 자신의 몸을 잘 대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자는 이런 것을 '귀생(貴生)'이라는 말로 사용한다. 귀생, 자신의 생을 너무 귀하게 여기면 오히려 생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오히려 섭생, 자신의 생을 억누르면, 생이 오히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귀생사지(貴生死地)’라는 말도 있다. 몸은 귀하게 여길수록 더욱 나빠진다. 어쩌면 귀한 몸 대접, 귀생(貴生)이 오히려 나의 몸을 망치고 병들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 같다.
  
‘섭생을 잘 하는 사람은 죽음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를 "선섭생자, 이기무사지(善攝生者, 以其無死地)"라 한다. 생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억제할 때, 그 생은 오히려 더욱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친 음식 먹고, 조금은 춥고 힘들 때, 오히려 인간의 생명은 최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몸을 적당히 고생시키는 섭생이 생을 위해 이롭다는 역설이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배부른 곳은 죽음의 땅이라는 것이다. 내 몸 귀하게 여기는 귀생,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섭생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역설 같다.

오늘도 글이 길어진다. 이젠 버스 타러 갈 시간이다. 따라서 '섭리(攝理)', '통섭(統攝)'이라는 말은 내일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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