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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영적 단계이다.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한 인간의 성숙도는 다른 이를 용서하는 능력의 크기에서 나온다. 자신의 신념을 깨고 원수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는 이는 숭고하다. "너희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누가 15:32)

용서(容恕)의 ‘용(容)’은 '어떤 대상을 보고 그 대상을 조목조목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산과 계곡을 더 커다란 덮개로 씌우듯 그 모두를 품어내는 것'이다. 용서의 '서(恕)'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을 일치시킬 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용기'같은 것이다.

'서'는 공자가 뽑은 인생 최고의 덕목이기도 하다. <논어> "위령공" 15편에 나온다. 자공이 공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有一言而 可以終身 行之者乎(유일언이 가이종신 행지자호) 인가?  “한 마디 말로써 종신토록 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즉, 일생 동안 한 가지만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러자 공자가 대답합니다. 其恕乎(기서호)인저 그것은 恕(서)일 것이다

'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그저 덮어주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지혜이다.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 즉 역지사지하면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

'서'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己所不欲(기소불욕), 勿施於人(물시어인)

용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고 상상함으로써 상대방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신비이다.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용서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용서는 사랑을 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용서는 '인간 가족'이라는 연약한 공동체에서 행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헨리 나우웬 Henri Nouwen)

용서는 상대방이 용서받을 만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이다.

램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 누가복음 15장 16-18

램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희망을 담았다. 그가 집중한 부분은 작은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다.

헨리 나우웬은 그림과 같은 제목의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영적 단계이다.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의 고민과 역경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

1. "아버지! 내 몫을 주십시오." 여기서 몫은 '유산'이라는 뜻으로, 신이 인간에게 가족 단위로 할당한 재산을 의미한다. 이 재산은 동산과 부동산 모두를 포함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양도할 수 없다.

작은 아들이 향한 '먼지방'은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장소이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약육강식의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심리적으로나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는 이곳에서는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순간의 쾌락을 위한 유혹이 난무한다. 쾌락은 이곳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경쟁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약이다.

작은 아들의 모습: 삭발-우리는 수용소나 군대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질 때 삭발을 통해 그 동동체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하나의 숫자가 된다. 거대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체 가능한 하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겉옷은 사라지고 속옷만 입은채다. 게다가 이 속옷은 다 떨어져 누더기가 되어있다. 그 다음은 작은 아들의 발을 보아야 한다. 그 발을 보면 그가 살아온 날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신발은 다 닳았다. 신발은 자신이 소중하게 매달리던 가치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신발을 벗는 것은 과거의 습관을 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전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듯, 아버지의 품은 안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거룩한 장소이므로 신발을 벗어야 한다.

2. 돌아온 탕자

아버지의 얼굴은 신의 모습이다. 그림에서 아버지의 얼굴 부분이 가장 빛난다. 아버지의 사랑은 상대방의 자격과 상관 없다. 그 사랑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그러운 용기이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양손이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세 가지의 상징적인 행위를 보인다.

-새 옷을 입힌다. 과거와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새 못을 입는다.

-손에 반지를 끼운다. 결혼반지의 의미처럼, 반지는 아버지와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자 결심이다.

-새 신을 신긴다. 이는 아버지와 계약을 체결하는 의미로, 과거의 습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헌 신발을 버리고 아버지가 주는 새신을 신어 새로운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다. 여기서 송아지는 희생물이다. 작은 아들의 죄가 송아지에게 전가되어 살해되면 그의 죄는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ㅜ살해된 송아지를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먹음으로써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3. 큰 아들의 태도: 타인의 기쁨을 같이 기뻐할 수 있는가?

그림의 오른편에 있는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해 남을 멸시하는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누가복음 18:10-"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