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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고급스러움의 새로운 버전이 소박함이다.

소박함은 TV도 없고, 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방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방이 처음에는 심심하고 무료한 방이지만, 생각하는 방, 명상하는 방으로 바뀐다. 소박한 것과 정말 고급스러운 것은 서로 통한다. 고급스러움의 새로운 버전이 소박함이다.

음식에도 소박함의 코드가 있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일수록 양념을 적게 쓴다. 정갈한 반찬들은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다. 그러면서 그윽한 맛을 낸다.

소박하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다. 꼭 필요한 것만 있는 거다. 그런 소박함을 통해 우리는 전에 안 보이던 것들을 보게 된다. 고요함이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처럼. 그 소리는, 다시 보게 된 것은 창조의 아름다움, 창조의 신비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가장 필요한 것들은 다 공짜로 주어진다. 강가의 억새풀들은 그냥 주어진다. 그것들은 쫓기며 각박하게 살 때는 안 보인다. 우리가 소박해질 때 비로소 그게 눈에 들어온다.

소박한 삶은 식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처럼, 천명인 우리의 본성, 삶이라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깨어나서 찾아내는 것이다. 너무 많은 양념과 너무 강한 조리법으로 그걸 덥어버리면 삶이 원래 지니고 있는 '본래의 맛'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참나'의 자리는 텅 비어있다. 빈 공간이 있어서 방이 제 기능을 한다. 삶이라는 도화지에 꼭 필요한 점들만을 찍고, 삶의 여백을 누리는 방법이 소박한 삶을 사는 지혜이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여유롭게, 느리게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것이 소박한 삶이다. 때로는 소박함이 고급스러움보다 더 고급스러운 이유이다.

"몰라"하며 비우면, 우리는 '참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