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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진부와 참신

진부(陳腐)는, 한자로 풀이하면, '썩은 고기(腐)'를 남들이 보라고 '전시하는(陳)' 어리석음을 뜻한다. 이렇게 고기가 썩는 줄도 모르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을 가리켜 '진부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자신의 강점인 줄 알았던 고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만다.

반대되는 사람을 우리는 '참신한 인재'라고 한다. 참신은 한자어만 봐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참(斬)'자는 고대 중국에서 죄인을 죽이던 극형 틀인 수레와 도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참신(斬新)이란 도끼로 치듯 과거의 구태의연함과 완전히 단절한다는 뜻이다. 과거와 결연히 단절하고 새로 태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 식의 대화법이 자신들의 진부함을 스스로 헤아려 알도록 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런 식으로 내가 참신한지, 진부한지는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참신한 인물에게는 자신의 본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채찍질을 하는 멘토가 있다. 그리고 예술가는 매순간 진부함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자연도 진부함을 거부한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고 태양계와 같은 수많은 별들이 섬세한 침묵의 소리와 같은 블랙홀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이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이라는 블랙홀을 중심으로 단호하고도 숭고하게 회전하여야 참신한 사람이 된다. 숭고라는 말은 끝의 경계까지 밀고나갈 때 드러난다.

‘진부함’이란 산의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친 나머지 산 중턱에서 머뭇거리는 상태를 뜻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침묵의 소리가 만들어 내는 길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따라가기 힘들어 중간에 멈춰 버리기 일쑤다. 진부함이라는 뜻의 영어 '미디오크러티(mediocrity, 프랑스어로는 mediocrite)'는 중간을 뜻하는 medi와 험한 산을 뜻하는 'ocris'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사람은 자신 속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안무를 갖지 못한다. 자신만의 춤을 추지 못한다. 이 이유는 인간의 귀가 다른 삶들의 평가와 인정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자신이 만들어낸 삶에 달려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써 놓은 책이나 관습에서 삶의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 남들의 생각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자유를 아는 사람이다.

남의 것이나 따르는 삶이 계속되는 한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참신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진부는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하는 끔찍한 훼방꾼이다. 썩은 고기를 믿지말고, 버리고, 도끼로 치듯 과거와 단절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