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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배철현 교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어제 오후에 읽은 사마천의 <사기> 한 구절이 저녁 내내 머리에 남았다.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복숭아 나무와 오얏(자두)나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아래 저절로 발자국이 생긴다'는 뜻이다. 배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나무들은 일 년 내내 자연의 순환에 따라 말없이 조용하게 정진해 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개가 내리나 서리가 내리나, 그 나무에겐 열매를 훌륭하게 맺기 위한 당연한 과정일 뿐이다. 적당한 시간이 되니, 마침내 탐스런 복숭아와 자두를 맺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게 되었다. 그 매력이 바로 인생의 지름길이다."

한문 '혜(蹊)'를 찾아 보면, 의미가 여럿이다. '좁은 길', '지름길', '발자국' 등이다. 혼자 생각해 보았다. 발자국을 난긴 좁은 길이 지름길이다. 지름길은 멀라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요즈음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군대에서 보냈던 허송세월을 사는 것 같다. 허(虛)하다. 그러나 복숭아 나무와 자주 나무처럼, 말없이 이런 저런 책들을 많이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을 하며 보낸다. 그 길이 지름길일 것이다. 일상을 지배하며,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읽고, 글을 쓰고, 자연과 대화하며 산책하고. 사진 찍고 그리고 줄기차게 와인을 마신다.

내일 독서 모임을 위해서  어제 오전에는 한참 동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이사장 최진석) 프로젝트 "책 읽고 건너가기"의 10월 책이 『데미안』이다. 7월에는 『돈키호테』, 8월에는 『어린 왕자』 그리고 9월에는 『페스트』였다. 오늘 아침에 어제 『데미안』을 읽고 생각했던 것을 공유한다.

데미안이 화자 싱클레어와 처음 나누는 대화가 이 거다. "누가 놀라게 한다고 그렇게 놀라서는 안 돼." "(…) 너한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어떤 사람 앞에서 그렇게 두려워 떨면, 그 사람은 생각을 해보기 시작하는 거야. (…) 겁쟁이들은 언제나 불안하지.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너는 원래 겁쟁이가 아니야. 아, 물론 영웅도 아니지. 지금 넌 뭔가 겁나는 일이 있어. 겁나는 사람도 있구. 그런데 그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야. (…)"    

한 장 넘기면,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 "(…) 내가 널 놀라게 했지. 넌 그러니까 잘 놀라는 거야. 즉 넌 두려운 일이나 사람이 있는 거야. 그게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누구도 두려워 할 필요 없어. 누군가를 두려워 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한 거야. 예를 들면 뭔가 나쁜 일을 했어봐.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알고. 그럴 때 그가 너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는 거야."

나느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떠올렸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무언가를 원하면, 두려움이 시작되고, 그 때부터 우리는 그 원하는 것에 종속된다. 그래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까 자유롭고 싶으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지나치다면 버려야 한다. 두려움, 걱정 그리고 불안 등은 원하는 것과 비례한다. 자유는 자유자재(自由自在)를 줄인 말이다. 사실 자유는 그냥 주워지지 않는다. 내가 자유자재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그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가짜는 있어도 '공짜'는 없다. 그러니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할 때,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배워 법칙을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활용해서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면, 그 때 나는 자유롭다. 그리고 '자유로운 나'는누구인가?를 쉼 없이 또 성찰해야 한다. 왜? 뭐 좀 할줄 안다면, 우리 인간은 오만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네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라'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진짜 무지'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알고 무리하지 않으며, 나를 배려하고 나를 돕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곧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절제를 할 수 있다. 즉 멈출 줄 알고, 현실을 잘 직시하고, 무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절제의 한도 내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그만큼만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지혜롭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배우고자 한다. 그리고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용기있는 사람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이 세 가지, 즉 지혜, 아니 나란 누구인가를 깨닫고, 이어서 절제, 용기를 갖는 것이 삶을 '잘 살 줄 아는 방법인 것 같다. 내 마음 속에, 내가 만든 준칙이 만들어질 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절제로 내가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더 배워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