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해야 할 유일무이한 배역을 아는 사람은, 그것이 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연습'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프락시스'(praxis)라는 단어를 우리는 '연습'으로 번역했다. 프락시스는 처음과 마지막, 원인과 결과를 하나로 만드는 예술이다. 배우에게 연습이란 실전이며,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그것을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온전하게 쏟는 초인적인 수고다. 연습이란 저 하늘에 높이 떠 있는 별을 따서 자신의 가슴에 심는 용기이며 정성이다. 인생은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을 빛나게 만드는 무대다."
내 인생의 목표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나훈아는 자신의 역할을 잘 모르는 한 방송국을 "모르긴 몰라도, 거듭날 겁니다"라는 말로 넌지시 나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배교수는 말한다. "인간은 부모를 통해 동물로 태어나고, 인생이란 무대에서 자신의 배역을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거듭난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자유(自由)롭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 말미암는 이유는 자신에게서 찾는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자재(自由自在), 이를 위해서 평소의 지난한 연습만이 답이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만일 누가 그의 자유를 침범한다면, 그 대상이 최고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의 명령이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 '자유'는 외부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은 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노력을 통해 자유자재로워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훈아의 연기는, 가수라는 직업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해 저 하늘의 별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줬다. 배철현 교수는 나훈아의 공연을 그리스 비극에과 비교햤다. 그에 의하면 나훈아의 공연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비극의 특징 세 가지를 모두 가졌다.
"첫째 '심각'(深刻)하다. 심각이란 자기 자신을 위해 한없이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진행하는 헌신적 노력이다. 심각이란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10년 후 나 자신에게 감동적인 나를 위해, 저 하늘의 별을 가슴 깊이 '깊이 새기는' 각고의 노력이다. 나훈아의 연기는 온갖 하찮은 웃음거리가 난무하는 대한민국에서 정색을 알려줬다.
둘째 '목적과 수단이 하나'다. 오늘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내가 지금 하는 언행이 나의 유언이다. 그런 사람은 자유롭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김동건 아나운서로부터 언제까지 가수활동을 하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훈아의 대답을 허를 찌른다. "이제는 내려올 시간이라 생각하고, 그게 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종말론적으로 살고 있다.
셋째 '압도(壓度)적'이다. 압도적인 사람은 두려운 것이 없다. 두려운 것이 있다면, 자신이 최선을 경주하지 않아 이루지 못할 자신에 대한 후회뿐이다. 압도적인 사람은 '나는 나'인 사람이다. '나는 나'인 사람은 자신이 맡는 배역인 '나'를 위해 오늘을 헌신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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