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난 우리 동네 대전 유성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날짜의 끝자리 수가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 열리는 5일장이다. 우리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생활과 삶의 리듬이 원래 5였다. 근데, 서양 것이 들어 7일로 변했다. 게다가 일요일이 맨 앞에 나와 있다. 그래 난 요일을 무시하고, 유성장에 리듬을 맞춘다. 4일과 9일은 일을 덜 한다.
유통은 생산과 소비 사이에 끼여서 그 양쪽을 연결시키면서, 그 양쪽 위에 군림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생산과 소비보다 유통하는 사람이 이윤을 더 거두어 간다. 특히 제1차 산업의 생산은 노동이고, 유통은 권력이다. 그러나 재래시장은 권력화가 덜 된 유통의 장이다. 끼니때가 되면, 팔러 온 사람과 사러 온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관을 이룬다. 나도 가끔 그 대열에 끼어 한 끼를 때우면 마음이 훈훈해 진다. 그리고 배가 불러도, 사람들은 좌판 한 켠에 붙어 앉자, 녹두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며 호사를 누린다.
재래시장에 나갈 때는 삶의 온갖 잡다한 일상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로운 눈과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재래시장은 사는 자와 파는 자가 대등하고, 생산과 유통이 대등하다. 그래서 정감이 간다. 그러면서 잡다하고 어수선하다. 그것이 재래시장이 지닌 힘이다.
재래시장에 가면 삶의 구석구석을 들여 다 보는 호기심 많은 눈과 온갖 냄새에 예민한 후각이 필요하다. 어젠 유성 재래 시장에서 "먼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만났다.
봄/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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