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생은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부분으로 나뉘었다. 배우는 시기과 그 다음 일하는 시기로 나뉘었다. 인생의 전반부에는 정보를 축적하고 기량을 연마하며 세계관을 구축하고 안정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인생 후반부에는 그동안 축적한 기량을 활용해 세상을 헤쳐나가고, 생계를 꾸리며, 사회에 기여했다. 그런데 21세기 중반이 되면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데다 수명까지 길어지면서 전통적인 모델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그래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전례 없이 다급하고 복잡한 질문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는 늘 거의 늘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어떤 나이가 지나면, 대다수 사람들은 아예 변화를 싫어한다. 하지만 21 세기에 세계는 획 지나가고 자신은 뒤로 처지는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게다가 기대수명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후로도 수십 년을 멍청한 화석 상태로 보내야 할 수 있다. 최진석 교수는 시장 좌판대에 진열된 생선이 아니라 요동치는 물길을 헤치는 물고기로 살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앞으로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려면-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 끊임 없이 배우고 자신을 계속 쇄신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21세기 후반부로 가면서, 늘 낯선 것이 새로운 기본(new normal)이 되면서, 개인의 과거 경험은 물론 인류 전체가 겪은 지난 경험까지 미래의 안내자로 삼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새로운 기본은 이런 것들이 될 것이다. 초지능 기계와 공학적으로 설계된 신체, 소름 끼칠 정도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알고리즘, 신속하게 조절되는 인공 기후 변동, 10년마다 직업을 바꿔야 할 필요성 등이다. 막대한 양의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드는데, 도무지 그것들을 흡수하고 분석할 방법이 부족하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강한 정신적 탄력성과 풍부한 감정적 균형감이다. 이를 위해 반복해서, 자신이 지금 가장 잘 아는 것 중에서도 어떤 것은 버리고, 그전에는 자신이 몰랐던 것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미지의 것을 포용하고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다. 이런 회복탄력성을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다. 현재의 학교 교육문법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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