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최근 책에서 얻은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변혁과 뿌리채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어쩌면 어떤 사람은 지금보다 훨씬 오래 살 것이고, 인간의 몸 자체도 생명공학과 직접적인 뇌-컴퓨터 인터 페이스 덕분에 유례없는 혁명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아이들이 배우는 것의 대부분은 2050년이면 별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에 열중이다. 물론 근대 학교가 도입되면서 모든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지리와 역사, 생물의 기본 사실을 교육하였고,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노동자를 기르는 것이 교육 목표였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우리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로 넘쳐난다. 무서운 것은 과거처럼 검열관들조차 정보를 차단하려 애쓰기보다,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고, 하찮은 것들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느라 바쁘다. 더 무서운 것은 상충되는 보도와 주의 분산용 낚시성 뉴스로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놀랄 만큼 쉬워졌다. 전세계 사람들이 클릭 한 번으로 최신 뉴스를 접할 수 있지만, 상충되는 설명이 너무나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기가 어렵다. 그것 말고도 무수히 많은 뉴스가 클릭 한 번에 밀려들다 보니 주의를 집중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재미있는 애완견 동영상, 유명인의 가십, 아니면 포르노가 되기 일쑤다.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이다.
정보는 차고 넘친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빅 피처)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 우리 시대에 절대 필요한 것이 인문정신이다. 물론 인문정신은 서구의 자유주의 교육이 추구해 온 이상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라'고 하면서 정작 교사들은 데이터를 밀어넣는 데만 집중했다. 자유주의 학교들은 권위주의를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특히 거대 서사에는 질색이었다. 다시 세계에 관한 하나의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없다. 다음 수십년 사이에 우리가 내릴 결정들이 생명 자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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