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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비 속에서 춤 추는 것을 배우는 거다.

365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4월 9일)

1
나이에 비해 젊게 살려면,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 성격이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매우 정직하여야 한다. 
2) 노욕(老慾)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매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 노인은 큰 자제력, 아니 절제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3)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4) 책 읽기와 쓰기를 한다. 이것은 뇌활동을 위해 중요하다. 노년기에 가장 무서운 재앙이 치매이다. 
5) 계속적인 운동이다. '걷기'가 좋다. 그러면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고, 건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비 속에서 춤 추는 것을 배우는 거다. 진부한 사람은 자신 속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안무를 갖지 못한다. 자신만의 춤을 추지 못한다. 이 이유는 인간의 귀가 다른 삶들의 평가와 인정에 목말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자신이 만들어낸 삶에 달려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써 놓은 책이나 관습에서 삶의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 남들의 생각을 따르 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자유를 아는 사람이다. 남의 것이나 따르는 삶이 계속되는 한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참신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진부(陳腐)는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하는 끔찍한 훼방꾼이다. 썩은 고기를 믿지 말고, 버리고, 도끼로 치듯 과거와 단절하여야 한다.

"인생이란 폭우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비가 와도 그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La vie, ce n'est pas d'attendre que les orages passent, c'est d'apprendre comment danser sous la pluie)." 세네카(Sénéque)의 유명한 말이다.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이 문장으로 위로를 받고, <인문 일지> 매일 쓰며 그 위기를 극복했다.

2
 이정민(데비 리)이라는 분의 책, <<인생의 폭풍 속에서 춤을>>이라는 책을 샀다. 부제가 "흔들리는 삶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는 인생 수업" 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며, 삶을 '항해'에 비유했다. 흥미롭다. 모든 인간이 던져진 각자 자신만의 바다에서, 우리는 직접 목적지를 설정해야 하고, 경로를 개척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는 거다.  저자는 지혜롭게 통과하는 다섯 가지 "항해 법"을 다음과 같이 저"리 했다. 
▪ '나'라는 배의 설계도를 이해하는 것: 모든 인생은 '나'라는 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나'라는 배를 이해하여야 한다. 내게 주어진 배가 무엇인지,  그 배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건너고자 하는 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우리는 종종 다른 배를 부러워하며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내 배에는 오직 내 배에게만 허락된 기능과 속도 그리고 목적이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비로소 나의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 자리는 이미 다 찼다."(오스카 와일드)
▪ 내 인생의 나침반이 향하는 목적지를 발견하는 것:  목적지가 없다면 굳이 뭍을 떠날 이유도 없다. 목적지 없이 바다로 나선 배는 이리저리 표류 하며 파도에 떠밀릴 뿐이다. 분명한 목적지를 품은 배는 거센 풍랑 속에서도 버틸 힘이 있고, 길을 잃어도 다시 나침반을 들 수 있으며, 항해의 모든 순간에 의미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모든 과정이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단, 목적지는 반드시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그저 다른 배들이 모두 가는 곳이라고 해서 따라가다 가는, 어느 순간 그곳이 내가 바라던 항구가 아님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진심으로 원하는 곳, 나를 숨 쉬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목적지를 찾는 순간 진정한 항해가 시작된다.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딜 수 있다."(프리드리히 니체)
▪ 나만의 항로, 나만의 인생 지도를 그려가는 것: 내가 찍은 점들이 항로가 된다.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듯 막막할 때가 있다. 분명 최선을 다해 키를 잡았고, 쉼 없이 노를 저었으며, 나침반도 수없이 확인했는데, 어쩐지 엉뚱한 항로로 밀려와 버린 것만 같은 순간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다는 넓고 늘 변해서,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하나 일 수가 없다. 멈추지 않고 계속 항해하다 보면, 놀랍게도 우리가 지나온 모든 물 길이 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돛을 더 넓게 펼치게 했던, 자신만의 지도를 만드는 여정이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모든 방향의 시간조차 결국은 목적지로 흘러가는 항로였음을, 우리는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내 배를 모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기 때문이다."( 우이지 메이 올콧)
▪ 내 배의 선원들과 건강하게 함께하는 법을 익히기: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해에서 나 혼자 서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 항로를 살피며 방향을 조정해 주는 항해사도, 때마다 연료를 채워주는 기관사도, 배 안의 사람들을 돌보는 조리원과 승무원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을 무조건 받아들여 마지막까지 함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해를 끼치는 이가 올라타기도 하고, 목적지가 달라 잠시 머물다 내리는 이들도 있다. 누구를 곁에 두고 누구를 떠나 보낼지 결정하는 일은 결국 선장 자신의 몫이다.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할 때, 우리의 삶은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평화를 얻게 된다. "혼자 서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함께 라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헬렌 켈러)
▪ 지친 날에는 재정비를 위해 항구를 찾아가 나아갈 방향을 다시 살피는 것: 새로운 항해를 위한 회복의 시간인 항구가 필요하다. 바다는 끝없이 넓고,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오며, 인생 항해 길은 길다. 지친 날에는 잠시 항구에 닻을 내려 쉬어 가야 하는 이유이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상처 난 돛을 기워 매고, 지나온 바다를 되돌아 보며, 나아갈 방향을 다시 살피는 시간이야 말로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는 비결이다. 그렇게 잠시 멈추어 보면, 내 배와 목적지, 항로, 선원들의 모습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가치가 다시금 느껴지고, 내게 소중한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돛을 올릴 용기도 솟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항해는 계속된다. "겨울의 한 가운데서 비로소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음을 발견했다."(알베르 까뮈)

3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버니스 뉴가튼 교수는 ‘사회적 시계’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가 개인에게 특정한 삶의 시간표를 암묵적으로 요구한다고 설명한다. 언제 취직하고, 언제 결혼하고, 언제 은퇴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다. 이 시계는 때로는 우리를 재촉하고, 때로는 늦었다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조금만 늦어도 “왜 아직도?"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마치 아직 피지 않은 꽃을 재촉하듯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사회적 시계는 점점 느슨해 지고 있다. 
▪ 결혼과 출산의 시기는 이전보다 다양해 졌고, 
▪ 이를 선택하지 않는 삶 또한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은퇴 역시 더 이상 정리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누구는 20대에 방향을 찾고, 누구는 50대에, 또 누구는 70대에도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예전에는 늦었다고 여겨지던 기준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생의 후반기에 꽃을 피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 첫째, 늦었다는 스스로의 판단을 내려놓는 용기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젊고 빠른 때이다. 
▪ 둘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시간이다. 
▪ 셋째, 작더라도 지속하는 실천의 힘이다. 젊은 시절에는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하고 싶은 일에 조금 더 귀 기울여도 된다. 삶의 경험이 쌓인 만큼, 그 선택은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해 질 수 있다.

흔히 인생의 후반부를 정리의 시간이라 말하지만 노년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는 시기이다. 전 생애발달적 관점을 제시한 독일 심리학자 파울 발테스 역시 인간의 발달은 특정 시점에서 멈추지 않으며, 삶은 후반기에도 충분히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꽃은 여러 번 피고, 또 어떤 꽃은 늦게 피어 더 오래 향기를 남긴다. 꽃마다 만개 시점이 다르듯 인생의 만개 시점 또한 저마다 다르다. 늦게 피면 어떠한 가? 어쩌면 가장 깊은 향기를 남기는 꽃은 바로 그 늦게 피는 꽃일지도 모른다. 올봄, 나는 늦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가 더 기다려진다.

김마리아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이 왔다고 다 서둘러 꽃이 피나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어떤 꽃은 일찍 피어나 우리를 설레게 하고, 또 어떤 꽃은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때를 기다린다.

늦게 피는 꽃/김 마리아

엄마,
저 땜에 걱정 많으시죠?
어설프고 철이 없어서요

봄이 왔다고 다 서둘러
꽃이 피나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덤벙대고
까불고 철없다고
속상하지 마세요

나도 느림보
늦게 피는 꽃이라면
자라날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철들 시간이 필요해요


한 선비가 배를 타고 목적지로 가고 있었는데,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바라보던 뱃사공이 “항으로 돌아간다! 뱃머리를 돌리라!”라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갈 길이 멀었던 선비는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하늘을 봐라.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왜 배를 돌리라는 건가?” “조금 있으면 폭풍우가 몰아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예측이군. 나도 배를 여러 번 타 봤지만, 이렇게 좋은 날씨에 변화가 오는 경우는 없었어!” 하지만 뱃사공은 선비의 어떤 설득, 회유,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좋다! 만약 날씨가 변하지 않는다면, 네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마침내 선비는 이런 말과 함께 뱃사공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뱃사공은 재빨리 배를 항구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배가 항구에 닿기도 전에,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방금 전과 전혀 다르게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항구에 도착한 뒤 선비는 멋 적어져서 뱃사공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뱃사공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알겠니, 얘야, 일단 노를 잡은 뱃사공은 그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다.

4
실력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고, 운만으로 오래 버틸 수도 없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려면 지나온 경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노력과 재능 역시 시대적 상황과 맞아야 비로소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 주목한다. ‘시대적 운’에 대한 자각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미래를 냉정하게 개척해 나가는 출발점이 된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경이롭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지만, 오늘날에는 제조업과 기술 강국이자 문화 선도국으로 성장했다. 경제개발과 민주화를 함께 이룬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경제발전 과정을 보면 토지개혁, 인적자본 투자, 세계시장 편입,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미국 주도의 전후 세계질서라는 경제 환경 속에서 가능했다. 중국 역시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체제의 수혜국이다. 한국은 미국의 안보우산과 규칙 중심 질서 속에서 수출 주도형 성장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다. 여러 위기를 넘고 힘들게 적응해왔지만 시대 상황이 오늘의 성과를 가능케 했다.

그런데 세상은 다시 변화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미국 사회에는 심리적 변화가 나타난다. 세계 경찰로 서의 역할이나 지역 분쟁 개입, 글로벌 이슈 해결 같은 전통적 역할을 내려놓고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제조업 쇠퇴, 중산층 붕괴, 빈부격차 등으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사회적 계약도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제로섬적 세계관과 ‘힘이 곧 정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크다. 중국은 19세기 중반 이후 100여년을 ‘치욕의 세기'로 규정하고, 주도국 지위를 되찾고자 한다. 이는 역사의 정상화 과정이며, 세계의 흐름을 ‘서양 쇠퇴-동양 부상'이라고 믿는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기술과 공급망 자립을 전략으로 롱 게임을 하고 있다. 미국이 관세와 반도체 수출통제로 공격해도 희토류를 무기로 끝까지 싸운다는 기세다.

한국은 성장률 저하가 지속된다. 인구구조의 영향이 크고 투자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 다음이다. 경제가 추격 단계를 넘어서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그 속도가 빠르다.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중국과 경합하는 분야에서 더욱 심하다. 중국이 과잉설비와 디플레이션 압력을 수출로 퍼내면 세계의 기업들이 몸살을 앓는다. 고령화되고 성숙한 한국 경제가 새로운 경쟁에 맞서 어떻게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순신의 13척 배처럼, 우리에게 승부의 카드가 남아 있다면 무엇일까? 이 질문에 <한국의 실력과 운>이라는 칼럼에서 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첫째, AI라는 기술의 등장이다. AI는 전기와 인터넷처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혁명적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누가 AGI 모델과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최후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한국이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 등 하드웨어 AI 생태계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하다. 작년이 기술 사이클로 관세 충격을 이긴 해였다면 올해는 에너지 충격을 이겨내는 해가 될 수 있다. AI 기술의 확장은 아직 열려 있으며, 인구와 지역균형 같은 문제를 푸는 데에도 유용한 도구이다.
▪ 둘째, 미국과 중국의 라이벌 상황이다. 세계는 다극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단극에서 물러서고 있지만, 누구도 그 공간을 채울 의지와 능력이 없다. 미국은 여전히 가장 큰 봉우리다. 우리에게 안보동맹이자 핵심 기술 파트너다. 분할된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의 반도체, 조선, 방산 그리고원전은 시장을 지키고 있다. ‘미국 없는 세계'로 가는 과정에서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에 찬성하는 국가 간 연대가 모색될 것이다. 연대의 축이 되며 다양한 진영 간 가교 역할을 하는 나라로 입지를 세울 수 있다.
▪ 셋째, 소프트파워다. 작년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해였다면, 올해는 ‘BTS 월드 투어’로 시작하고 있다. K-팝, K-드라마, K-푸드 그리고 K-뷰티가 서로를 강화하면서 국가브랜드로 이어진다. 사람을 모이게 하고 감동을 주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구슬을 꿰어야 한다. 한국의 상품과 문화를 경험하고 즐기고 기꺼이 돈을 쓰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전략적으로 문화산업을 연결, 조정하는 K-CCO(최고문화경영자)를 두면 어떨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한국의 현실을 객관화해 보면 겸손해 진다. 시대 상황에 맞게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선택하고 도전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때마침 현실주의 실용정부가 출범했다. 갈라지고 위험한 세상이 되고 있지만 그것이 ‘시대의 운'이라면 나쁘지 않다. 

5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로 말씀은 <루카 24,35-48>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이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열린 마음 닫힌 마음>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루카 24,3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루카 24,45)

보려하기에
볼 수 있어
보는
열린 마음
보려하지 않기에
볼 수 없어
보지 않는
닫힌 마음
들으려하기에
들을 수 있어
듣는
열린 마음
들으려하지 않기에
들을 수 없어
듣지 않는
닫힌 마음
말하려하기에
말할 수 있어
말하는
열린 마음
말하려하지 않기에
말할 수 없어
말하지 않는
닫힌 마음
느끼려하기에
느낄 수 있어
느끼는
열린 마음
느끼려하지 않기에
느낄 수 없어
느끼지 않는
닫힌 마음
믿으려하기에
믿을 수 있어
믿는
열린 마음
믿으려하지 않기에
믿을 수 없어
믿지 않는
닫힌 마음
희망하려하기에
희망할 수 있어
희망하는
열린 마음
희망하려하지 않기에
희망할 수 없어
희망하지 않는
닫힌 마음
사랑하려하기에
사랑할 수 있기에
사랑하는
열린 마음
사랑하려하지 않기에
사랑할 수 없어
사랑하지 않는
닫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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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형제자매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봅시다.
2026/4/9/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루카 복음 24장 35-48절: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거나 의심합니다. 그만큼 부활은 인간의 이해 안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었던 셈이지요. 그런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그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는 등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이는 부활이 육신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함께 식사하시며 피부로 맞닿는 친교를 나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2천 년 전 제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기에,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는 주님을 뵐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과의 친교의 의미가 퇴색하거나 그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교회를 통해서 말입니다. 성체를 받아모시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데, 이렇게 하나된 공동체를 교회라 부릅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 몸을 이루는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과 함께 식탁과 삶을 나누는 일은 곧 예수님과의 친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은 아니어도, 성체와 교회를 통해 부족함 없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김우중 스테파노 신부(예수회)/생활성서 2026년 4월호 '소금항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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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9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어제 우리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른 이들에게 체험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 한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여전히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평화와 현존 그리고 증인이라는 세 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첫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였습니다. 이 평화는 단순히 마음이 편안해지라는 덕담이 아닙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의 죄책감을 씻어주시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깨진 관계를 다시 이어주시는 용서의 선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를 먼저 건네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루카 24,39)라고 말씀하시며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직접 잡수십니다. 부활은 머릿속의 환상이나 추억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아프고 괴로운 육체적인 현실과 같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관념 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이웃의 얼굴과 우리가 겪는 일상의 고통 속에 살과 뼈를 가진 실재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왜 필요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영광으로 이어지는지를 풀이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닥치는 고통도 주님의 빛으로 조명되지 않으면 그저 비극일 뿐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아, 그때 그 아픔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이었구나‘라는 영적인 깨달음이 생깁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조각을 구원이라는 큰 그림으로 완성해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는 솔로몬 주랑에 모인 이들에게 당당하게 외칩니다.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 증인은 자기가 본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부활 시기 동안 무엇을 보셨나요? 내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는 주님의 평화를 느끼셨나요? 보잘것없는 나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셨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우리가 대단한 능력을 갖춰야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에 찾아오신 주님의 평화를 기쁘게 살아내는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희망의 모습 자체가 세상에는 가장 강력한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오늘 하루, 실체 없는 걱정에 매여 살기보다, 내 곁에 살과 뼈를 가지고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당당하게 걸어갑시다. “주님, 저희의 마음을 여시어 당신의 현존을 보게 하시고, 세상 속에서 기쁨의 증인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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