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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무평불피(無平不陂) 무왕불복(無往不復), 간정무구(艱貞無咎)"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어른의_조건 #무평불피 #무왕불복 #결견폐요 #지천_태괘 #항룡유회

306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6일)

1.
지난 금요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약간 흥분하였다. 드디어 친위 쿠데타(coup d'etat)인 내란(內亂) 1단계가 마무리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아침 6시부터 윤 체포 영장을 집행하는 소식을 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시부터 도반들과 다시 <<주역>>을 함께 읽기로 약속한 바람에, 결과를 보지 못하고 12시까지 애써 외면하고 함께 <<주역>>을 읽었다. 제11괘인 <지천 태(泰)>의 '구삼' 효사부터 '상육' 효사까지 다 읽었다. 제11괘의 이야기가 "정신 외출증"을 앓고 있는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2.
너는 주어진 기회를 잃었다. <지천 태> 괘의  '구삼' 효사에 "무평불피(無平不陂) 무왕불복(無往不復), 간정무구(艱貞無咎)"가 나온다. 이 말은 '현재는 평평하지만 언덕질 날이 있고,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어렵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평평하다 가도 언덕이 있는 것이 자연의 지세(地勢)이며, 좋은 세상이 있다가도 나쁜 세상이 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그러니 태평할 때에 그 태평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해야 허물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윤은 그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다. 반면교사처럼, 나도 다음의 지혜를 마음 속에 간직할 생각이다., 태평한 시절이라고 방심하고 과소비하고 부도덕하게 편히 살려고 하며 퇴폐풍조로 흐르는 안 된다고 걱정함과 함께, 어려운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을 염려하여 어렵게 여기고 바르게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면 허물이 없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생각 말이다. "간정무구(艱貞無咎)"와 함께, 난 개인적으로 여기에 나오는 말, "무평불피"와 "무왕불복"을 좋아한다. 평탄하고 태평하던 국면이 위태롭게 기울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ㅇ,며(无平不陂, 무평불피), 떠나가는 것이 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无往不復, 무왕불복).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쇠운의 조짐이 보이는 때에는 그러한 법칙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면서 간난 속에서도 올바른 비래를 향해 물음을 던져야 한다(艱貞, 간정).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리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无咎, 무구).'언덕 없이 마냥 평평한 땅이 없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는 거다.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이 소환된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 온다'는 말이다. 연(緣)에 따라 윤회를 한다는 거다.

3.
자신을 낮추고, 왕이 자신의 딸을 신하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처럼, 위화감을 쌓지 말고 민심을 얻을 생각을 하지 않는 죄 값을 받는 거다. '육오'의 효사에 "제을귀매(宰乙歸媒) 이지(以祉) 원길(元吉)"이 나온다. '재을 왕이 누이동생을 시집 보내는 것이니, 이로써 복이 되며 크게 길하리라'는 뜻이다. 제을 이전에는 왕족끼리 만 혼인을 했었는데, 제을 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신하와 혼인했다고 한다. 그후 에야 타성(타성)끼리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쳔 태>괘를 보면, 제을이 공주를 시집 보낸 것이 '구이'이다. 네 가지 정치를 잘하는 '구이' 신하에게 공주를 시집 보낸 것이다. 왜 딸을 신하에게 시집 보내는 가? 왕족끼리 만 혼인을 하면 벽을 쌓게 되어 위화감만 조성하고 민심을 얻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낮추어 신분이 낮은 신하에게 공주를 시집 보내 민심을 얻게 되어 결과적으로 상하 모두가 잘사는 복지사회가 이루게 된다는 거다.  기득권이나 엘리트끼리 만 혼인 관계를 맺으면, 사회는 계속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어제 ,인문 일지>에서 했던 이야기를 오늘 또 한 번 더한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기득권과 '갑'의 놀부 심보가 암처럼 퍼져 가고 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윗사람이 우선 자기 것을 희생하는 문화가 없거나 부족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ée)의 문화가 아쉽다. 자신이 기득권이 된 것은 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많은 약자의 희생으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힘 있을 때, 약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기회가 살면서 쉽게 그리고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마다 약자에 대한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 그건 강자에게 당당히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을'과 약자에게는 내 것 일부를 양보해 함께 풍요로워지는 '너그러운 사회',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얻기 위해서는 먼저 줘야 한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평화외교정책의 주요한 하나가 상호간에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오늘날 현대 국제사회의 정책으로 본다면, 외국과의 선린외교정책을 펴고, 다른 나라가 필요한 것은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4.
다음은 신하 '구이'가 어떻게 정치를 하였는가를 살펴 본다. 효사가 " "九二(구이)는 包荒(포황)하며 用馮河(용빙하)하며 不遐遺(불하유)하며 朋亡(붕망)하면 得尙于中行(득상우중행)하리라"이다. '구이'의 효사를 그림으로 그려본다. 거친 사람(<곤괘>의 백성)들을 이끌고 얼어붙기 시작하는 강을 건너고 있다.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사이가 멀다고, 잘 모르는 사이라고 무신경하지 않고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그렇게 백성들을 살피는 임금의 마음을 '구이'가 이어받아 중도로 실천하고 있으니 높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구이' 양(陽)은 내괘 가운데에 있고, 외괘에서 통치하는 '육오' 음(陰)과 정응하고 있다. '육오' 인군의 명을 받들어 태평한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서, 그가 보여준 정치력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잘 포용해야 하며(包荒, 포황),
▪ 때로는 물을 건너 외국과의 평화를 위한 선린외교(善隣外交)를 펼쳐야 하며(用馮河, 용빙하),
▪ 아무리 먼 변방에 있는 약소한 존재라도 그들을 존중해야 하며(不遐遺, 불하유),
▪ 또한 자기들만의 붕당(朋黨)을 만들어 세력화하지 말아야 한다(朋亡, 붕망).
이렇게 중도(中道)로 폭넓은 정책을 펴서 잘 실행해 나가면, 모두가 '구이'의 정치에 뜻을 합하고 숭상하게 된다는 거

5.
"제을"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인 주(紂)의 선왕이다. 주왕은 주색에 빠져 포악무도한 정치를 일삼다가 주(周)나라의 시조인 무왕(武王)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무왕은 문왕(文王)의 아들이다. 요순(堯舜)이 성군의 대명사라면, 주(紂)는 하나라의 걸(桀)과 함께 '걸주(桀紂)'라 하여 폭군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걸주같이 포악한 인간이 기르는 개가 요(堯)와 같은 성군(聖君)을 보고도 짖어댄다'는 뜻이다. 개는 주인만을 알아볼 뿐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거다. 나아가서 인간도 상대의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섬기는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목격된다.

6.
'걸견폐요(桀犬吠堯)'는 <<사기(史記)>의 <회음후편(淮陰侯篇)>에 나오는 고사이다. 원래는 '도척(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지는다(跖之犬吠堯, 척지견폐요)'였다 한다. 요(堯)는  '흙을 높이 쌓고 그 위를 평평하게(兀) 만들었다는 데서, ‘높다’, 즉 ‘요임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진나라 말 때 괴통이라는 책사가 있었다. 어느 날 괴통은 한신을 찾아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금 항우는 남쪽을 차지하고 있고, 유방은 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세력은 서로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왕께서 누구와 연합하느냐에 따라 천하의 대세는 좌우 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항우가 망하면 대왕의 신변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동쪽을 대왕께서 차지하고 대세를 관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한신은 며칠을 두고 고심하다가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다. 얼마 후 유방에 의해서 천하가 통일됐다. 그리고 한신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다. 한신은 죽음 직전에 이르러 “나는 괴통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참으로 후회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전해들은 유방은 괴통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괴통에게 물었다. “네가 한신에게 반역할 것을 권고한 것이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신이 반역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 말을 듣지 않아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유방은 그를 기름 가마에 삶아 죽이라고 명했다. 이때 괴통은 원통함을 하소연하며 말했다. “도척 같은 도둑놈의 개도 요임금을 보면 짖습니다(跖之狗吠堯, 척지구폐요).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개는 원래 주인 이외의 사람을 보면 짖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개가 짖는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한신만을 알고 있었을 뿐 폐하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신에게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이런 저를 삶아 죽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폐하를 비웃을 것입니다.”

유방은 괴통의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살려 주었다. 이 때부터 '척구폐요'가 '걸견폐요'가 된다. 이 말은 ‘개는 주인만을 섬긴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교훈을 준다.
▪ 개가 오로지 주인만 알아보듯, 사람들이 양심의 판단에 따르기 보다는 맹목적으로 윗사람에게 충성함을 한탄하는 말로 읽는다. 악한 자와 한패가 되어 어진 이를 미워하거나 또는 선악을 불문하고 각기 그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거다. 개는 그냥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에 충성하지 그 사람의 인성과 인품을 보고 충성하지 않는다는 거다. 자신의 주군을 잘 못 만나 결과적으로 개가 된 인물들이 역사 속에 많다. 조심하여야 한다. 까닥 잘못하면 바로 개새끼가 될 수 있다.
▪ 요즘은 여러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낯선 사람을 보고 짖기보다는 여기저기 꼬리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적과 동지가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철새 정치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때문에 허상과 미몽에 사로잡혀 철새가 돼서는 안 된다. 세상이 각박해 질수록 우리 모두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의리와 정도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걸견폐요'의 교훈일 수도 있다.

7.
이젠 <지천 태> 괘의 '상육' 이야기를 좀 한다. 최근에 우리 공동체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상육'의 효사는 "上六(상육)은 城復于隍(성복우황)이라. 勿用師(물용사)오 自邑告命(자읍고명)이니 貞(정)이라도 吝(인)하니라"이다.  '상육'은 태괘의 극에 처해 있어, 태평한 세상이 그치고 쇠락해지는 상이다. '상육'이 변하면 외괘가 <간산(艮山), ☶>이 되어 태평한 세상이 그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흥망(興亡)이 있어 왔다. 태평시대에 높게 쌓았던 성(城)이 무너져 ‘황성 옛 터'가 된다. 이렇게 태평한 기운이 사라질 때에는 군대를 동원하여 억지로 그 시대를 돌이키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를 반성하여 자기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그동안 잘못된 정치로 인한 결과이니 뒤늦게 바르게 하려고 한들 인색할 뿐이다. 파산과 패망의 길에 접어 들었다. 무리하면 더욱 힘들어진다는 거다. 좀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 그런 상황이면, '군사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勿用師, 물용사")'고 말하고 있는 거다. 흥분해서 군사를 일으키거나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공연히 분란을 일으키면 가지없는 피만 흘리고 만다. 그리고 '성'이란 평소에 철저하게 관리하고 문제가 있는 곳은 완벽히 보수함으로써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다. 성벽이 무너져 내릴 정도면 기강이 해이함이 극에 달한 상황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한 시대의 정치인이 자기 정책의 실수를 모면하려고 군대를 동원하여 외국을 공격하는 등 무리한 정책을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 세상이 등을 돌리면, '스스로를 반성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위기의 시대의 지도자는 자기 본거지("邑, 읍)=수도=왕이 거하는 곳)로부터 명을 내려("自邑告命, 자읍고명)", 뜻을 같이 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심장이고, 인군이 한 나를 다스는 곳은 도읍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를 다스리는 도읍은 곧 한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마음을 다음과 먹어야 한다. 그러니까 마음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모두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여 제 잘못을 고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안ㄶ으면 바르게 한다 하더라도 니미 늦어 인색한 것이 된다. 낭패를 복구할 생각을 마라. 섣부르게 복원하려 하다가 더 큰 낭패를 당한다. 깊은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반성을 통해 새로운 동지를 규합하고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한다.

8.
<건괘>의 "항룡유회(亢龍有悔)"를 소환한다. 이 말은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으니, 높은 지위에 올라 겸손과 소통을 모르면 실패를 면치 못한다는 의미다. 용산(龍山)의 '용'이든, 지역의 '용'이든 국민 앞에 나서서 권력을 부리는 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항룡(亢龍)’은 물속의 ‘잠룡(潛龍)’에서, 세상에 나오는 ‘현룡(見龍)’, 비상하는 ‘비룡(飛龍)’을 거쳐 더는 오를 곳 없이 올라간 단계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주역>>에서는 만물의 변화가 아래에서부터, 내면에서부터 생긴다고 말한다. 높이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 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내려올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민심을 잃고, 현인을 낮은 지위에 두기 때문에 그 보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뉘우칠 일 밖에 없게 된다. 빠르게 높이 올라가면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으므로 항용에 이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라는 거다. 따라서 보름달보다는 열 나흘 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는 몽우리일 때가 더 가치 있으며, 완전 중앙이 아닌 미앙궁(未央宮)이 더 여유가 있다. 새길 일이다. 물극즉반(物極則反), 만물이 극에 이르면 기우는 법이다. 보름달이 된 달은 조만간 작아져 초생달이 된다. 만조의 바다는 썰물로 갯벌을 드러낸다. 나라가 융성하면 쇄국의 운명을 겪는다. 생의 성숙한 노년은 죽음의 쇠락을 맞게 된다. 차고 넘치면 좋은 건만은 아니다. 왕성한 풀들은 낫을 맞게 된다. 가득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 성장한 연륜은 쇠락을 맞게 된다. 만월의 달은 더 커질 수 없고 자연 줄어든다.

9.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늘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며, 성찰하지 않으면 파렴치만 늡니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습니다."(전우용) 나이를 먹을 수록 공부를 하며 배워야 한다. 그래야 노인이 아니라, 어른이 될 수 있다.

10.
언젠가 적어 두었던 어른의 조건을 공유한다. SNS에서 떠도는 것을 적어두었던 것이다. 누가 쓴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용이 읽어볼 가치가 있다.

어른의 조건

음식은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발효가 되어 더욱 맛있어지고,
건강에도 유익한 유산균이 생기는
발효식품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헛되이 세월만 흘려보내
나이만 먹어가는 노인이 있는 반면에,
세월과 함께 내면에 깊이가 생긴
어른이 있습니다.

진정한 어른은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의 인생을 보면서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진짜 어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인과 어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노인은 허송세월을 흘려 보낸 사람이지만,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자신밖에 챙길 줄 모르지만,
어른은 넓은 아량으로 주변을 챙기고,
항상 배려합니다.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지만,
어른은 젊은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합니다.

노인은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지만,
어른은 자신을 비우고 나누어줍니다.

노인은 '나'와 '타인'을 늘 비교하지만,
어른은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에 슬퍼하지만,
어른은 가득 찬 내면을 볼 줄 알며,
이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언뜻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설령 지금은 젊다고 할지라도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인생은 멀리 와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어른의 조건'을 갖추었는지
삶의 자리를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