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2월 21일)
바로오 사도는 지난 주 미사(대림 3주일)에서 말씀하셨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5:16-18) 이게 하느님의 뜻이라는 거다. 기쁨, 기도 그리고 감사 속에서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당부하셨다. 그래 지난 월요일부터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금년 초에, 나는 여기에 두 개를 더 보태 5 가지를 매일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다정-깨어있음-웃음-기도-감사"이었다. 오늘은 마지막 다섯 번째 "늘 깨어 있으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 항상 기뻐 하라.
▪ 쉬지 말고 기도 하라.
▪ 모든 일에 감사하라.
▪ 모두를 사랑 하라.
▪ 늘 깨어 있으라.
늘 깨어 있으라, 즉 늘 공부하자는 거다. 살아감과 공부는 한 몸이다. '공부'의 공(工)자는 '천(하늘)과 지(땅)을 연결한다'는 뜻이고, '부(夫)는 사나이란 뜻이지만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말이라 한다. 그러니까 공부는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이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부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이다. 본래는 '공'은 '성취하다', '부'는 '돕는다'는 뜻으로 무엇을 도와 성취한다는 의미였으나, 지금은 형태가 축약되어 공부라고 사용한다. 공부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분야에서 달인이 되어 능수능란하게 잘 한다고 할 때 그 경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공부라고 한다. 공부의 진짜 의미는 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실제로 몸으로 익힌 것은 오래간다. 중국 무술을 가르치는 '쿵후'는 이런 공부의 의미가 축소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전문가 수준으로 단련하는 공부의 집약적 수련과정을 보여준다.
사람은 배우는 존재(호모 스투덴스, Homo studens) 이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선 배움이 필수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할 줄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타고난 '할 줄 앎(양능良能)'과 '알 줄 앎(良知양지)'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바를 배워 감으로써 삶이 꾸려진다. 배움은 이렇게 살아감의 시작이고, 살아감은 배움을 실천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살아감이 자체로 배움이 되는 이유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한 번 배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편의를 위해서는 배운 바를 수시로 익히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 가"라며, 학(學), 그러니까 배움 만을 기쁨의 원천으로 보지 않고, 익힘, 즉 '습(習)'을 그에 합쳐 기쁨의 원천으로 제시한 까닭이다. 익힘을 통해 살아감 속에서 배움을 지속하여야 하는 것이다. 살아감이 배움인 이유이다. 그 이유는 또 있다. 배움의 주체인 나도 변하고, 내가 속해 있는 세상도 변하며, 학습 대상도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배워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더해가든 사회적 지위가 변하든, 내가 변하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도 변하니 이미 배운 바라도 다시 익혀야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공부는 한 인격이 사회와 질서 안에서 규칙과 질서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성적을 내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한 나머지, 삶을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등한시했다. 나는 오늘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1.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거리에서 헤매는 우리 손님들이 또다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워서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다. 1등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 따뜻한 이웃, 따뜻한 공동체이다. 경쟁을 하면 나 외에는 모두가 이겨야 할 적이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나보다 귀한 남을 만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삶이 열린다." 민들레국수집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계신 서영남 이종 사촌형의 따뜻한 말이다.
2. 말을 할 때는, 따끔한 말 두 마디, 따뜻한 말 여덟 마디, 이 비율이 딱 좋다. 말의 2:8 법칙이다. 주철환 PD에게서 배운 것이다.
3.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르다. 이 문장을 접하니, 처음에는 뭔가 '촉'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좀 생각하니, 싫어하되 미워하지는 말자는 생각이 딱 든다. 생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싫음과 미움을 구분하는 것이다. 싫고 좋고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싫다고 다른 사람도 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싫어요, 좋아요.' 말할 필요 없다. "나는 당신이 이해가 안돼" 이런 말은 마음 속에 사랑이 부족할 때 나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속으로 하면 된다.
4. 못된 놈은 자기밖에 모르는 놈이고, 못난 놈은 자기를 모르는 놈이다. 나만 아는 사람, 나 뿐인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알면 즐거움이 커진다. 그래서 나는 나를 연구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생각하는 것이다.
5. 자신감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신감보다 자존감이 더 귀하다. 자존감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자존감은 자기 신뢰에서 나온다. '겸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지만 교만하지 않게'이다. 겸손과 당당함은 모순적인 게 아니다. 겸손하면서 당당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호감을 얻는다. '자존감'은 '나는 소중하다'하면서 자신을 존중 하는 마음이다. 반면 '자존심'은 '나는 잘났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마음이다.
6. 모자람의 미학, 이거 중요하다. 사람들은 너무 완벽하면 싫어한다. 약간 부족한 부분이 보여야 상대가 무장해제한다. 넘치는 사람은 따가운 눈총을 받지만 모자란 사람은 따뜻한 눈빛을 받는다. 좀 어리숙하게 행동하고, 사는 것이 세상과 어울리는 지혜이다. 부러움을 살 일이 생기면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좋다. 그래야 미움을 덜 받는다.
7. 솔직함을 앞세워 나쁜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차이가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정직함'이고, '솔직함'은 내 마음 속의 판단이기 때문에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평화를 깨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해서' 라는 발언은 관계를 망가뜨리기 쉬운 말이다. 그냥 말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가끔 내 솔직한 마음을 말하여 대화 분위기를 '뻘쭘'하게 만들곤 한다. 이젠 솔직한 말은 가급적 안 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무리 가치 있는 말이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가슴 속에 들어가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그러나 가치 있다고 상대에게 함부로 충고하거나 '지적 질'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공부/유안진
풀밭에 떼 지어 핀 꽃다지들
꽃다지는 꽃다지라서 충분하듯이
나도 나라는 까닭만으로 가장 멋지고 싶네
시간이 자라 세월이 되는 동안
산수는 자라 미적분이 되고
학교의 수재는 사회의 둔재로 자라고
돼지 저금통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자랐네
일상은 생활로, 생활도 삶으로 자라더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도 오랜 공부가 필요했네
배우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미적분을 몰라도 잘 사는 이들
잘 살아서 뭣에다 쓰게
쓸 데가 없어야 잘 산다는 듯이
꽃다지들 저들끼리 멋지게 피어 웃네
다음은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구체적인 일상에서의 삶의 방법이다.
1. 욕구만을 충촉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문제는 의미가 있으면 재미가 없고, 재미가 있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결합해야 즐겁다.
2. 소유란 그런 것이다. 손안에 넣는 순간 흥미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단지 바라보는 것은 아무 부담없이 보면서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3. 말이 많은 사람은 안으로 생각하는 기능이 약하다는 증거이다. 말이 많은 사람에게 신뢰감이 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이 허술하기 때문이고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말을 아끼려면 가능한 타인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두고 아무 생각없이 무책임하게 타인에 대해 험담을 늘어 놓는 것은 나쁜 버릇이고 악덕이다.
4.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전 생애의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이 참으로 얻는 것이고 잃는 것인지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잃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5. 나그네 길에서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든 차라리 혼자서 갈 것이지 어리석은 자와 길벗이 되지 마라. 사람의 허물을 보지마라. 남이 했든 말았든 상관하지 마라. 다만 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을 보라. 비난 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6. 눈으로 보는 것에 탐내지 말라. 속된 이야기에서 귀를 멀리하라.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 할 길도 없다.
7. 날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날때부터 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되는 것이다.
8.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이루어야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의 영역을 침해 하면서 욕심을 부린다면 자신도 해치고 이웃에게도 피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전문 지식을 익히고 그 길에 한 평생 종사하는 것도 그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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