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8일)
어제 장자가 말하는 도에 이르는 9개의 계단 중 네 번째인 '섭허(攝許)'를 이야기 하다가, 그 뜻을 알아 보기 전에 '섭(攝)'자 꽂혀 , 통섭(統攝), 섭생(攝生)에 대해 사유를 하다가 멈추었다. 섭 자는 '잡을 섭', 또는 '다스릴 섭'자로 쓰인다. 攝(섭) 자는 손 수(手)와 소곤거릴 섭(聶) 자의 결합이다. 여기서 섭(聶) 자는 뒤를 중복해서 그린 것으로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다는 뜻을 갖고 있다. 소곤거리는 소리는 가까이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기에 여기에 수(手) 자를 결합한 섭(攝) 자는 잘 들리지 않아 손으로 끌어당긴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하면 귀담아 듣는다 거다. 그러니까 '섭허'는 '귀담아 들어 잘 알아차림'이 된다. 글이나 말 속에서 속삭이는 미세한 소리마저 알아듣고 바로 깨닫는 것이다.
'섭리(攝理)'라는 말을 나는 늘 어려워 했다. 프랑스어로는 '프로비덩스(providence)'라 한다. 사전에서는 '가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라 정의하며,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으로도 쓰인다.
인간들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데카르트의 말을 신봉해왔다. 자신이 생각과 발견한 이성으로 인생과 우주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착각했다. 우주, 자연, 그리고 인생을, 생각지도 못한 것들, 상상하지도 못해,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섭리라는 말이 어려운 것 같다. 자연의 이치(理致)를 귀담아 들어야 알아채는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만 가지고 하느님이 두는 바둑의 포석을 알기 어렵다. 신의 섭리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그래 인간들은 어떻게 해 서든지 신의 섭리를 슬쩍 커닝이라도 하려고 신탁과 점술이 필요로 한다. 아무리 미신이라고 두들겨 패도 점술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이다.
배철현 교수는 자신의 <묵상>에서 섭리를 성서에 나오는 '욥 이야기"로 설명한 적이 있다. 성서에 등장한 욥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 권력, 그리고 명성을 쥔 ‘알파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는 주위사람들을 챙겨주고 배려하는 겸손한 인간이었다. 그를 묘사하는 획기적인 문구가 있다. 그는 ‘타인에게 정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3인칭의 눈으로 봐도 완벽한 인간’이었다. 신은 그런 욥을 사탄을 동원하여 시험하기로 결정했다. 동방최고의 부자였던 욥은 하루아침에 자연재해로 재산을 잃어버린다. 그 뿐만 아니라 10명의 자식도 사고로 죽는다. 심지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은 악성종기로 덮여 그 가려움을 달래기 위해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불쌍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불행의 시작일 수 있고 불행은 행복을 준비하는 과정을 수 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신앙을 나무랬다. 그들은 욥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거다. 신은 인간이 잘하면 복을 주고, 잘못하는 벌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 신은 인간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그들과 욥은 옥신각신하여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이 때 신이 등장한다. 삶은 우여곡절이다. 삶을 가치가 있게 만들기 위한 유일한 조치가 잔인하지만,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혹독한 시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런 죽음이나, 혹은 자신이 몹쓸 병에 걸린 경우,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내가 그 시련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가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회피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는다면,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깊이’ 응시하고 그런 시련의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소리’로 말을 건다. 즉 질문을 한다.
신이 욥에게 했던 그 질문은 "내가 세상에 기초를 놓았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인간에게 위안이 있다면, 그것은 질문(質問)이다. 질문에 답이 없을 수도 있다. 해답을 찾아가는 더 깊은 질문이 남을 뿐이다. 질문은 자신을 삶을 더 높고 넓고 깊은 경지에서 바라보라는 명령이다. 이 질문을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품은 사람은, 이미 그 질문이 해답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문제는 질문을 경청하기 위해서는 머리에 달린 두 귀가 아니라 마음의 귀를 정성스럽게 기울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인생이란 질문의 이치를 조금 파악할 수 있다. 한자 섭리(攝理)가 그런 뜻이다. 동양의 맹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한다.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지운과 역량을 키워 주기 위함이라는 거다.
가을은 지난 일 년을 돌아보고 과연 달려갈 길을 최선을 다해 경주했는지, 그 성과를 헤아릴 잔인한 시간이다. 회고는 대부분 반성일 수밖에 없다. 최선을 경주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작심삼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결심은 지속되지 않고 흐지부지 사라져왔다. 가을은 그런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내년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혹독한 겨울, 차디찬 바람과 눈, 쓸쓸함, 그리고 충분한 죽음만이 따스한 봄의 부활을 가져올 것이다. 가을은 자신의 손 수(手)를 제 삼의 귀(耳)를 찾아 기울어야 할 시간이다.
답이 없는 화두처럼 “내가 세상에 기초를 놓았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를 욥이 지니고 살아갔을 순간을 되새기며, 힘찬 한 주를 시작한다. 이 말은 몰입하여 과연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더 보람 있는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바라보는 거다. '섭허' 이야기를 하다가 '섭리'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었다. 이런 사유를 하게 해 준 것은 배철현 교수의 <묵상>이다. 배철현 교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부터 "Asia Wine Trophy 2021"이 시작된다. 이 대회는 국제와인기구 OIV(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Vine and Wine)의 승인·감독 하에 대전마케팅공사와 독일와인마케팅사(베를린와인트로피 주최)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와인 품평회이다. 목요일까지 계속된다. 코로나-19로 어렵게 준비된 행사이다. 올해가 벌써 9회이다. 나는 1회부터 한 번도 빠지 않고 참여한다. 올해는 팬데믹으로 해와 심사 위원들이 못 왔지만,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포함하여 8 개 나라에 온 84명의 심사위원들이 전 세계에서 온 3126 종류의 와인을 품평하여 대전 트로피 상을 준다.
와인 품평은 눈, 코, 입으로 한다. 일반적인 와인, 즉 스파클링이 아닌 스틸와인 품평에서 눈으로 주는 점수는 15점, 코로 주는 점수는 30점, 입으로 주는 점수는 44점이다. 합이 89점이고, 전체적인 와인 평가에서 만점을 받으면 11점이다. 그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와인이라면, 100점을 받는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와인 품평 점수는 80-90점이다.
나는 와인 품평을 하며, 제일 먼저 와인의 색의 투명도를 본다. 그리고 이어서 와인 색의 농도, 와인의 주요 색깔, 뉘앙스(잔을 흔든 후 이차적 색깔), 점도를 보며 투명도 이외의 전체적인 시각적인 사항을 품평한다. 출품한 와인들의 대부분이 시각적인 부분은 변별력이 심하지 않다.
다음은 코를 통한 후각적인 품평을 한다. 후각의 순수성을 평가한다. 이어서 향의 강렬도를 본다. 다시 말하면, 코를 통해 느껴지는 향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의 정도를 품평한다. 나는 이 때 감지되는 향이 좋은 와인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 향의 인지가 가장 취약하다. 소설가 백영옥이 소개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책 『개의 사생활'』에 의하면, 향에 있어서 인간과 개가 경험하는 세계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인간 코에는 거의 600만개 정도의 감각 수용체가 있고, 양치기 개의 코에 는 약 2억만개, 비글의 코에는 3억만개 이상이 포진해 있다. (…) 그러니 그들 옆에 서면 우리는 후각 상실자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쿠키 향으로 시작된다. 시각·청각·촉각 중 인간에게 가장 오래 각인되는 기억이 후각인 셈이다. 개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양일 것이다. 그래서 향을 품평하기가 가장 어렵다. 순간적으로 특정한 물질에 의해 코가 자극 받을 경우 느껴지는 감각을 찾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젠 입을 통해, 와인의 미각을 평가한다. 와인이 입 안에 있을 때 인지되는 총체적 감각을 말한다. 미각을 통해 와인의 순수성을 본다. 특히 포도 재배 관련 결함, 양조적인 결함 등을 감지한다. 결함의 근원은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상태, 양조하면서 일어나는 오염, 특히 미생물에 의한 오염과 산화 등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와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판단한다. 와인의 일반성과 개성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숙성의 잠재 능력까지 감안하여, 와인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점수를 준다.
장자 이야기는 이 행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늘도 칼릴 지브란의 다섯 번째 <먹고 마심에 대하여>를 공유한다.
먹고 마심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그대가 대지의 향기로만 살 수 있습니까. 풀처럼 햇빛으로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대는 먹기 위해 무언가를 죽여야만 하고,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갓난아이에게서 어미의 젖을 떼어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 행위를 하나의 예배가 되게 하라.
그대는 식탁들 제단으로 삼고, 숲과 들에서 나오는 맑고 순결한 것들로 채우십시오, 그리고 그대들 안에 자리한 더 순수하고 순결한 것들을 위해 그것들을 제물로 바치십시오.
그대가 짐승 하나를 죽일 때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라. '너를 죽이는 바로 그 힘으로 나 역시 죽임을 당하며, 나 역시 먹힌다. 너를 내 손에 인도한 그 법칙이 더 힘 있는 손으로 나 도한 인도할 것이기에. 너의 피와 나의 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늘나무를 키우는 영양분에 불과한 것을.'
그대가 사과를 한 입 깨물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라. '너의 씨앗이 내 몸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너의 미래의 싹이 내 심장 속에서 피어나리라. 그리하여 너의 향기가 내 숨결이 되고 우리는 함께 모든 계절을 누리리라.'
또한 가을이 되어 포도주를 짜기 위해 포도밭에서 포도열매를 따 모을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라. '나 역시 하나의 포도밭과 같으니, 나의 열매 또한 언젠가는 포도주를 짜기 위해 거두어지리라. 그런 다음 나 역시 새 포도주처럼 저 영원의 그릇 속에 담겨지리라.' 그리하여 겨울이 되어 그 포도주를 따를 때면, 잔마다 하나의 노래가 그대의 가슴속에 있게 하라. 그리고 그 노래 속에 그 가을날들과 포도밭과 포도주 짜던 기억들이 잊혀지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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