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1월 6일)
1
어제 산책길에서 모과 나무를 만났다. 언젠가 나는 책에서 이런 표현을 읽은 적 있다. “모과나무처럼 뒤틀린 심사(心思)”. 잎과 꽃이 없는 겨울에 모과나무를 보면, 몸통이 뒤틀려 있다. 이 나무의 이름은 가을에 익는 노란빛의 매혹적인 열매 이름이 모과이기 때문이다. 그 모과도 울퉁불퉁 못 생겼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모과의 향기는 기가 막히다. 모과는 목과(木瓜)에서 나와, 그 의미는 '나무의 참외'라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나도 잘 모른다.
모과는 못 생겼지만 네 번 놀라게 하는 과일이다. 꽃이 아름다운 데 비해 열매는 못생겨서 한 번 놀라고, 못생긴 열매가 향기가 너무 좋아서 두 번 놀라고, 향기가 그렇게 좋은 데 비하여 먹을 수 없어서 세 번 놀라고, 과실이 아니라 나무 목재 자체가 한약 재료로 사용하고 목질이 좋아 쓰임새가 많아서 네 번 놀란다고 한다. 못생긴 생김새에 비해 좋은 향기 때문에 "탱자는 매끈해도 거지의 손에서 놀고, 모과는 얽어도 선비의 방에서 겨울을 보낸다."라는 속담도 생겼다. 모과는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쓰임새가 많은 과일이다, 향이 매우 좋기 때문에 그냥 열매로만 방에 놓아둬도 방향제로 쓸 수 있고 식용은 가능하나 생과의 맛이 시고 떫기 때문에 보통 생으로는 잘 안 먹고, 꼴이나 설탕에 재워서 고과차로 마신다.
모과에 대한 단상/김욱진
방 한 모퉁이 책상 위엔
한 열흘 전쯤 고향 집에서 주워 온
모과 한 개 뎅그러니 놓여 있다
낯설이 해서 그런지 얼굴색이 노래지고
주근깨 같은 까만 점도 후벼 파주고 싶을 만큼 생겼다
그 단새 구멍 두어 군데 숭숭 나 있는 흠집
나의 귀지 같은 더께 덕지덕지 앉은 구멍 속 한참 들여다본다
흠집은 암갈색으로 점점이 번지는 중이다
더군다나 몸통은 누군가 밀가루 반죽 짓이겨 놓은 듯 울퉁불퉁하다
과일 망신 다 시킨다는 그 모과
온몸 쥐어짠 기름 반들반들 내뿜으며 웅숭깊은 향 풍긴다
아, 저 향수 속으로 나를 찾아 나서면
언제쯤 그곳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못생긴 인형처럼 앙증맞은 한 개구쟁이가
내 맘을 온통 다 파먹어 들고 있다
2
오늘의 화두는 양심(良心)이다.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양심을 동양의 사유체계에서는 '무아(無我)"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무아, 내가 없음, 영어로 I'm nothing은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시간과 공간 개념이 없는 절대계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나'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서 일어나면, 그때부터 '욕심(欲心)' 세계가 시작된다.
경전들은 이 양심을 쨀램(tzelem), 프시케(psyche), 이마고(imago dei), 푸르샤(purusha), 아트만(atman), 신적인 불꽃(divine sparkl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이 다르다 하더라도, 양심은 그것을 소유한 자가 소중하게 여기고, 갈고 닦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원석(原石)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양심은 거친 자신을 응시하고, 버려야 할 자신을 절제하고 흠모할 만한 자신을 훈련할 때, 서서히 만들어지는 그 사람만의 개성(個性)을 만들어 주는 DNA이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의 존재를 모르거나 그것을 방치하면,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규율에 쉽게 복종한다. 그 이유는 지적으로 게으르거나, 남들이 다 그러기 때문이다. 아니면 인간의 또 다른 본능인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소로(19세기 미국 사상가)의 말에 따르면, 단체(국가, cprporation)는 양심이 없다. 그러나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국가)는 양심을 소유한다. 법은 결코 인간을 정의롭게 만들지 못한다고 했다.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합니다. "시민들이여, 당신들은 자신의 양심을 포기하고 국가의 법을 따릅니까? 저는 '인간(men)'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 누구의 종속을 받는 자(subject)가 될 수도 있습니다. 법에 대한 존경을 장려하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제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의무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제라도 하는 것입니다."
숙고로 무장한 양심이 있는 시민들이 드문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는 자신의 이익에 눈이 먼 수많은 욕심쟁이들의 난장판일 뿐이다.
지금 한국의 문제는 가짜 뉴스가 문제이다. SNS 강국이다 보니,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이 한 순간에 매료될 만한, 검증되지 않은 뉴스를 매 순간 생산해 낸다. 누구나 양심을 버리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일방적으로 왜곡된 야야기를 만들고, 그걸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부는 그걸 자신의 이익, 즉 돈 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 자기가 만든 가짜 뉴스가 대중들에게 끼칠 해악은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사적 이익에 함몰되어 있는 양심이 없는 사람들의 행위들이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은 솔제니친이 말한 것처럼, 양심적이고 용감한 개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은 거짓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또 그에 의하면, 개인의 양심이 전체주의 국가권력을 무너뜨릴 유일한 힘이라고 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인간은 '도시 안에 거주하는 동물(zoon politikon)'이다. 인간은 공동체를 만들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집단주의적 유전자를 소유한다. 인간은 외딴 섬에서 홀로 살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소통하고 도모하여 공동체를 만들어 문화를 공유하고 문명을 향유한다.
공동체는 여러 사람들의 모임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존재할 때, 만들어지는 전체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집단)을 장악하려는 소수가 한 사람, 한 사람 교묘하게 세뇌시킨다. 그러니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갈고 닦아 자립하는 인간으로 스스로 훈련하지 않는다면, 그는 늑대를 따르는 양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운명을 만날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어야 건강한 국가가 된다. 그래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자신의 양심의 발견이 깨달음이며, 양심의 훈련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양심에 복종하는 행위가 자유이며, 다른 사람의 양심을 경청하는 행위가 배려이며 친절이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 양심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무식이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언행이 수치(羞恥)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3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뻔뻔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거나 누구나 아는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부인하는 사람을 볼 때 터져 나오는 탄식이다. 이 말에는 양심이야 말로 사람 다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 문제는 자기 잇속에 매몰되어 사는 사람은 이런 탄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중국 후한 시대의 관리였던 양진은 옛 동료인 왕밀이 “밤이 깊어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며 뇌물을 바치려 하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단 말인가”라며 그를 엄히 꾸짖었다. 양진은 양심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하지만 ‘함께’가 근원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양심은 자기 안에 내재된 도덕 법칙이다. 성찰이 자기와의 대화인 것처럼 양심은 도덕적 자아를 포기하려는 순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비겁은 안전한지를 묻는다. 편의주의는 정치적인지를 묻는다. 허영은 인기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양심은 옳은지를 묻는다.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문장의 핵심어는 ‘양심’이다. 사람들은 애써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욕망의 문법이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양심을 따라 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톨이가 되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바른 소리, 쓴 소리를 하기 어렵다. 유동하는 공포가 스멀스멀 횡행하는 시대, 변덕스러운 기후처럼 도무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안전의 욕구에 매달리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 안전을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 우리 마음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내면의 그림자가 짙어 질 때, 양심의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예리하게 느껴졌던 통증도 수그러든다.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 상실은 이렇게 완성된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바르게 응답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양심은 무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력하다. 아퀴나스는 양심은 우리 내면에 남아 있는 선의 불씨라 했다. 그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종교의 본분은 사람들의 무뎌진 양심을 위무하거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양심을 타격해 깨우는 것이다. 김기석 목사의 글에서 가져온 생각이다.
4

조란 맘다니의 뉴욕 사장 당선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그의 승리에 대한 <가디언> 지의 보도를 읽어 본다. "조란의 승리는 부동산 기업, 이스라엘 로비, 공화당 그리고 모든 사람을 눈멀게 하는 억만장자들과 맞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고, 유권자들은 그것을 원하고, 그것을 지지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줄 것이다." 외신들에 의하면, 뉴욕 시장은 미국 대통령 다음으로 어려운 직책이라고 말하는 자리이다.
상대했던 쿠오모는 성추행 스캔들로 민주당을 탈퇴한 민주당의 기득권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뉴욕의 초 부유층과 기업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지만 이번에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번 선거를 보면, 뉴욕 시민들은 민주당의 기득권층이 그들이 필요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한 것이다. 맘나니는 저렴한 주택, 무상 교육, 무상 교통 등의 공약을 내걸었고, 실제로 그것을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뉴욕 시 법인 세율을 인상하고 뉴욕 최고 부유증에게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저렴한 주택 정책'에 자금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100만 달러가 넘는 소득에 2%의 세금을 부과하여 40억 달러의 세수를 창출하고, 주의 번인 세율을 이웃 뉴저지 주와 동일한 수준인 11,5%로 인상해 연간 50억 달러를 벌어 들이겠다"고 했다. 이 재원으로 내 건 공약들은 다음과 같다.
▪ 임대료 동결
▪ 최저임금 인상
▪ 무료버스
▪ 무상보육(6주-5세)
▪ 지역사회 안전부 설치
▪ 뉴욕 시민에 의한 뉴욕 시민을 위한 주택
▪ 각 자치구 시 5개 식료품점 운영
▪ 팔레스타인 지지
34세인 그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투표장으로 오게 했다. 그가 당선된 이유는 뉴욕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이 크다. 18세에서 44세 유권자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전 선거를 통해 우리도 내년에 있을 지방 선거에 영감을 받아야 한다. 그의 승리는 "돈을 모아 어떻게 슬 건가? 묻는 거다.
5
오늘의 말씀은 <루카 복음> 15,1-10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이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서로에게/상지종 신부님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애틋한
마음으로
당신
나에게
오롯한
마음으로
나
당신께
늘 그렇게
우리 함께
교황 즉위 미사의 ‘하이라이트’는 팔리움과 어부의반지 착용식이다.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는 모두 예수와 연관이 깊다. 우선 팔리움은 양털로 만든 흰색 띠 모양의 전례용 조끼를 말한다. 길을 잃어버린 양을 어깨에 눕히는 선한 목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앞뒤로 두개의 검은색 장식이 있고, 어깨 둘레에는 검은 실크 십자가 6개가 장식돼 있다. 팔리움은 또한 3개의 핀으로 고정돼 있는데, 이는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못 3개를 상징한다. 어부의 반지는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을 믿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져 끌어올린 사건에서 유래한 상징물로, 교황이 베드로처럼 교회의 일치를 수호하고 신앙을 지키는 사명임을 의미한다. 각각 다른 대륙을 대표하는 추기경 세명이 교황에게 각각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 수여하고 기도를 한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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