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과 진실은 구별해야 하지만, 믿음은 인간이 구축한 문명화와 문화를 지탱하는 힘이다. 믿음은 내가 사는 사회가 정상적이어서, 나를 악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믿음은 나의 신실함을 보았던 동료가 소문에 의거하여 나를 의심하고 배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램이다. 서로 믿는 믿음의 세계가 구축되려면, 중요한 것이 서로 간의 분명한 소통이 보장 되는 언어가 있어야 하고, 그 언어로 뒤에서 뒷담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보장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신념 체계가 우연히 알게 된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자기가 믿는 신념 체계가 유일하고 정당하고 옳은 체계라고 착각하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가 다소 그러한 점이 있다.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신념을 고치려고 충고하고 질책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말하는 좌와 우의 문제도 그렇다.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과 그 신념이 형성될 뿐이다. 예컨대, 1에서 10까지의 눈금이 있어, 내가 2에 있다면 1은 좌이고, 나머지 3-10은 우이다. 내가 9에 있다면, 1-8운 좌이고, 10은 우이다.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과 그 신념이 형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공부나 배움은 자신의 눈금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이 형성된 눈금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에게도 그의 눈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눈금을 깊이 파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그 눈금이 구속시키는 프레임이라면, 그것을 벗어 버리고 상대방 눈금의 위치를 알아차리고 역지사지하는 공감을 지닌 사람이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신념이 근본주의(根本主義)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왜 이런 괴물과 괴물집단이 나올까? 장대익 교수의 칼럼을 보고 그 이유를 찾았다. 밈이라는 용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용어는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어느 저녁에 소식을 접했던 2001년 미국 9·11테러 발생 직후, 도킨스는 한 일간지 칼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내세를 가르치는 종교는 사람들을 언제든 살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정신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이 기고문으로 그는 수많은 종교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종교 없는 세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문제작 그의 『만들어진 신』은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장대익 교수가 소개하는 다음 문장도 명문이다. 왜들 죽기 살기로 덤비는가? "만일 모든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치자. 그러면 자살테러 같은 만행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고, 어떻게 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왜 죽기 살기로 덤비는가? 장 교수에 의하면, "인간은 모방의 귀재로 진화했다"고 한다. 인간의 독특성은 특출한 모방 능력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에 도킨스는 유전적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의 기억 속에 복제될 수 있는 문화 전달 단위를 ‘밈(meme)’이라 명명했다. 문화전달 단위인, 이 밈 때문에 문화가 생기는 것 같다. 베스트셀러 서적, 영화, 광고, 구호 등이 모두 성공한 밈의 사례들이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그래 인간은 문화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게 하는 것과 사랑하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인문 지식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은 인문 교육이지만, 인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은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인문지식을 배우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인문학의 역할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각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고통받는 타인을 향한 위안과 공감을 불러내,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는 일이다. 나 자신의 존재만을 위해, 나만 잘 살려고, 내 존재만 풍성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문화 전달 최소 단위인 '밈'을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밈은 인간을 숙주처럼 이용해서 자신의 운반자로 인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가 나온다. 즉 이념이나 종교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를 위해 군사정권과 싸우다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의 종교적 이념을 마음에 새긴 채 자살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잘 보면, 세상 어떤 종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유전자에 대항하는 밈을 가지고 있고 밈의 힘에 의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만이 순교자가 나온다. 예를 들어 건강에 좋지 않은데도 청소년들이 왜 담배를 피우는지 아는가? 그들이 소비하는 것은 ‘담배 피우는 게 멋지다’라는 밈 때문이라고 장대익 교수 설명한다.
지난 주는 수많은 전국의 개신교인들이 광화문에 집결해 정권을 규탄했다. 마스크를 끼고 모였어도 시원찮을 판에 호기롭게 집단적으로 구호도 외치고 밀착해서 음식도 나눠 먹었다. 대절 버스를 타고 다시 고향으로 가서 일상에 복귀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 많은 강의가 취소되고, 상인들은 힘들어 한다.
장대익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다른 동물도 이 같은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교라는 '밈'으로 설명했다. 종교도 ‘정신 바이러스’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도킨스가 유신론적 종교를 박멸해야 할 정신 바이러스라고 규정하고 인류가 하루빨리 ‘신이라는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도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의 책, <만들어진 신>도 그런 흐름에서 나온 것 같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우리를 보살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복제만을 위해 인간 숙주를 무차별 공격할 뿐이다. 도킨스는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신념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마지막 질문은 장대익 교수의 문장을 직접 인용한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와 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지 않은 그들이 자신의 밈에 사로잡혀 우리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창조론을 과학교과서에 집어넣으려 온갖 꼼수를 부리고, 상식적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아직도 빨갱이 얘기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의 영역 뿐만 아니라 가치의 영역에서도 꼰대가 된 지 너무 오래다. 역사가 증명해주는 바, 지식과 가치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과연 한국 개신교의 유통기한은 남아있을까?"(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내 생각으로는 곧 그런 극우 개신교 세력들은 사라질 것이라 본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고, 밈이 새롭게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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