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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뢰의 서클"은 침범하지도, 도피하지도 않는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18일)

어제에 이어, "함께 홀로 됨"을 만들어 주는 "신뢰의 서클(공동체)" 이야기를 이어간다. 문제가 있는 이들을 고치려 하거나 꾸짖는 대신에, 그들의 내면에 필요한 모든 힘을 유지하게 하고, 우리의 영혼의 정중함이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 우리는 그들이 홀로 서 있는 자리 곁에 그저 정중하게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하는 곳이 "신뢰의 공동체"이다.

"신뢰의 서클"은 침범하지도, 도피하지도 않는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이 맴버들은 다른 사람이 지닌 참 자아의 신비를 침범하지도 않고, 그 사람의 고통을 회피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각자의 속도와 깊이로 필요한 곳에 가도록 각자 배워야 할 것을 배우도록 지원해준다. 또한 "신뢰의 서클"에서 중요한 것이 영혼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다루도록 이끄는 거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바람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관계를 맺을 때가 많다. 그러한 조건에서는 에고와 같은 능력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윤홍식은 인간의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에고', 또 다른 하나는 '참나'라고 부른다. 나 자신, 진아(眞我)인 '아트만'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하나는 소문자 atman으로 경험적 자아라 한다. 나라는 개별적 인간의 경험에 의해 형성되어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자아(自我)이다. 윤홍식은 이걸 '에고'라 한다. 이 에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무한 세계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유일한 세계, 더 나아가 진리를 머금은 유일한 세계라고 우긴다. 배철현 교수는 그런 사람을 "무식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대문자Atman으로 삼라만상의 근원인 '브라만'과 일치하는 '초월적인 자아'이다. 윤홍식은 그걸 '참나'라고 한다. 에고는 너와 나의 구분이 있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지배 받는 욕심의 세계이다. 반면 '참나(진아眞我)'는 양심의 자아이다. 이 곳에 있는 인간의 본성, 아니 본심은 성스러운 영역이고, 이 세상의 논리와 다른 세상이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없다. 에고라는 욕심의 자아 세계는 '호리피해(好利避害,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한다)'로 요약된다면, 참나라고 하는 양심의 자아 세계는 '호선오악(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의 세상을 말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을 공유한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한 나무 등걸에서 나비가 나오기 위해 막 구멍을 뚫어놓은 듯한 번데기를 발견했다. 나는 한참 기다렸으나 어떠한 조짐도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입김을 불어 번데기를 좀 더 따뜻하게 했다. 내가 열심히 입김을 불어넣은 덕택에 기적이 내 눈앞에서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고, 나비가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날개가 뒤로 접히고 구겨져 있는 걸 본 그 순간의 공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 가여운 나비는 날개를 펴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나는 또 다시 몸을 숙야 열심히 입김을 불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그 놈은 번데기에서 천천히 나와야 할 필요가 있었고, 날개의 펼침은 햇빛 속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다. 내 입김 탓에 나비는 때가 되기 전에 날개가 완전히 구겨진 채 억지로 집에서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 놈은 절망으로 파닥거렸고, 몇 초 후 내 손바닥에서 죽었다. 나는 그 나비의 시체만큼 내 양심에 무거운 짐은 없다고 믿는다. 자연의 위대한 법칙을 거스르는 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깨달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두르지 말아야 하고, 조바심 내지 말아야 하고, 영원한 리듬에 공손히 순응해야 한다."

이처럼, "신뢰의 서클" 안에서, 우리가 영혼, 양심의 세계를 맞아들이려는 마음 외에 다른 어떠한 동기도 없이 서로에게 접근한다면 영혼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가 서로 홀로됨을 "보호하고, 접하고, 인사할"때 상대를 조종하려는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영혼이 안전하게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영혼을 존중함으로써 세상에서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그 결과 이끌어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하며, 그저 영혼을 존중하며 영혼에 다가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이 자신의 영혼에 귀 기울이고, 그 못소리를 듣고, 그 말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낼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변모 시키는 '진실 말하기'의 힘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나비를 억지로 나오게 않게 하고, 나비가 죽을까 염려하여 내버려두고 떠나지 않는 것이 된다. 그 당사자는  침범 당하지도, 외면당하지도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방법을 찾게 된다.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리를 취하기가 어려우므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마음에는 따라야 할 마음의 소리가 있는가 하면 따르지 말아야 할 마음의 소리가 있다. 1차적 마음은 따르기 쉽지만 궁극적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본연의 마음은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궁극적으로 나의 존재를 평안하게 한다. 문제는 이 둘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의 욕심과 계산은 자주 자신을 속인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본연의 마음을 위배하며 살게 된다. 인간은 본연의 마음을 배반하며 사는 만큼 불행해진다. 그래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출발점은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검토해보는 것이다. 자기 생각이 어디서 '소망적 사고'로 빠졌는지를 파악해보는 것이다. 즉 어디서 생각이 근거가 아니라 소망을 따라갔는지를 파악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영혼, 아니 양심과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ㄱ 길이 좀 막연한 것 같지만, 노자가 제시하는 것은 더 실천적이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라지 않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좌절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평온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소망은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이 면에서 보건대 평화와 조화는, 그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 자연히 따르는 법이다." 서양적 사고와는 다르다. 서양은 야망을 성장과 진보의 근원으로 본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 끝없는 야망은 끝없는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슬픔의 둑이 무너져 내린 것"(서윤규, <눈물>)처럼, 장마 같은 비는 쉬지 않고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며 '일정한' 소리를 낸다. 조용히 '빗물'을 생각한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리고 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물은 '내려감'이 결국 '올러감'임을 잘 알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며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는 물에게서 우리는 겸손을 배워야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같이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다. 봄비, 여름 장마비, 가을의 이슬과 서리 그리고 겨울의 눈(雪), 물의 순환으로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그러니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우주의 생성-성장-퇴화-소멸의 과정)의 우주에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숙명을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볼열갈결’(사계절)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열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갈비에 나뭇잎 보내고, 졸 가리 훤한 나목에 결비 내린다." (김래호) 장마를 '열비'로 읽으니, 난 슬프지 않다. 그리고 비에 지지 않을 거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비에도 지지 않고/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가지고
욕심은 없고
절대로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야채 조금을 먹고
여러 가지 일에 자신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의
조그마한 이엉 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가 있으면
가서 간호를 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달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시시할 뿐이니 그만두라고 말리고
가물 때에는 눈물을 흘리고
찬 여름에는 허둥지둥 걸으며
모두에게 얼간이라 불리고
칭찬받지 못하고
근심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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