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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기본적인 도구가 훈육(訓育)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18일)

스캇 팩(Scott Peck)은 자신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첫 문장을 "삶은 고해(苦海)다"로 시작한다. 소제목은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 진정으로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된다.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힘들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우리가 문제를 문제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건이나 갈등이 야기하는 바로 이 고통 때문이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기본적인 도구가 훈육(訓育)이다. 훈육 없이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온전한 훈육이 필요하다. 이 말의 사전적 정의는 "가르쳐 길러 냄"이다. 그래 길이 좀 길더라도 자기 훈육을 위해 시간 내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훈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학교가 온통 입시 위주의 경쟁 체제로 공부를 잘하면 다 용서가 되는 '이상한' 학교 문법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가 말하는 "지지(知止, 그칠 줄 암)"도 훈육의 한 가지라 생각한다. 예컨대, '자기 훈육'말이다. 영어로는 'self-discipline'이라 한다. 교육학 용어로 훈육은 '사회적 규제나 학교의 규율과 같이 사회적으로 명백하게 요청되는 행위나 습관을 형성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반복에 의한 습관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공동체나 사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여러 가지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시키고, 더 나아가 규율위반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교정하는 것을 말한다. 훈육을 통해 습관을 형성시키는 것보다 행위를 교정하는 데 초점을 두면, 훈육이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린다. 그래서 상과 벌에 위한 훈육보다는 대화나 상담을 통한 심리적 교육의 원리를 적용하려고 애를 쓰는 쪽에 더 방점을 찍고 싶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바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고통을 통해서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고통을 느껴야 배운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주변에서 맴돌려고 한다. 문제 안에서 괴로워하기 보다는 문제 밖으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이때 만들어내는 것이 <<IQ 정전>>의 아Q가 쓰는 "정신승리법"이고, 우리는 쉽게 거기에 빠진다. 주인공 아Q는 힘없고 비겁한 날품팔이이다. 모욕을 당하면 자기보다 약한 자를 찾아 분풀이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그 모욕을 머리 속에서 자신의 승리로 바꿔버리는 사람이다. 오로지 상황을 왜곡시켜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정신적으로 이겨내는 삶이다. 루쉰은 아Q의 무력감과 노예근성을 정신승리라고 비유하며 작품 내내 비판했다. 루쉰은 아Q의 "자기 합리화적인" 삶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과거의 환상에 의지해 살아가는 중국인들을 풍자한 것이라 했다.

스캇 펙은 "문제와 이에 따르는 고통의 감정을 피하려는 이러한 성향이 정신병의 근본 원인"이라 했다. 칼 융(Carl Jung)은 "신경증(노이로제)이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라 했다. 이런 경우 치유되지 않으면 인간의 영혼은 시들어간다. 그래 훈육이 필요한 거다. 고통을 겪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겪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거다. 자신에게도 말이다. 이런 경우는 자기 훈육이 될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훈육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이다. 이 훈육은 괴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테크닉이고, 문제가 주는 고통을 겪으면서 끝까지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이다. 그 과정 중에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그 길이 우리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다. 저자가 말하는 훈육의 도구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이다.
-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 책임을 지는 것
- 진리에 대한 헌신
- 균형잡기

이것은 복잡한 도구가 아니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 대단한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했다. 문제는 이 도구의 복잡함이 아니라,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다. 이 도구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없었기에 우리는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가야 한다. 꽃이 피든 안 피든 살아야 한다, 건너가야 한다. 그게 우리들의 생(生)이다. 그게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이기철

언제 삶이 위기 아닌 적 있었던가
껴입을수록 추워지는 것은 시간과 세월 뿐이다.
돌의 냉혹, 바람의 칼날, 그것이 삶의 내용이거니
생의 질량 속에 발을 담그면
몸 전체가 잠기는 이 숨막힘
설탕 한 숟갈의 회유에도 글썽이는 날은
이미 내가 잔혹 앞에 무릎 꿇은 날이다
슬픔이 언제 신음 소릴 낸 적 있었던가
고통이 언제 뼈를 드러낸 적 있었던가
목조계단처럼 쿵쿵거리는, 이미 내 친구가 된 고통들
그러나 결코 위기가 우리를 패망 시키지는 못한다
내려칠수록 날카로워지는 대장간의 쇠처럼
매질은 따가울수록 생을 단련시키는 채찍이 된다
이것은 결코 수식이 아니니
고통이 끼니라고 말하는 나를 욕하지 말라
누군들 근심의 힘으로 밥 먹고
수심의 디딤돌을 딛고 생을 건너간다
아무도 보료 위에 누워 위기를 말하지 말라
위기의 삶만이 꽃피는 삶이므로

케이크를 먹을 때 어떤 부분을 먼저 먹는가? 크림인가? 빵부분인가? 일하는 습관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처음 한 시간 동안은 좀 더 즐거운 일에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 여섯 시간은 하기 싫은 나머지 일로 채우는가? 아니면 처음 한 시간 동안 즐겁지 않은 일을 먹지로라도 해치우고 나서, 나머지 여섯 시간을 자유롭게 즐기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훈육의 제1도구인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룬다는 것은 삶이 주는 고통과 즐거움을 맛보는 순서를 정한다는 것이며, 이렇게 먼저 고통을 맞고 겪고 극복함으로써 즐거움은 배가된다는 것을 아는 거다.  저자는 이것이 "품위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하며,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을 잘 발달시키지 못한 아이들이 '문제' 학생들이라 했다. 이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 단지 순간적인 기분으로 수업을 빼먹고 학교를 가지 않는다.
- 사회 생활에서도 자주 싸움에 휘말리고 마약을 복용하고 경찰과 마찰을 일으킨다. 충동적인 삶의 방식에 조금이라도 간섭하면 이들은 반항하기 때문이다.
- 약속을 어기고 중요하고 고통스러운 모든 화제는 피해버린다.
이들의 생활 신조는 '우선 지금 놀고 생각은 나중에 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학교를 중퇴하고 실패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비참한 결혼, 사고, 정신병원, 감옥 같은 곳에 정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이들은 즐거움을 뒤로 미루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일까? 저자는 부모의 양육 방식이 결정적 요인으로 보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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