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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모두 완벽한 형태의 영혼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온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12일)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영혼 또는 참 자아가 실재하며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영혼 또는 참 자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좋은 본보기가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대부분 타고난 자질대로 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조용히 받아들이고 차분히 관심을 기울여 바라본다. 그런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영혼의 DNA를-자신이 누구이고, 왜 여기에 왔고, 어떻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가 암호처럼 새겨져 타고난 지식-을 담은 '자아의 씨앗'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젊어서는 나 자신의 문제에만 열중해 있어서 나와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아의 씨앗'을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버릴지 모르나, 그것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로버트 머튼(Robert Mutton)은 그것을 '참 자아'라고 불렀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을 '참 나'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본성', 퀘이커 교도들은 '내면의 빛', 유대인들은 '신성의 불꽃'이라 부른다. 보통 인문학에서는 그것을 '영혼'이라 부른다.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영혼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지만/그것은 오고 간다/물 위의 바람처럼"이라고 했다. 어쨌든 우리는 영혼의 신비를 전부 파악할 수 없더라도 영혼의 몇몇 기능에 다음과 같이 이름을 붙일 수 있다.
▪ 영혼은 우리가 진정한 우리 존재의 터전에 뿌리내리길 원하면서 에고 같은 다른 능력들이 그것을 방해하는 데 저항한다. 인생이란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는 누구인가? '남들이 말하는 나(3인칭으로서의 나)'와 '내 자신(1인칭으로서의 나)인 나'가 있다. 잘 보면, 나는 우연히 던져진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환경을 통해 내가 되었다. 그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 사람들이 나라는 인간을 통해 투영한 '그들의 나'이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이다. 반면, '나 자신', '진아(眞我)'인 '아트만'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하나는 소문자 atman으로 경험적 자아라 한다. '나'라는 개별적 인간의 경험에 의해 형성되어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자아(自我)이다. 윤홍식은 이걸 '에고'라 한다. 이 에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무한 세계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유일한 세계, 더 나아가 진리를 머금은 유일한 세계라고 우긴다. 배철현 교수는 그런 사람을 "무식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대문자Atman으로 삼라만상의 근원인 '브라만'과 일치하는 '초월적인 자아'이다. 나는 그걸 '참나'라고 한다.
▪ 영혼은 우리가 성장하려면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커뮤니티 안에서 참된 사람을 발견하길 희망한다.
▪ 영혼은 우리에게 우리의 영혼과 세계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길 원한다.
▪ 영혼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자 하고, 그 생명의 선물을 주위에 전해 너무나 많은 죽음이 다루어지는 세상에 생명을 주기를 원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형태의 영혼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온다. 그러나 영혼, 참자아는 안팎의 힘-예컨대,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경제적, 불평등과 그 밖의 사회적 암-들에 의해 그리고 질투, 시기, 분노, 의심, 두려움, 불안, 걱정 같은 내적 생명의 적들에게 공격을 받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저 바깥'에 있는 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힘들이 우리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에 잠재적인 협력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충동이 처벌의 위험 때문에 위축되는 것은 자신의 믿음보다 사회적인 안전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약자 편을 들고자 하는 충동이 사회적 지위를 잃을 위협에 직면하여 위축되는 것은 낮은 자가 되기보다는 인기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은 우리에게 타고난 본래의 모습으로, 흔들리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온전한 삶으로 돌아오라고 계속 부른다. 그게 영혼이고 '참 자아' 아니 '참나'이다.

그 '참나'를 찾으려면 인간의 '경험적 자아'는 '초월적인 자아'에 의해 정복당해,  친구가 되어야 한다. 그 말은 자아가 추구하려는 최선의 단계인 우주와 합일된 자아가 일상의 자아, 경험적 자아를 정복하여 깨어난 자아로 합일되는 상태이다. 배철현 교수에 의하면, 만일 내가 초월적 자아에 의해 정복당하면, 나는 그 자아와 친구가 되어 승화의 길로 들어 설 수 있다. 그러나 경험적 자아에 사로잡히면 나는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고 한다. 잘 사는 삶이란 경험적 자아를 가만히 보고 취사선택하여, 초월적 자아와 합일을 시도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吾喪我)"가 생각난다. '나를 잃었다'는 이 말은 '내가 나를 장례 지낸다(이 말은 '성심'을 버린다는 말로 보면 좋다)'고 보는 것이 더 잘 이해가 간다. 다시 말하면, 나를 잃음은 나를 비움의 상태로 들어갔다는 말이다. 이를 '오상아'로 표현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 내가 진정한 내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비본래적인 자아, 작은 자아(self)에서 풀려나 본래의 자아, 큰 자아(Self)가 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의식 상태로 설명하면, 일상의 이분법적 의식 세계에서 벗어나 초이분법적 의식의 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 꽉 막힌 자의식에서 탁 트인 우주 의식(cosmetic consciousness)으로 변한 것이다.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기 위해 자신은 스스로를 나비가 고치를 버리듯이, 새가 자신을 감싸는 알을 깨고 나오듯이 과거의 ‘자아’를 유기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행위를 '무아'(無我) 혹은 ‘비움’이라고 말한다.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에서도 우주적인 자아가 바로 진정한 자아, 진아(眞我), '참나'라고 말한다.

메리 올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성장한다. 이것은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멋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면 결국 영혼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참자아'를 만난다.
▪ 나의 에고(好利避害, 호리피해-이익은 좋아하고 손해는 피한다)가 피하려 하는 고통스러운 진실 앞에서 '내면의 교사'에 귀 기울이고 그 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참자아를 깨닫는다.
▪ 자기 방어적인 마음이 열리고, 다른 이의 기쁨과 고통이 마치 나 자신의 것인 듯 내 안을 채울 때 나는 참자아를 깨닫는다.
▪ 내면이 황량 해져 삶의 의욕을 잃었으나 내 안에 살아 있는 생명력을 발견할 때 내게 참자아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오늘 점심은, 오늘 사진처럼, 영혼이 담긴 팥죽을 먹었다. 이 여름에 사람들은 팥빙수를 먹는데, 나는 겨울에 먹는 팥죽을 먹었다. 팥빙수 대신 그 팥죽이 내 상한 영혼을 위로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나는 온전한 삶(whole life)을 꿈꾼다. 이를 위해 내가 생각하는 영혼을 지키는 4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사탄의 간교함을 파악한다.
▪ 불평의 씨앗을 제거한다. 불평하는 마음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암 덩어리이다. 그러니 자족 또는 만족이 중요하다. 특히 자족이 중요하다.  '바라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라야 흡족해 하는 것이 만족이라면, 자족은 어떠한 형편이든지 긍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비결은 자족(自足)이다. 하느님은 공평하시다. 노자가 "전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한 것과 같다.
▪ 유혹의 자리로 가지 않는다.
▪ 입과 귀를 잘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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