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10일)
1
아침 산책의 즐거움은 동네 집집마다 피고 있는 꽃들을 만나는 일이다. 오늘 사진이 그 거다. 다음에서 꽃 검색을 하니 이름이 '엘라티오르 베고니아'였다. 구근 식물 베고니아의 일종이다. 늘 그 집을 지나가는 것은 나만의 호사(豪奢, 호사로운 사치)이다. 일상에서 '호사를 누리다'라는 말로 쓰인다. 그 뜻은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거나 경험하다'는 말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며, 남의 집에 어렵게 키운 꽃들을 즐기는 '호사'가 나의 아침 산책 길에 얻는 일이다. '호사를 누린다'는 말은, 주로 좋은 환경이나 풍족한 물질적 여유 속에서 느끼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정신적 여유 속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얻을 수 있는 사건이다. 언젠가부터 많은 것을 내려놓으니 일상에 여유가 생기고 꽃들이 눈에 들어 온다. 그래 '나이 먹은 사람들의 스마트 폰 사진첩을 보면 꽃밭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유(餘裕)'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 또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반대말은 '결핍'. '모자람, 분주함', '초조함' 등이다. 여유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거나 시간이 많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여유라는 개념은 자신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유의 반대말인 결핍은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에 원인이 있다. 그리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려면 자신이 지금 무엇에 쫓기고 있는 지부터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 진다.
2
이젠 어제에 이어지는 공부 이야기이다. 동아시아 철학에서 말하는 공부의 길은 <<중용>> 제20장 5절이 말해 준다. 다시 말하면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정신 훈련 법'이기도 하다. 악기의 연주나 무도의 기술처럼, 반복과 연습이 점차 기량을 축적해주는 것처럼, 정신 훈련도 몸으로 하는 기예(技藝)들과 닮았다. 이론(思)과 연습(學)이 같이 간다.
"완전한 사람은 자연 그대로이다. 인간의 책무는 완전을 향해 상승하는 것이다. 완전한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최선에 가 닿고, 숙고하지 않아도 나아갈 길을 안다. 자연스럽게 도(道)가 구현된 사람, 그가 곧 성인(聖人)이다. 보통 사람은 그를 닮기 위해 일상에서 최선을 선택하고, 그것을 지켜 나가려 분투한다. 그럼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넓은(博) 학습과 경험(博學), 절실한(審) 물음(問), 신중한(愼) 숙고(思), 명료한(明) 분석(辨) 그리고 두터운(篤) 실천(行)이 그것이다."
이것을 따로 열거해 본다. 다섯 가지이다.
▪ 넓은 학습과 경험-博學(박학)
▪ 절실한 물음-審問(심문)
▪ 신중한 숙고-愼思(신사)
▪ 명료한 분석-明辯(명변)
▪ 두터운 실천-獨行(독행)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히 판단하며, 독실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학문사변행(學問思辯行)'이다. 이를 세 걔로 또 나눌 수 있다.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이든, 간접적인 독서를 통한 학습을 하고, 그걸 가지고 묻고, 생각하고 분석한 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에 붙는 형용사는 '박심신명독(博審愼明篤)'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몰입해서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인문 정신을 기르는 일이다. 인문 정신은 ‘전진하는 분석’과 ‘후퇴하는 종합’, 즉 '통찰'하는 정신과 일상에서의 실행이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총체적으로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고, 그걸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문정신은 우리의 삶과 세상을 잘 볼 줄 알게 해준다. 이러한 통찰의 힘을 기르는데 최고의 자양분이 인문학, 후마니타스(humanitas)인 것이다. 잊지 말 것은 진정한 통찰의 힘은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끝까지 학습하고, 아직 대답이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더 철저하게 캐묻고, 이해가 미진하다 싶으면 더 깊숙이 숙고하고, 판단이 안 서는 곳이 있다면 분명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하되 충분하지 않다면 끈기 있게 밀고 나간다.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백 번을 하겠고, 다른 사람이 열 번이면 가능한 것을 나는 천 번을 각오한다. 참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워질 것이고, 유약한 자도 단단해 질 것이다.
이것은 조선 시대의 선비정신이다. 나도 나에게 남은 삶은 선비처럼 살 생각이다. 우리의 선비정신이 인문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문, 사, 철(文, 史, 哲)이다. 여기서 문(文)은 문장이다. 문장은 기교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고 영혼이다. 영혼, 마음의 '뜰'을 넓히고 잘 가꾸어야 문장이 넘쳐 난다. 사(史)는 역사라는 거울에 비추어 스스로를 반성하고 나아갈 바를 살피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 '표폄(褒貶, 시비, 선악을 판단 결정하는 것)'이다. 철(哲), 철학은 관념의 퇴적이나 사념의 유희가 아니라, 깊은 생각과 넓은 조망을 통해 삶의 진정한 원리를 발견해가는 살아 있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박제된 관념의 집합이 아니라, 삶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혼(魂, 정신) 훈련'인 것이다.
3
그리고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을 계속 건너 가자는 것이 내 철학이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누구든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때 일어난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와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해석하는 동물이고, 현실은 늘 해석된 현실일 뿐이다." 김영민 교수의 이 이야기를 하다가, 샛길로 빠졌다. 현실과 싸우려 하지 않으려 해도, 인간은 해석하지 않고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거다. 주제 파악을 하라, 현실 파악을 하라는 말이 있지만, 그 누구도 해석 이전의 주제 파악이나 현실 파악을 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석 이전의 현실이라는 게 어떤 모습인지 모르지만, 그런 걸 보고서 미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리고 "어떤 해석도 영원하지 않다"(김영민)는 것이다. 해석 이전의 현실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끔찍하여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은 김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인간은 해석 없이 살 수 없다. 신, 동물, 사물에 대한 일정한 해석을 전제하지 않고는 문명을 건설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결국 기존의 해석이 오작동하는 순간이 온다. 토리노의 말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연민과 공감의 문제가 아니다. 연민과 공감이 만능은 아니다. 일정한 해석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공감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미역국을 먹으며 미역에 상처가 될까 봐 목이 메면 어쩔 것인가. 많은 이들이 불쌍한 말을 감당할 문화적 코드를 향유하던 시절에 니체는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 코드로부터 소외되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벌거벗은 현실을 마주하고 결국 미쳐버린다."
4
"인생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어라"라고 말하는 실버먼(Ben Silbermann)이라는 멘토를 소환한다. 그는 탁월한 비즈니스맨이지만, '인생 수업'이라는 강좌가 있다면 무조건 그가 맡아야 할 것 같은 지혜로우면서 다정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인생 수업'이란 사는 것 자체가 공부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몇 가지 삶의 기술을 가르쳐 준다.
▪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라. 매년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돌아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 말이다. 나는 이런 시도는 해보지 안 했다. 그러나 의미는 있을 것 같다. 그에 의하면, 분, 한 시간, 하루, 한 달, 한 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고 한다. 이번 주가 1년 중 어디쯤 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가치 있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믿는다. 실제로 많은 전문직들이 그 직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8~10년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2년의 부진이나 실패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 성공은, 성공한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병렬 처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강, 인간관계 등은 하나를 해치운 후 다음 것을 해치우는 순차적인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이다. 소중한 것들은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시간을 낸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삶의 다른 중요한 일에 매일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은 동시작인 상태이다. 열심히 일하며 꿈을 향해 뛰는 동시에 가족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땀 흘리는 운동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안부를 챙기고, 좋은 책을 일고, 깊은 잠을 자는 것이다.
▪ 높은 성과자들과 시간을 보내라. 실패에서 배움을 얻는 것보다 원가를 잘하는 방법을 배우려면 진짜 잘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실패는 될 수 있는 한 가볍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 생각을 종이 위에 꺼내라. 그에 의하면, 집중이 되지 않거나 답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지금 이 순간의 상황'에 대해 전부 글로 적어 머릿속을 비우면서 읽어 보면, 좋은 연결 고리나 단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 많이 활용하는 '디자인 싱킹' 방식이다. 포스트-잇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적은 그것들을 가지고 연결 고리를 찾는다.
▪ 감사 일기를 매일 아침 쓴다. 나도 그렇게 한다. 하루에 의무적으로 다섯가지의 감사할 내용을 노트북의 '에버노트'에 적어 본다. 이렇게 감사를 시각화 하면 뇌가 자동으로 감사할 일들을 찾게 되어 행복해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하는 것이나 생각 하면 미소가 떠오르고 가슴이 뛰는 목표들을 모두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둔다. 예를 들면, 눈에 띄는 차트를 만들고, 목표 달성을 차근차근 잘 보여주는 코치와 운동을 하고, 생각을 종이 위에 옮기고, 감사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삶의 구체적인 실제를 점검해 본다. 그러면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소중한자 우리는 쉽고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되어 그것들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생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면서도 삶의 중요한 일에 매일 시간을 쏟는 것이다. 그래 나는 지난 주부터 탁구 레슨을 받고 있다. 우선 운동을 정기적으로 할 것이다.
5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해가는 오늘날, 어떻게 해야 기존의 신, 동물, 사물에 대한 기존 해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답으로 아침에 생각한 것은 소유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 전환하는 거다. 존재는 '있다'이고, 소유는 '가짐'이다. 석가모니는 존재, 즉 있다는 있다가 없다가, 생겼다 없어졌다(생멸)하는 공(空)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공'은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세상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인드라망'이라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로써 불교에서 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한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여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무구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 인드라망)이 있다.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져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추는 밀접한 관계속에 있다. 또 이것은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존재는 이어져 있지만, 소유는 끊어져 있다. 소유는 이어져 있지 않고 끊어져 있다. 따로따로 있어, 각각 이어서 각자 가지고 산다. 그래 존재는 '있다'이고, 소유는 '가짐'인 것이다. 그냥 있는 대로 두면 되지, 가지려 하는가? 소유 의식은 내일에 대한 근심 걱정에서 생긴다. 그러다 보니, 존재-'있다'로 존재하고 싶다. 있고 싶다, '되다'를 되고 싶다. '하다'를 하고 싶다. '이루다'를 이루고 싶다 보기 때문이다. '싶다'가 근심 걱정, 괴로움의 뿌리이다. '싶다'의 마음을 비우고, 되는 대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사라진다.
존재 방식의 삶과 소유 방식의 삶을 '무위의 삶'인가 아니면 '유위의 삶'인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억지로', '일부러'가 아닌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하루를 맞고, 그 하루를 상황에 맞추어 충만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 충만함 속에는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한다. 그건 옳은 일을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생기는 느낌과 기분이다. 너무 땀을 흘리지 말자. 그 길은 버리는 것이다. 버린다는 것.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 늘 우리의 서랍이 잘 닫히지 않고, 아울러 마음 또한 붐비고 갈수록 점점 더 비좁아진다. 버림은 고치는 것에 가깝다.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을 고친다는 것은 곧 화를 버리는 일이 아닐까? 동시에 버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잘 골라서 간직하는 것이다. 고르고 또 고르고 또다시 고른 끝에 남은 것 만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물건이든 기억이든 사람이든. 버려야 할 것은 고치고 그 끝에 남은 것을 간직하고 가지지 말아야 할 것들 에는 애당초 눈을 돌리지 않아야 그 빈자리에 기쁨이 들어선다.
기쁨/이성부
살아갈수록 버릴 것이 많아진다
예전에 잘 간직했던 것들을 버리게 된다
하나씩 둘씩 또는 한꺼번에
버려가는 일이 개운하다
내 마음의 쓰레기도 그때 그때
산에 들어가면 모두 사라진다
버리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던 자리에
살며시 들어와 앉은 이 기쁨!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1세기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능력 16가지 (7) | 2025.07.13 |
|---|---|
| 나도 속 비우고 싶다. (3) | 2025.07.13 |
| 우리는 모두 완벽한 형태의 영혼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온다. (6) | 2025.07.12 |
| 짐승이나 사람들은 늙으면 추해지는 데 반해 나무는 늙을수록 아름다워진다. (4) | 2025.07.12 |
| 물론 나는 없다. 이미 다 버렸기 때문이다. (0) | 2025.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