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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知其雄(지기웅) 守其雌(수기자) 爲天下谿(위천하계): 남성 다움을 알면서 여성 다움을 유지하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13일)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 지난 주일에는 딸과 진주를 다녀왔다. 큰 계획 없이 낯 설은 다른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준다. 발길 닿는 데로 도시를 산보하다가 진주성까지 가게 되었다. 거기서 만난  <솟대쟁이 놀이>패의 공연을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잃어 버린 우리 전통 공연이 색다른 기쁨을 주었다. 오늘 아침 사진이 그 거다.

이젠 어제 멈춘, <<도덕경>> 제28장을 이어 읽는다. 개인적으로 큰 지혜를 얻은 장이다. 웅(雄, 수컷)과 자(雌, 암컷), 백(白)과 흑(黑), 영(榮)과 욕(辱)의 양면에서 화려한 전자의 덕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후자의 초라하고 어둡고 억울한 자세를 지킬 줄 아는 역량, 그 인격을 갖추라는 말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절제이다. 잘 나갈 때 멈추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용기(勇氣)라고 착각하고 그런 집단행동을 민주주의(民主主義)의 발판이라고 호도한다. 대한민국은 무절제 공화국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편협하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언행을 누군가에게 점검 받아야 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언행이, 자신의 최선인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진짜' 민주주의는 한없이 정제된 언행과 집단의 숙고(熟考)를 통해 만들어진 결정을 수용하고 준수하려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편협한 편견이란 사실을 모르고 말을 쏟아 내는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국민의 정서를 점점 각박하게 만든다. 그들은 '침묵이란 자신의 언행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감사 표시이고, 언행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준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테가 상상한 지옥은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사후에 형벌을 받는 장소다. 그들의 죄명은 무절제(無節制)다. 단테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인간의 죄과를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무절제, 폭력, 그리고 사기다. <지옥(인페르노)>편 제1곡에 등장한 세 마리 짐승이 세 가지 죄의 상징이다. 암 늑대는 무절제, 사자는 폭력, 그리고 표범은 사기다. 무절제는 1인칭, 즉 자신에게 가하는 죄이고, 폭력은 2인칭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이며, 사기는 3인칭, 즉 불특정 다수에게 끼치는 죄다. 사기가 지옥에서 가장 큰 죄다.

이젠 원문과 번역은 뒤로 미루고 한 문장 씩 읽어 본다.
▪ 知其雄(지기웅) 守其雌(수기자) 爲天下谿(위천하계): 남성 다움을 알면서 여성 다움을 유지하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말 그대로 하면, 수컷을 안다. 암컷을 지킨다.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로 읽을 수 있다. 그럼 수컷을 알고 암컷을 지킨다는 말은 단순하게 동물의  암, 수의 구별이 아니라, 그 성질인 남성성과 여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양의 성질과 음의 성질,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남성상과 여성성을 잘 조화롭게 알고 지키며 운용한다면, 다시 말해 음양의 성질을 잘 운용하면, 천하의  만물이 모두 산골짜기로 삼는다는 거다. 또는  음양의 이치를 알고(知), 그 이치에 따른다면(守), 천하 만물을 담아 만물을 기르고 거두어 들이는 골짜기가 된다. 또는 같아진다 로 읽을 수 있다.

• 爲天下谿(위천하계) 常德不離(상덕불리) 復歸於嬰兒(복귀어영아): 천하의 계곡이 되면, 영원한 덕에서 떠나지 않고 갓난아기로 돌아간다.

천하의 골짜기는 만물을 담고 있으므로 만물이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덕이 떠나지 아니하니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간다. 갓난아기는 해맑고, 순수한,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삿난 아기는 성별이 구별되기 이전이다. 그러니까 '항상 덕이 떠나지 않아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 知其白(지기백) 守其黑(수기흑) 爲天下式(위천하식):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유지하면 천하의 본보기가 된다.

백을 알고 흑을 지킨다. 백과 흑은 인간사의 시비와 만물의 변하는 이치를 말하는데, 이것을 천하의 기본으로 삼고 따른다는 거다. 알고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바로 수행을 말한다. 알고만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이치를 알고 따르는 것(지키는 것)은 수행을 함을 말한다. 수행은 삶을 말한다. 다음과 같이 읽을 수도 있다. 밝고 명확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어둡고 아득함을 지켜 나가면 온 천하가 본받는 사표가 된다.

• 爲天下式(위천하식) 常德不忒(상덕불특) 復歸於無極(복귀어무극): 천하의 본보기, 사표가 되면 영원한 덕에서 어긋나지 않고 무극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백을 알고 흑을 지키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따르면, 인간의 시비 이해와 만물의 변화되는 이치를 기준으로 삼고 따르면, 그 덕이 항상 변하지 않고 무극(無極)으로 되돌아간다. 무극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일에 있어서는 중정(中正)을 말하는 거고, 지혜에 있어서는 한계가 없음을 말한다. 그래서 무극이다. 끝이 없다는 거다. 무극을 도의 세계의 근원으로도 볼 수 있다. 무극은 태극보다도 이전 상태로서 어떤 형태의 사물도 분화되기 이전의 궁극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특(忒)'은 '어긋나다, 틀리다'라는 말이다.

• 知其榮(지기영) 守其辱(수기욕) 爲天下谷(위천하곡): 영광을 알면서 오욕을 유지하면 천하의 골짜기가 된다.

영화를 알고, 욕됨을 지킨다. 영화는 좋은 것이고, 욕됨은 싫은 것이다. 이 좋고 싫은 것 모두를 한 골짜기에 담아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속세의 영화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욕된 생활을 참고 견뎌내면 온 세상이 돌아오는 큰 골짜기가 된다. 또는 만물은 태어나게 하는 골짜기와 같이 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영화로움이 덧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욕되고 비천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세상의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골짜기가 된다는 거다.

• 爲天下谷(위천하곡) 常德乃足(상덕내족) 復歸於樸(복귀어박):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풍족하게 되고 순박한 통나무로 돌아가게 된다.

골짜기에 부귀영화나 욕됨을 다 담아내어 이를 표준으로 삼아 따르니 덕이 항상 족하다. 그래서 통나무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통나무, 박(樸)은 위 문장 영아(嬰兒)와 같이 순수한 상태이다. 아직 가공하지 않은 나무 토막, 어떤 형태로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이 무한한 어떤 것이든 만들어 질 수 있는, 아직 나무토막 자체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부귀함을 누리나 욕됨을 알면 부귀를 가치 있게 쓸 것이다. 또한 욕됨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감수하면 또한 부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귀영화와 욕됨이 서로 넘치면 서로 뒤바뀌게 되는 이치를 알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덕이 항상 부족함이 없이 족하다고 한다. 그러면 손대지 않은 통나무의 소박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다시 질박함과 순수한 상태로 되돌아가 회복된다는 말이다.

•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聖人用之(성인용지) 則爲官長(즉위관장) 故大制不割(고대제불할): 통나무를 쪼개면 온갖 그릇이 생겨난다.  성인은 통나무의 질박한 가능성을 잘 활용하여 세상의 진정한 리더가 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리더의 다스림은 자질구레하게 자르지 않는다.

자웅(雌雄), 백흑(白黑), 영욕(榮辱)으로 영아(嬰兒), 무극(無極), 박(樸)으로 돌아간다. 이는 전혀 상반된 것을 크고 순수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제도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제불할(大制不割)"이라 한 것 같다. 큰 도일수록 세밀한 것을 논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다는 말이다. 대체를 말하지 구체적이 않다는 거다. 세밀함이 없다는 말이다. 아우트라인(outline)만 있다. 통나무는 다듬으면 그릇이 된다. 그런데 성인은 관장, 즉 관의 장으로 삼아 사용한다. 이 말은 통나무를 다듬는 것은 세밀함이고, 관장을 임명하는 것은 넓은 의미라 그릇은 그릇으로만 사용되고 관장은 아직 관장 아래 많은 이가 있어야 관이 돌아가게 된다. 성인은 관장만 임명하고 나머지는 관심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서 큰 제도는 세밀한 부분은 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통나무를 쪼개어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소박함을 끊어 인재를 만들 수 있지만 성인이 그들을 쓸 때는 고작 한 분야의 우두머리로 쓸 뿐이다. 그러므로 크게 쓸 때에는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고 통나무의 소박함을 그대로 두는 것이라는 말이다. "대제불할"은 넓게 다스리는 제도에서는 세세하게 개별화로 나눠서 규제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하면 더 쉽게 와 닿는다. 도올 김용옥은 다르게 풀이한다. '관장'을 성인 본인의 덕성, 위상으로 보았고, "대제불할"을 통나무, 박의 무위정치로 보았다. 그래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성인은 통나무의 질박한 가능성을 잘 활용하여 세상의 진정한 리더가 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리더의 다스림은 자질구레하게 자르지 않는다." 전체적인  제28장 원문과 번역은 블로그로 옮긴다.


솟대쟁이 놀이패를 보면서,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가 생각났다. 살면서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끈/공석진



힘주는 팽팽한 욕망
질질 끌려갈 수도
툭 끊어질 수도

그저
당기면 밀어 주고
밀어 주면 당기고

애당초 끈은
탯줄에 의지하여
세상 밖으로 안내하는
생명선

숱한 인연을
나의 심장에
단단히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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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쓴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