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와인아카데미 가을 학기가 시작된 날이다. 이 번에는 프랑스의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을 여행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부르고뉴를 잘 발음하지 못하고, 어려워한다. 그래서 그들은 '버건디(Burgundy)'라 한다. 우리도 '버건디 와인'은 잘 몰라도, '버건디 칼러'라는 말은 좀 안다. '피노 누아르(Pinot noir)라는 단일 품종으로 만드는 '고결(高潔)'한 와인이다.
가을 학기 와인 첫 강의를 가다가 택시 안에서, <창세기> 3장 6절을 가지고 <음식(飮食)> 이야기를 하는 배철현 교수의 글을 읽었다. 배교수는 창세기 3장 6절을 이렇게 소개 했다. "그 여인이 보니, 그 나무(의 열매)는 음식으로 좋고, 눈에 즐거움을 주고, 지혜롭게 만들만큼 이상적이었다." 인터넷으로 다시 그 구절을 찾아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는 인류가 음식의 유혹에 빠져, 영적인 존재에서 육체적인 존재로 타락했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 차려진 음식이 최고의 식재료로 만든 최상의 요리이며, 눈으로 보기에도 즐거움을 줄 정도로 아름답고 자극적이고, 심지어는 그 음식을 섭취하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 정도로 이상적이다. 그런 음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누가 그걸 거부하겠는가?
배교수는 이 문장의 음식에 관한 형용사 3 개의 히브리어를 소개한다.
▫ "음식으로 좋고"(인터넷으로 찾은 성서에는 "본즉 먹음직도 하고"): '좋다'라는 히브리어는 '토브'라고 한다. 그 말은 후각과 관련된다고 한다. '토브'는 '향기로운, 코를 통해 침샘을 자극하는'이란 의미란다. 실제로 좋은 와인은 향기가 좋은 와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저녁 무렵 어느 식당 앞을 지나가면, 음식의 향에 자극을 받는다. 음식이 실제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향으로 무슨 요리인 줄 알기도 한다. 중국집의 짜장면 향은 지금도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도 그 향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토브'는 '최상급'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파라다이스(낙원, 에덴 동산)에서 만들어진 최상급 음식은 거부할 수 없는 향기를 지녔을 것이다.
▫ "눈에 즐거움을 주고"("보암직도 하고")에서 '즐겁다'의 히브리어는 '타아바'라고 한다. 이 단어는 시각을 자극하는 단어란다. 눈에 쾌락을 줄 정도로, 음식을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때 사용하는 말이란다. 와인도 향을 맡은 후, 마시기 전에 색깔을 감상한다.
▫ "이상적이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네흐마"란다. 이 말은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단어란다. 아마도 그 음식은 몸에 좋은 유기농 재료로 우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이상적이란 말을 한 것 같다. 우리가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자고 하는 것도, 소주가 '만든' 술이라면, 와인은 '빚은' 술로 포도 이외에 이물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천연 음료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의 "깊은 맛"이 나려면,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숙성 시켜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일게다. 음식은 한문으로 쓰면 이렇다. 飮食, 즉 음(飮, 마시는 것)이 먼저이다.
깊은 맛 /김종제
모름지기 배추는
다섯 번은 죽어야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는데
밭에서 잘 자란 놈을
모가지 잡아채서 쑤욱 뽑아내니
그 첫 번째요
도마 위에 올려놓고
번득이는 칼로 몸통을 동강내니
그 두 번째요
커다란 고무다라에
소금물 뒤집어쓰고 누웠으니
그 세 번째요
고춧가루에 마늘에 생강에
온몸이 붉은 피로 뒤범벅이 되었으니
그 네 번째요
마지막으로 독이란 관에 묻혀
흙 속으로 다시 돌아가니
그 다섯 번째라
푸르뎅뎅한 겉절이 같은 것이 아니라
시큼털털한 묵은지 같은 것이 아니라
쓴맛에 매운 맛에 단맛까지
몇 번은 죽어
깊은 맛을 내는 김치처럼
우리네도
몇 번은 죽었다가
몇 번은 살았다가
곰삭은 인생이야말로
깊은 맛을 지니는 것 아닌가
잘 익은 저 주검을
손으로 집어
한 입 먹어주는 것도
生에 한 발 더 깊이 빠지는 일이겠다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김종세 #와인비스트로뱅샾62
세상의 귀한 것이 다 그렇듯이, 음식은 절제할 때 빛난다. 술은 수와 불의 합성어로 술 속에는 불이 들어 있다. 적당한 불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지만, 지나친 불은 우리를 다 태워 버린다. 음식의 식(食)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어울리는, 적당한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오늘 내가 먹고 마신 것이 '나'라는 말이 있다. 그래 절제된 식생활은 자신을 수련하고 건강하고 이상적인 인간으로 훈련시키는 필수 조건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자신이 배가 부르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는데…
그렇다고 금식(禁食)도 건강을 해치고,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한 번 아파 본 사람은 중용이라는 정교한 지점을 안다. 금식이나 폭식이 아니라, 적당한 식습관이 중요하다. 음주도 마찬가지이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중도(中道)는 오랫동안 인내의 수련을 거친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고, 자기 관리의 영역이라는 배교수의 말은 귀담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건강한 음식을 적당히 먹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 이유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건강은 왜 필요한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라는 배교수의 생각과 나도 괘를 같이 한다. 건강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없고, 우리가 열망하는 고유한 임무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요함만이 고요함을 찾는 뭇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 (3) | 2025.06.14 |
|---|---|
| 언컨택트'는 오히려 상호 존중, 수평, 예의에 기반한 ‘만남'을 촉구한다. (12) | 2025.06.14 |
| 축구의 본질은 놀이다. (3) | 2025.06.14 |
|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2) | 2025.06.14 |
| 틀린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 202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