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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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14일)
매력(魅力)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어떤 것이다. 그래 매력이라는 말은 아우라 혹은 카리스마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건 흔히 보는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들 속에 있더라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빛나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게 오늘 아침 말하고자 하는 매력이다. 말 그대로 하면, '도깨비'처럼 이끌리는 힘이다. 그 매력을 가지려면, 일상의 삶에서 어떤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또는 그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한 번은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한다면, 위험하다. 왜냐하면 진리나 상식은 보통 인간들에게는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오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외부의 자극을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범주에 귀속시킨다고 했다. 이 '공통적인 감각'을 우리는 '상식(common sense)'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상식이 이데올로기를 만나면, 이것마저 왜곡된다. 상식을 '교리(敎理)'로 대치시키고, 그걸 상식이며 진리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교조적인 교리에 빠져 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상식과 진리 속에서 나를 '구별된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자신을 일상의 습관, 특히 식습관을 장악해야 한다. 배철현 교수의 <매일 묵상>을 읽고 얻은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 가지를 구별한다.
(1) 마시는 음료
(2) 헤어스타일
(3) 만남을 구별한다.
요즈음 말로 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몸에 치장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발로 가는 곳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된 아이'를 갖고 싶었던 여인의 이름이 '한나(Haanah)'이다. 이 이름은 고대 히브리어로 '(신의) 은총', '조용', '카리스마', 더 나아가 '공짜'란 의미의 '헨'이란 단어에서 파생했다. 영어 이름 앤(Ann), 안나(Anna)는 모두 이 한나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력은 누구나 연습을 통해 획득할 수 있기에 공짜이고, 그것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주어지기 때문에 '신의 은총'이라고 말한다.
'한나'는 그런 구별 된 아이로 키우겠다고 기도했다. '한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일상의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신에게 기도했다. 여기서 기도는 자신이 욕망을 신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경청하는 수고이다. 그 한나의 간절한 마음이 사무엘이라는 자식으로 표현되었다. 사무엘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자이다. 사무엘은 한 밤중에 들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의 첫 예언자이자 리더가 된다. 사무엘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의 왕 사울과 다윗이 등극한다.
'한나'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카리스마'는 객관적인 숫자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개인이 지닌 매력이다. '카리스마'는 다른 사람들의 충성을 자아내는 매력이다. 그러니까 카리스마나 매력은 신의 은총이다. 신의 은총이란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우연히 원하던 일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신의 은총을 느낀다. '은총'의 사전적 정의는 '높은 사람에게서 받는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다. 그러니까 매력을 소유한 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는 데, 신의 은총을 받는 특별한 자도 아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통해 매력을 획득하고 주변에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그 매력을 통해 슬그머니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종합하면, 매력은, 또 거기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자신을 구별하여 자신의 깊은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고독한 묵상, 그 묵상을 통해 목숨을 바칠 만한 임무의 발견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일관성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자기를 무한 신뢰하는 자이다. 다음처럼 5 가지 절차를 말할 수 있다.
▪ 자신을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가는 곳을 절제하며 구별한다.
▪ 자신의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고독하게 묵상한다.
▪ 그 묵상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 일을 위해 순교할 수 있는 자신의 소명, 아니 임무를 발견한다.
▪ 그리고 일관성 있게 말만이 아니라 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 그리고 자기를 믿고 계속 나아간다.
그러니 매일 무리 지어 사람들과 다니지 말고, 먼저 자신을 위한 별도의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헌신한다. 이 구별된 시간과 공간이 고독이다. 고독이 우리를 변모 시킨다. 매력 있는 사람으로. 평범한 인간은 고독을 통해 비범한 남다른 인간으로 다시 탄생한다.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감지한다. 그리고 그 임무를 대중들에게 감동적으로 이야기 하고, 공동체의 최선을 찾아내기 위해 경청한다. 신은 공짜인 매력을 줄 사람을 찾고 있다.
오늘 아침 다시 다음 문장을 되뇌어 본다.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자동으로 반응할 뿐, 이 공식의 원래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신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공하다'라는 영어의 'succeed'은 '~을 향해 따라가다'란 어원이다. 성공이란 자신이 깨달은 삶의 원칙을 기꺼이 따라가는 행위이다.
성공시대/문정희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
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언제든 부르면 달려오는 자장면
오른발만 살짝 얹으면 굴러가는 자동차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면
나 어디든 갈 수 있네
나 성공하고 말았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시 대신 진주목걸이 하나만 사서 걸면 오케이
내 가슴에 피었다 지는 노을과 신록
아침 햇살보다 맑은 눈물
도둑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고독 다 귀찮아
시 파산 선고
행복 벤처 시작할까
그리고 저 캄캄한 도시 속으로
폭탄같이 강렬한 차 하나 몰고
미친 듯이 질주하기만 하면
행복과 성공의 공식은 단순하다고 본다. 단지 자기 자신 되는 일이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스스로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자존감에 관한 두 가지 오해를 공유해 본다.
첫 번째가 자신이라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존감을 말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언제 어디서든 자신 있게 말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늘 불화의 연속이 된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사람들이 무서워하기는 하지만 존경하지 않는다. 나는 다음 말이 좋다. '힘은 지배하지만, 사랑은 승리한다.' 서로 존중하는 것에 행복의 열쇠가 있다. 관계를 악화 시키지 않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목적에 달성하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이게 자존감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절대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함께 춤을 출 때 두 사람이 따라야 하는 것은 음악의 리듬과 박자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댄스는 엉망이 된다. 미셀 오바마는 "강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만끽할 목적으로 상대에게 상처주지 않는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다른 이를 같이 높여준다. 서로를 화합하게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부정적인 사람 옆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의견에 일단 심술부터 부리고 보는 사람이 많다. 자기 중심적인 성격이 지나친 나머지 무조건 상대방의 말을 묵살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자기만족을 느끼며 즐거워한다.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먼저 의견을 제안하는 쪽을 선호한다. 이런 심리를 잘 파악해서 상대방이 제안자가 되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굽히는 것만이 평화적 해결은 아니다. 자기 존중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은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다소 뻔뻔하게 무장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부정적인 사람 때문에 내가 온전한 자기를 잃어버린다면, 나는 물론이고 상대의 세계까지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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