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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분리되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11일)

오늘 <인문 일지>의 주제는 '분리되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몇 해 전에 제주도 삼악산에서 찍은 소나무이다. 하늘이 배경이 된 이 소나무의 모습은 강한 기질과 인내, 그리고 바람, 추위, 더위를 이긴 자취가 쓰여 있다. 그것은 침묵으로 온전성, 그 존재 자체에서 나오는 성실성을 이야기 한다. 그 성실성은 견딤에서 나오는 거다. 천양희 시인의 <견디다>가 소환된다.

견디다/천양희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 년에 단 한 번 꽃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 펠리시아 꽃과
물 속에서 천일을 견디다 스물 다섯 번 허물 벗고
성충이 된 뒤 하루 만에 죽는 하루살이와
울지 않는 흰띠거품벌레에게
나는 말하네
견디는 자만이 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토록 견디는가

부정적인 쪽으로 눈을 돌리다 보면 모든 생각이 불행한 삶으로 이끌려가며, 불안감이 더해져 결국 우울증에 이른다. 긍정과 부정은 한 단어만 다르다. 그러나 인생 전체로 보면 그 차이는 크다.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도록 하고, 불행과 좌절을 낳게 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취적인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닌 인내와 용기를 가진 자세다. 불교의 인연법으로 본다면, 부정 속에 긍정이 있고, 긍정 속에 부정이 내재해 있다. 그 실체를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과 연이 모여 현상을 이루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실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모든 것은 직접적인 원인(因)과 간접적인 조건(緣)이 만나서 생긴 것이고, 당연히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조건이 헤어지면 모든 것은 소멸한다.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하게 보는 사람, 즉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을 공(空)으로 보기에 그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말에서 중요한 것은 '인'보다 '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직접적인 원인인 '인'이 발생하면, 간접적인 조건인 '연'은 내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처가 되었다면, 그에게는 치열한 자기수행이라는 원인과 좋은 스승이라는 조건이 갖추어 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살아서 인간이 살아낼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소나무에서 언젠가 읽었던 대현 스님의 글이 생각난다. 새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만들어진 대로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유달리 새들 만이 입이 뾰로통하게 튀어나와 있다. 새들은 어느 날 스스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다른 동물에게는 튼튼한 다리를 주면서 우리에게는 왜 나무젓가락처럼 가늘고 못생긴 다리를 주며, 왜 다른 동물은 튼튼한 팔을 주면서 우리에겐 왜 양어깨에 날개라는 무거운 짐을 주는 건지.'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새들에게, 무거운 짐이라 생각하는 날개를 쫙 펴보라고 했다. 새들이 거추장스럽던 날개를 펴고 힘을 주자 몸이 가벼워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원망했던 마음은 어디론 가 사라졌다."  새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남보다 어려운 것만 가진 것이 아니라, 남이 없는 특별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행복에 젖었다는 얘기다.

우리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의 날개를 달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도, 내 안에서 '진짜 나'를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에서 힘겨움은 시작되는 거다. 힘겨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내 인생과 교감을 할 때, 비로소 하나가  되며 온전성을 회복한다. 그것은  내 스스로가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돼서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족과 친구들, 나에게 부여된 책임과 일들, 이겨내야 할 고난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인생의 날개를 찾고 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어려운 환경도 시간이 가면 지나가기 마련이다. 어려움 속에서 날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의 영혼과 분리되는 않는 삶으로 온전하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아침 사유를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의 소나무는 성실성으로 살 때 생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를 보여준다.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을 보면, 모든 것 속에 온전성이 감춰져 있다. 그런데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면 그렇지 않다. 내면의 빛이 사라진 사람들이 주변에 여럿이다. 자신의 영혼과 분리되어 존재의 성실성도 깨닫지 못한 채 진실에서 멀어진 일상을 살아간다. 여기서 온전성은 자신의 전부를 인정함으로써 활기를 얻게 해주는 생명력이고, 정체성은 나의 삶을 이루는 모든 힘이 '참 자아'라는 신비로 모이는 연결 축이다. 그리고 성실성은 정체성을 통해 온전성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 온전성 이야기는 내일 또 이어간다.

총선이 끝났다. ‘정권심판’ 민심은 매서웠다. 어제 열린 22대 총선은 야당의 압승, 여당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정부 2년간 무능, 무책임, 고집불통 등 국정을 해온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남은 3년은 달라야 한다는 총선 민심에 담긴 절망과 열망을 정부와 여당은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유튜브로 개표 방송을 보았다. 험지에 가서 잘 싸운 후보들 중 몇몇이 낙선하여 아쉬웠지만, 유의미한 결과이다. 내가 민 우리동네 의원은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축하 드린다. 그동안 정치에 과 몰입했던, 내 일상을 회복할 생각이다.

"행복이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즐기는 거다는 생각을 하며, 다음 두 개의 문장을 소환한다. 첫 번째 것은 “소유한다는 것은 곧 소유 당하는 것이다"이다. 잡다한 것으로 주변이 채워지는 순간 순간 선택할 것이 많아져 우왕좌왕 시간과 열정을 허투루 쓸 확률도 높아진다. 그러니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상들은 빨리 잊어야 한다는 거다. 노자가 말한 "功成而不居(공성이불거)"가 생각난다. 이 말은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는 거다. 자신이 공을 쌓고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해 놓고도 뽐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무엇을 성취한다 할지라도 그 열매를 독차지하고, 그 성과를 따먹으면서, 그 성과 속에서 안주하는 삶의 태도를 근원적으로 벗어 내버리는 거다.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어떤 혁명가가 자신이 타도하려고 하는 대상을 타도하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그것은 이미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에 불과하다. 혁명가와 반항아는 다른다. 진정한 혁명가는 공을 이룬 후에는 그것을 차고앉으면 안 된다. 그 예가 체 게바라이다. 반항아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타도하고 난 후, 바로 그 자리를 차고 앉아 바로 정주형태의 집안을 이루어 버린다. 혁명이 성공한 그 순간을 차고 앉는다. 혁명의 깃발이 바로 완장으로 바뀐다. 혁명은 지속적으로 혁명 될 때에만 혁명이 된다. 중심에 머물다가, 그만 파국을 맞는다. 삶은 동사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공(功)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功)을 향해 나아 가는 동사적 태도 말이다.

두 번째는 “인파출명 저파비(人怕出名 豬怕肥)"라는 중국 속담이다.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더 똑똑하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금 있는 이 곳에서 느리게, 편안하게, 천천히 생을 만끽하며 그냥 시시하게 살고 싶다. 이 마음이 사라지려 할 때마다 기억하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내 일상의 리듬을 잃지 말자.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매일 매일은 새로운 날이지.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우선은 지금 하려는 일에 집중 하겠어. 그러면 운이 찾아 왔을 때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 매일 매일이 똑같은 일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되는 말이다. "우선은 지금 하려는 일에 집중 하겠어." 그게 일상을 지배하는 일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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